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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열의 예술현장 칼럼] 어디에도 완벽한 심의는 없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 등 공공기관의 지원정책을 논할 때 심의제도 운용과 심의위원 선임 문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최근 춤계에서 제기된 올해 춤 지원정책을 둘러싼 문제점 역시 그 핵심에는 심의위원 운용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심의위원 선정 절차의 경우 사무처에서 5배수의 후보를 추천하고 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심의위원을 선정하는 현행 방식은 어차피 해당 장르 위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 올해 심의위원 선정의 편향성 문제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무용위원 역시 어쩌면 스스로 승인한 이 같은 제도의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지원 단체와 지원 금액을 정하는 가장 중요한 지원심의제도는 30년 넘게 계속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시절에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바뀐 지난 5년 동안에도 그 골격에 있어서 어떤 큰 변화도 없었고 심의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나 포럼 등도 없었다. 세미나나 기고문 등을 통해 오래 동안 이와 관련된 문제들이 쉼 없이 지적되어 왔음에도 요지부동이다.
그렇다면 심의방법과 심의위원 선정 등 심의제도 운용에서의 획기적인 방안은 정말 없는 것일까?
지난 4월 17일에 있었던 <변화하는 춤환경과 지원정책>을 주제로 한 한국춤평론가회 주최 포럼에서 발제자 김태원(공연과리뷰 편집인)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운 울타리나 방패막이식의 일시적 심사위원제(制)보다는, 춤의 현장에 밝은 3인 정도의 항시 전문심사위원제도(아니면 1년에 5개월 정도 운영)를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그들에게 3년 정도 지원단체선정권과 금액조정권을 주어 심사 결과를 어느 정도 책임지게 하면서, 그들의 전문적 식견이 각 예술장르의 지원정책에 효율적으로 반영되게 하자”는 것이다. 그의 제안은 곧 입시사정관과 같은 전문심사위원을 통해 지원 단체 선정과 지원금을 배분한다는 것이다. 소수의 전문가에게 권한과 책임을 주어 그가 가진 전문성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그의 제안은 분명 파격적이다. 5-7명의 심의위원 구성 방식은 이미 수 십 년 동안 시행해오면서 한계가 입증된 만큼 전문성에 권한과 책임을 함께 묶은 이 같은 제안은 충분히 검토해볼만하다.
100건이 훨씬 넘는 지원신청서를 검토하고 수십억에 달하는 지원금을 배분하는 작업은 작품, 공연 그 자체를 심사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신진에서부터 원로까지 전국의 각 지역에서, 그리고 국제교류에서부터 창작, 예술보존 조사사업까지 6개 항목을 통틀어 심의하는 만큼 각양각색의 지원자가 몰려들고 사업의 범위도 각기 다르다.
모든 심사위원들이 같은 무대에서 똑 같은 공연을 보고 우열을 판가름 하는 경연대회심사와 서류에 의한 지원심의는 이렇듯 분명히 다르다. 따라서 심의위원 선정 역시 그 충족요건이 달라야 한다.
심의위원들은 최소한 공연장의 특성이나 공연제작 경비에 대한 인식, 지원자의 작품 성향이나 그동안의 예술적 성과 등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교육과 창작 작업에만 몰두하는 실기 전공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이 같은 요건을 갖춘 인물을 찾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서는 전문성 못지않게 심의위원들끼리의 견제 기능도 필요하다. 심의위원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어느 한쪽에 편중 선임되었을 경우 “이것은 아닌데……”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도 묵시적으로 동조하게 되고, 급기야는 담합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정작 중요한 것은 심의위원들이 과연 지원신청서를 제대로 꼼꼼하게 검토한 상태에서 심의에 임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또 다른 대안은 심의위원들이 일정한 장소에서 합숙하며 신청서 하나하나를 다 함께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고 심사경비가 더 지출되더라도 크로스 체크가 가능하고 심의위원들의 토론이 곁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원사업의 효용가치를 높이는 일이 될 수 있다.
전문심의위원제나 합숙심의는 적어도 이 단체가 무슨 이유로 탈락되고 이 예술가는 무슨 이유로 선정되었는지에 대해 심의위원들이 기억할 수 있는,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그것을 운용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지원정책을 주도하는 해당 기관이 가장 공들여야 하는 일은 결국 어떤 사람을 선임하느냐이다. 지원정책의 성패는 여기서 갈라진다. 지원정책을 향해 현장의 예술가들은 소리 높여 말한다. “우선 잘 뽑아라”라고.

 

글_장광열 ipap@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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