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영화에 열광하는 것은 우리 삶을 적절하게, 또 감동적으로 우려내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슬프고 안타깝거나, 잔인하거나, 비현실적인 삶을 직접 살아가기는 싫다. 영화 끝에 맛볼 수 있는 감동과 애잔함 속에서 피어오르는 성숙, 진정성만을 소유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목젖까지 차오르는 뜨거운 응어리가 울컥 하고 치솟는 감정들은 짠하디 짠한 신파에서나 가능하다. 인간은 온갖 장애에 맞서 궁상스럽기 짝이 없는 인생, 즉 밑바닥부터 노력해 성공을 이뤘을 때 더 큰 성취욕과 보람을 느끼는 존재다.

낡아 빠진 영화나 광고 포스터가 붙여진 뒷골목, 기울어진 전봇대 사이를 달려봤는가. 닳고 닳아버린 인생이 슬퍼서 눈물을 흩뿌리며 말이다. 기울어진 인생처럼 불안하고 무질서한 동네를 배경으로 숨막히는 연탄가스 냄새, 개똥 냄새나는 비포장 도로, 비탈진 길을 겪어봤다면 연극 ‘보고싶습니다’는 당신이 원하던 휴먼드라마가 맞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생생함과 감동, 향수는 머리끝까지 자극되고, 마음은 뜨거운 울분과 공감으로 얼룩진다. 그 진한 공감은 뼛속까지 시리며 슬픈 계절 겨울과 맞물려 절정을 이룬다.

연극 ‘보고싶습니다’는 눈이 멀어, 사랑하는 남자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밖에 만질 수 없는 지순과 그녀의 그림자 같은 수호자 독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좋다. 세상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보지 않고 느끼는 것보다 가볍고 진실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보이지 않으면 어떠랴. 대신 미세한 숨소리, 코끝을 찡하게 하는 서로의 향기를 예민하고 소중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가난 속에서 삶에 대한 의욕은 더 뜨겁게 타오른다. 그것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이 작품은 순수창작극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여자의 나름대로의 긍정적인 삶, 거친 인생을 살지만 순정적인 남자의 사랑, 가족과의 깊은 유대관계 등을 애틋하게 그린다. 3류 인생이라고 일컬을만큼 구차한 삶 속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은 정해진 공식처럼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뻔하디뻔한 신파는 식상할 수 있지만 연극 ‘보고싶습니다’는 솔직한 화법과 곳곳에 배치한 웃음 코드 등으로 작품의 신선도를 높였다.

또한 이 작품은 작위적이기 보다 꾸밈없는 진솔함으로 관객들을 극에 몰입시킨다. 리얼하고 감각적인 무대와 막힘없는 스토리 전개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과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감은 한순간도 놓칠 수 없다. ‘헉’ 소리 나는 거친 액션, 강렬하고 개성 있는 배우들의 열연, 뒷심을 실어주는 음악은 소름과 전율을 동시에 안겨준다. 

칼에 찔린 독희가 지순의 품에 안기는 마지막 엔딩은 극의 절정이다. 무대 위에서 내리는 눈가루는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다. 칼에 찔려 흘린 피와 슬픔, 고통과 괴로움, 거대한 이별은 하얀 눈가루가 모두 감싸안아준다. 마법처럼 눈가루는 종이학으로 변한다. 바닥에 쌓이는 것은 하얀 눈과 종이학뿐만이 아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의 감동과 전율로 흐르는 눈물도 있다. 두고두고 보고싶은 연극 ‘보고싶습니다’는 극의 잔상을 오롯이 새겨준다. 잔상은 낙인처럼 마음에 새겨져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글, 사진_뉴스테이지 강태영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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