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목을 매단 채 방치돼있는 아버지의 시신. 내려달라 외쳐보지만 그 외침은 허공을 돌고 돌아 이내 제자리로 돌아간다. 만성 변비에 시달리는 시동생은 아버지의 시신 옆에서  나오지도 않을 용변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낸다. 머리를 잔뜩 헝클어뜨린 채 노래방 선곡 책자를 옆구리에 끼고 집을 나서는 며느리에게서는 결코 가시지 않을 알코올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온다.

이 가족의 막장 드라마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감독이라는 옹색한 명분으로 얼굴 한 번 제대로 보기 힘든 이 집안의 장남이자 남편은 아버지의 시신을 온전히 거두기는커녕 아버지가 장례비용으로 남겨둔 푼돈까지 슬쩍 채가는 위인이다. 그는 아내와 병신 동생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며, 아내를 찾아온 소방대원에게 갑작스런 자신의 방문에 대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는 아량까지 베푼다.

가진 것이라고는 비루한 몸뚱어리 하나뿐인 아내는 속절없는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쉴 새 없이 술을 들이붓는다. 늙은 시아버지 봉양에 무능력한 남편, 병신 동생까지 떠맡아야 하는 그녀에게 내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빌어먹을 집구석에는 숨통을 꽉 막히게 하는 부패된 공기와 한 웅큼 빠져나간 그녀의 머리카락만이 변함없이 남아있다. 그녀의 오늘은 시아버지의 시신과 남편의 부재, 시동생의 뒤치다꺼리로 가득히 채워져 있을 뿐이다.

자해해 봐도 그녀에게 돌아오는 오늘은 매한가지다. 옆구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선명한 붉은 빛은 경악스러운 이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반추해낸다. 허나 새삼 현실을 환기시킨다 한들 이들이 살아가야할 내일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일을 논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터무니없는 사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너무 놀라지 마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무색케 하며 특별하지도, 더군다나 놀랄 일도 없는 일상을 영위해간다.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을 말하며 게맛살만을 고집하는 동생은 형수의 외간 남자를 형이라 칭하기에 이른다. 제대로 어긋난 이들의 인생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들려오는 뽕짝 메들리처럼 조잡스럽다. 하지만 이들의 뽕짝은 정처 없이 흘러가는 지금의 현실을 묵직하게 상기시킨다.

박소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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