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뮤지컬계의 핫이슈는 뮤지컬 ‘모차르트!’(유희성 연출)의 흥행돌풍이다. 뮤지컬 ‘모차르트!’는 세계적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그래미 수상자 실베스터 르베이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오스트리아 뮤지컬. 이번이 국내 초연으로 뮤지컬계에서 노래 좀 한다하는 쟁쟁한 소리꾼들이 총출동한데다 최고의 한류스타 동방신기의 멤버 시아준수가 가세한 캐스팅은 공연 전부터 큰 화제가 됐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는데, 막이 오른 후 ‘모차르트!’는 연일 기립박수 세례 속에 순항 중이다. 흥행 이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큰 임팩트를 남긴 것은 작품 속 여배우들의 매력이다.
배해선(35), 신영숙(34), 정선아(25). 이 매혹적인 여배우들은 각각 모차르트의 누이 난넬로, 후원자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으로, 평생의 연인 콘스탄체로 분해 모차르트의 드라마를 완성시킨다. 어쩜 이렇게 적역들을 뽑아놨을까 싶을 정도로 캐릭터와 배우의 싱크로율이 100%다. 그녀들을 보고 있자면 무엇보다 캐스팅에 가장 공을 들였다는 유희성 연출의 자신감이 이해가 된다. 조연이지만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로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산하는 ‘모차르트!’의 여인들. 그녀들 중 누구 하나라도 빼놓고는 모차르트의 인생을 이야기할 수 없다.

- 천의 얼굴, 천상 배우 배해선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조연으로 무대에 서고 있는 그녀들이지만 사실 한명 한명이 한 작품의 타이틀 롤을 맡아도 손색이 없는 쟁쟁한 경력의 배우들이다. 작곡가 르베이도 이 세 명의 여배우들에 대해 “내 음악에 날개를 단 것 같다”며 극찬했다는 후문.
연극을 전공한 맏언니 배해선은 1995년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으로 데뷔한 이래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해온 손꼽히는 연기파 배우다. 하나의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연기력으로 관객을 감동시키는 배해선의 얼굴 속엔 ‘아이다’의 암네리스 공주, ‘시카고’의 요부 록시, ‘에비타’의 여걸 에바 페론 등 다양한 이미지가 공존한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모차르트의 누이 난넬이 됐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또, 천재인 동생에 가려 그림자에 머물러야 했던 난넬. 자신의 아픔을 뒤로 한 채 방황하는 모차르트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배해선의 난넬은 바라보기만 해도 진한 슬픔이 느껴지는 캐릭터다.
“유희성 연출 선생님을 통해 작품을 알게 됐는데 제 역할을 떠나서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레게머리를 한 모차르트라는 파격적인 콘셉트가 일단 마음에 들었어요. 또 음악이 너무 아름답고요. 뮤지컬에서 모차르트라는 사람과 그의 음악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는데 굉장히 현대적인 음악으로 다양하게 표현이 된 것 같고 각 캐릭터의 넘버들도 개성이 뚜렷하고 좋더라고요. 이런 작품은 정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 번 생각 안했죠.” 확고한 연기 철학을 가진 베테랑 배우 배해선에게 배역의 비중은 문제가 아니었다.
“배우는 단 한 씬을 연기하더라도 무대에 서는 의미가 분명하면 행복해요. 반면 자주 등장해도 각인되는 게 없고 뭔가 이유가 분명하지 않으면 배우도 지치죠. ‘모차르트!’ 는 각 캐릭터의 신들이 아주 분명해요. 또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작품 전체를 볼 수 있는 것도 좋고요. 무엇보다 관객 분들의 큰 호응 속에 초연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제가 ‘모차르트!’에 출연한 의미인 것 같아요(웃음).”

