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인간’은 철학적인 사유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인류는 무죄인가, 유죄인가.’ 의견이 분분할 수 있는 직접적인 질문이다. 이에 대해 많은 견해들이 난무하지만 결국 인간인 우리가 답을 내릴 수 없다는 게 결론이다. 계란과 닭. 이 둘의 우선순위를 묻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연극은 이를 말하기 위해 ‘낯설게 바라보기’를 시도한다. 인간이 그들이 만든 ‘인류’를 바라보는 객관성을 획득하기 위함이다. 연극에서의 인간은 남자와 여자, 단 둘 뿐이다. 이 두 남녀만이 생존하고, 나머지는 모두 파멸됐다. 그들은 주관적인 생각과 뿌리 없는 말들로 무성한 대화에서 객관성을 찾고자 모의재판을 갖는다. 하지만 이 역시도 스스로가 인간임을 직시함으로 자포자기식으로 인류에 무죄를 선고한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는 또 다시 외계인, 즉 미지의 생물체의 시선으로 객관성을 획득하며 낯설게 표현된다. 이처럼 연극은 어떠한 대안도 내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커다란 주제를 획 던져놓고 관객을 광활한 우주에 떨어뜨려놓는다. 다음은 관객의 몫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지구가 파멸됐다. 그것도 과학과 인간의 가장 파괴력 높은 합작품  핵으로 말이다. 이 핵 하나로 지구는 완전히 소멸됐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두 생존자는 실험용 쥐처럼 외계인의 행성, 혹은 우주선 안에 갇혔다. 그들은 과학자 라울과 서커스 호랑이 조련사 사만타다. 운이 좋거나, 혹은 불행하거나. 어쨌든 그들에게는 하나의 짊어져야 할 책임이란 게 생겼다. 그들의 선택에 따라서 종족보전이냐, 인류의 완전한 멸종이냐의 문제가 달려있다. 이것은 작게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려야 섞일 수 없는 정반대 성향의 두 남녀의 ‘교미’를 결정짓기도 한다.

-2인극이 믿기지 않는 짧은 90분

연극은 극명히 대조되는 캐릭터와 외계세계에 대한 언급, 가상유리로 둘러싸여있는 무대 등 공상만화영화에나 나올 법한 것들로 가득하다. 아차하면 뻔하고 시시한 스토리가 될 수 있다. 게다가 2인극이다. 그런데 이 작품, 참 괜찮다. 이 연극은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와 연출, 과학과 철학적 사유를 쉽게 풀어낸 대사, 군더더기 없는 구성 등으로 관객들을 완전히 극 속으로 몰입시켰다. 인간이기에 느끼는 사랑의 감정, 상실의 아픔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이는 엮일 수 없는 이 둘을 하나로 만들며 극이 미로로 빠지지 않고 적절하게 결말에 봉착하게 했다. 연극 ‘인간’은 인간과 인류의 시작과 끝,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한 심오한 주제를 가뿐하게 풀어낸 것이다. 90분 러닝타임 동안 객석에는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라울은 전형적인 학구파로 남들처럼 행복한 ‘척’ 살아가는 걸 식상하게 생각하며,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분석하는 캐릭터다. 그는 겨울에 스키 타러가지 않는 것을 좋아하고, 여름 해변의 여파에 끼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등 밋밋하고 건조한 삶을 산다. 그렇다고 그의 캐릭터가 지루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밉지 않게 꼬집어 말하는 부분에서 관객들의 공감을 유도하고 자신의 과거를 토로하는 인간적인 면도 갖춰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캐릭터의 매력을 이끌 수 있는 건 배우의 능력이라고 본다. 라울을 맡은 전병욱은 여러 무대에서 보여줬던 그만의 끼를 이 무대에서 역시 보여줬다. 특히 그는 극중 모의재판에서의 1인 4역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냈다. 이 배우에게 지루할 수 있는 2인극의 한계는 오히려 기회인 듯 보인다. 사만타 역시 예쁘고 청순한 얼굴에 몸을 아끼지 않는 재기발랄한 연기로 무대를 누비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뉴스테이지 김미성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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