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무용가 질 조뱅이 세 번째 한국을 찾았다. 2004년 자유소극장에서 <뫼비우스의 띠>를 발표하여 한국 관객들에게 새롭게 소개된 질 조뱅은 2007년 ‘유럽의 유명 안무가가 한국 무용수를 뽑으러 왔다.’는 화제 속에 무용계의 관심을 받았었다. 전문무용수 지원센터의 건립이후 계속적으로 이뤄졌던 ‘댄서스 잡마켓’이 국제적으로 그 폭을 넓힌다며 질 조뱅 무용단과 벌인 프로젝트였는데, 가장 큰 기대에 찼던 사람들은 물론 한국의 젊은 무용수들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4명의 한국 무용수를 선발하여 스위스로 초청한 질 조뱅은 끝내 그들을 자신의 무용단에 합류시키지 않았다. 국고를 들여 지원한 프로젝트가 국제적 해프닝으로 끝난 것인지... ...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물론 오디션에 참가했던 4명도 입을 다물었다. 시작만 창대하고 끝은 미약했던 ‘국제 댄서스 잡마켓’의 씁쓸했던 결과에 대해 장본인 질 조뱅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까 고민하던 중 뜻밖에도 그가 먼저 인터뷰에 앞서 일종의 해명(?)을 하고 싶어 했다. 한국 무용수들은 너무나 훌륭했지만 언어 문제 등으로 불가피하게 돌려보냈어야 했다는 것과 전문무용수 지원센터는 훌륭한 일을 하는 기관이라는 뻔한 이야기…. 예상은 했었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 글은 월간 ‘춤과 사람들’ 2009년 11월호에 게재된 글의 일부이다.)

두 번째 한국공연인데 공연여건을 어떻게 느끼셨나요?
- 공연은 두 번째이지만 한국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 입니다. 2004년 첫 공연 이후 지난 5년간 공연장의 수준도 높아졌고 많은 발전이 보입니다. 극장과 기술 스텝들 모두 만족스럽습니다.

한국의 무용수들을 여러 번 만났는데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 2007년 ‘전문무용수 지원센터’의 주관으로 열린 ‘국제 댄서스 잡마켓’을 통해 한국무용수들의 오디션을 가졌었습니다. 40명 중 15명을 뽑았고 그 중 4명을 초청하여 스위스 제네바에서 몇 주간 워크숍과 오디션에 참석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교류가 순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이 무용단의 정단원이 되기는 불가능했지만, 적응력은 인정할 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한국 무용수 4명에게 폭 넓은 문화의 경험을 하게 해준 것이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대학에서의 경험을 벗어난 새 경험을 하게해주는 것이었죠. 그 4명 중 한명은 후에 스위스 무용단에 발탁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 무용수들과의 작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 워크숍을 통해 만난 무용수들 이외에도 저는 허성임씨가 얀 파브르와 작업하는 것도 보았고, 저 자신도 권성임이라는 한국무용수와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작품에 따라 한국무용수와 작업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전문무용수 지원센터에서 준비한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단발성 워크숍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세대 한국무용수들의 유럽진출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어의 문제가 가장 큰데 처음에는 힘들지만 한국 무용수들이 적응력이 좋고 춤 테크닉이나 배우고자하는 열정이 좋기 때문에 그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위스와 비교하면 한국의 무용수들은 어떤 여건에 있는 것인가요?
- 한국의 여건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방향에서 스위스의 상황과 비교되는데 스위스에는 한국만큼 전문무용수를 양성하는 제도가 발달되어있지 않습니다. 몇몇 사립학교와 무용원이 있지만 무용수를 지원하는 센터는 없습니다. 다행히 1년 전부터 국고의 지원으로 무용수 양성기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취리히의 발레학교와 프랑스 인접지역의 현대무용센터가 설립 중에 있습니다.

당신의 무용수 규모는 어떤 편인가요? 고정적인 무용수들이 있습니까?
- 이번 작품을 위해 저를 포함한 무용수 4명과 스텝 3명이 함께 왔습니다. 기획자는 정해져있지만, 고정적인 무용수를 두기 보다는 작품에 따라 무용수를 캐스팅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여건이 된다면 최대한 고정 무용단원을 두고 싶습니다. 무용수들의 성향을 알고 작업을 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많은 무용단들이 저와 같은 여건에 있는데, 마음에 드는 무용수, 특히 그들이 외국인 무용수일 경우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유동적으로 무용수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검은 백조>는 당신의 최근작이지요?
- 그렇습니다. <검은 백조>는 2009년 4월 프랑스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저의 최근 춤경향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검은 백조>는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반증가능성’이론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그 이론은 모든 백조가 희다는 것이 검은 백조가 발견되는 순간 무너진다는 예를 들고 있는데, 우리 인식체계에서 ‘없다’고 믿었던 검은 백조의 존재를 통해 ‘백조’에 대한 정의를 달리하게 되고 그 결과 현실에 대한 인식 자체를 수정/재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칼 포퍼의 이론을 차용한 것은 그의 이론에 동의한다는 것이죠?
- 그렇습니다. 우리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어제 일본에서 한국으로 왔는데, 오늘 뉴스를 보니 큰 태풍이 일본을 덮쳤더군요. 오늘 제가 여기 있지 못할 수도 있었던 것이죠. 우리는 계획을 세우려하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합니다. 사실 확실하다면 인생은 재미없겠죠. 우리가 아는, 또는 알지 못하는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해서 관객에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 이번 작품의 의도입니다.