- 황홀한 가창력의 소유자, 신영숙

무엇 하나 빼놓을 곡이 없는 뮤지컬 ‘모차르트!’의 넘버들 중에서도 유독 관객의 사랑을 받는 넘버가 있다.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이 모차르트를 격려하고 그의 자유 의지를 일깨우는 곡 ‘황금별’이 그것이다. 서정성과 박력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이 곡을 신영숙 만큼 잘 불러낼 배우가 또 있을까? ‘황금별’은 신영숙의 진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넘버가 되었다, 정선아가 “‘황금별’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웃음) ~”하며 애교 섞인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가장 인상적인 넘버로 ‘황금별’을 꼽고, 배해선이 “영숙이가 ‘황금별’을 통해 ‘황금알’이 됐다”며 축하를 건넬 정도다.
뮤지컬 배우로서 신영숙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관객에게 벅찬 환희를 맛보게 하는 가창력이다. 성악을 전공한 신영숙은 1999년 뮤지컬 ‘명성황후’로 데뷔한 이후 10년 가까이 서울예술단에서 활동하며 연기와 노래 실력을 착실히 다졌다. 실력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녀는 2008년 예술단에서 나온 뒤 수백대 일의 경쟁을 뚫고 옥주현과 함께 뮤지컬 ‘캣츠’의 그리자벨라로 발탁되어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바로 이 작품 ‘모차르트!’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키고 있다. 그녀는 관객의 열렬한 호응이 피부로 느껴지는 지금이 무척 행복한 모양. 그녀의 웃음소리가 참으로 호탕하다. “제 비중에 비해 넘버가 많은 사랑을 받아서 굉장히 기분 좋죠(웃음). 정말 애착이 가는 곡이랍니다. 저는 르베이씨가 작곡가로 참여한 ‘엘리자베스’라는 뮤지컬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르베이의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시니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 노래·춤·연기 갖춘 팔방미인, 정선아

노래·춤·연기… 거기에 섹시한 외모와 글래머러스한 몸매까지! 뮤지컬 배우가 갖춰야 할 요소를 두루 갖춘 정선아는 ‘뮤지컬계의 비욘세’로 불리는 차세대 디바다. 19살의 나이에 ‘렌트’의 미미로 발탁되어 세상을 놀라게 한 그녀는 ‘지킬앤하이드’의 최연소 루시, 모노뮤지컬 ‘텔미온어선데이’의 데니스, ‘드림걸즈’의 히로인 디나 등을 거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에너제틱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온 정선아. 무대에서 뇌쇄적인 매력을 내뿜는 그녀에겐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특별함이 있다.
그런 이유로 뮤지컬 ‘모차르트!’를 사로잡은 평생의 연인 콘스탄체는 그야말로 정선아에게 맞춤옷 같은 캐릭터. 안성맞춤이란 진부한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배해선과 신영숙, 두 언니들도 “선아가 적역을 맡았다”고 입을 모은다. 콘스탄체가 가정을 뒤로 한 채 음악에만 몰두하는 모차르트를 원망하며 부르는 솔로곡 ‘예술가의 아내’는 정선아의 강렬한 매력이 빛을 발하는 인상적인 넘버. 배해선은 이 노래가 2010년 뮤지컬 여배우들의 최고의 오디션 곡이 될 거라 장담했다.
정선아는 특히 ‘모차르트!’로 뮤지컬에 데뷔하는 시아준수의 상대역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공연 시작 전엔 “시아준수와의 뽀뽀씬을 없애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부담이 되었지만 막상 막이 오르고 나니 시아준수의 팬들이 많이 응원해줘 힘이 난단다. 미니홈피 방문자가 부쩍 늘었다며 밝게 웃는다.
“좋은 선배님들과 작업을 많이 해왔지만 이번처럼 주연으로 큰 역만 하시던 분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거든요. 세종문화회관에서 훌륭한 연출 선생님과 좋은 언니 오빠들과 한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각별한 의미가 있는데 많은 관심과 사랑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웃음).”

대기실에서 만난 세 명의 여배우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분장실의 강 선생님’ 같은 분위기나 여배우들의 대기실하면 흔히 연상되는 미묘한 신경전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고 인터뷰 내내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며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본인들의 캐릭터를 떠나 ‘모차르트!’라는 작품 자체에 흠뻑 빠져 있는 그녀들은 하루하루가 즐겁고 재밌기만 하단다.
매번 커튼콜 인사를 할 때마다 객석을 가득 매운 관객들의 힘찬 박수와 환호에 벅찬 감동을 느낀다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노라 다짐하는 배해선, 신영숙, 정선아. 이 매혹적인 모차르트의 여인들은 ‘모차르트!’ 흥행돌풍의 숨은 주역들이다.

(뮤지컬 ‘모차르트!’: 2월 2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월 26일부터 3월 7일까지 대구계명아트센터. 3월 26일부터 3월 28일까지 부산문화회관, 4월 23일부터 4월 25일까지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유희성 연출, 임태경, 박건형, 박은태, 김준수, 민영기, 윤형렬, 서범석, 배해선, 신영숙, 정선아 등 출연)

조수현 기자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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