<검은 백조>는 이전의 작품들과 어떻게 다른가요?
- 작품마다 메시지는 다르지만 저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해 여러 가지 경우 두고 만든 것입니다. <검은 백조>는 평론가로부터 ‘추상적 재편성’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추상성이 다분하면서도 구체적인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지난 작품은 꿈속에서 보는듯한 이미지를 컴퓨터를 이용한 특정한 텍스트로 의미전달을 시도했었습니다. 이번 작품 <검은 백조>는 동작그대로 순수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을 시도했고, 의미전달의 강박으로부터 벗어나 움직임 자체로 무대에 서는 작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고전적 요소를 갖는다고 볼 수 있어요.

춤 동작에 있어서는 어떤 특징을 갖나요?
- 이전의 저는 주로 무용수의 내/외면에서 나오는 성향을 많이 반영한 작품들을 만들었었습니다. 예를 들어 상황에 따라 무용수가 결정한 것, 무용수들로 실험한 게임의 법칙 등 여러 규칙들을 적용해 변수가 많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안무계획이 철저히 계산된 춤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동작의 반복을 배제했고, 무용수 자신과 춤사이의 소통을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만든 작품입니다. 사실 제 안무의도를 알지 못해도 관객은 충분한 재미를 느낄 것입니다. 토끼인형, 말 인형, 기다란 봉 등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품들을 사용하면서 흥미로운 장면들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소품들이 흥미를 위해 등장하는 것 같은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 인형들과 막대기들은 확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신체의 확장, 우리 안의 유기체, 동물성 등을 뜻하는 것인데 그것들은 도구이자 주제와 연관된 오브제이며 우리를 꿈의 세계로 인도해가는 장면을 만들기 위한 것들입니다. 동물인형들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은 꿈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같습니다. 설명하려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사라진다고 할 수 있어요. 저는 토끼모양의 손 인형, 작은 말 인형들이 어린이가 바라보는 인간세계의 독특한 환상을 나타낼 수 있다고도 생각해봅니다.

춤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 저는 어린 시절 배우가 되고 싶었습니다. 춤보다는 연기 수업을 먼저 시작했지요. 후에 뮤지컬로 만들어진 영화 를 보고 춤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6살에 처음 현대무용 수업을 시작했는데, 배우가 되기보다 춤이 흥미로웠습니다. 계속 춤을 배웠고 깐느 발레학교에도 다녔습니다. 극단에서 테크니션, 기획자로 경험을 쌓다가 안무를 권유 받아 15년 전부터 안무를 시작했습니다. 가족 중에는 아버지가 화가셨는데 제 춤에 영향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유럽 안에서 스위스 현대무용은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나요?
- 스위스라고해서 특별히 유럽에서 차별화 되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스위스는 작은 나라입니다. 전 인구 800만 명 가운데 프랑스와 면하고 있는 지역의 2~300만 사람들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거의 프랑스인이라 할 수 있어요. 제 생각에는 국가 간의 차이보다는 세대 간의 차이점이 더 두드러진다고 봅니다. 저는 농-당스(non-dance)의 전성기에 춤작업을 시작한 세대입니다. 확연히 다른 성격의 춤공연들이 있었죠. 점차 인터넷이나 정보교환의 새 방식이 등장하면서 춤이 고르게 발전하여 불균형이 깨지고 수평화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함께한 저는 스위스무용가로 유럽의 전 지구화된 무대에 어깨를 견준 첫 세대라고(발레를 제외하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80년대 세대의 노력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한국에는 스위스출신 무용가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 스위스는 춤에 있어서 독특한 배경을 갖고 있어요. 모리스 베자르 등 다른 나라 무용가들이 스위스에 무용단을 만들고 활동하다가 자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스위스의 많은 안무가들이 스위스출신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스위스 무용가들은 여러 스타일의 영향을 받고 있죠. 예술에 있어서 국경의 개념이 흐린 유럽 전역은 춤에 있어서도 고르게 스타일을 잡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춤은 당신 인생에서 무엇인가요?
- 춤은 처음부터 끝까지 창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각본이나 도면이 아닌 인간의 내면에서 신체를 통해 끌어내는 완전히 새로운 것입니다. 신체는 악보나 도면처럼 규정되거나 동일한 복사본을 만들 수 없다는 특성을 갖죠. 그래서 매번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춤의 감동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익숙지 않은 것이고 괴상한 행위입니다. 춤은 저에게 매번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안정’과 ‘자극’을 동시에 주는 이중적 매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예술이라 생각 합니다.

글_김예림 무용평론가 yelim110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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