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가 이르길 ‘덕행은 언제나 곤궁 속에서 이루어지고, 몸을 망치는 것은 대부분 뜻을 얻었을 때’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아이아스는 트로이전쟁에선 아킬레우스 다음가는 용사로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가 죽은 후 그의 무기를 둘러싸고 오디세우스와 겨루어 패하고 만다. 아이아스는 무기가 오디세우스에 간 것을 분노하고 복수를 결심한다. 이에 오디세우스를 아끼는 아테네 여신이 아이아스에게 최면을 걸어 동물들을 그의 적으로 믿게 해 대신 죽이게 한다. 아이아스가 의식을 되찾아 자신이 행한 일을 알았을 때 수치심과 모욕감으로 자살을 결심한다. 아이아스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소포클레스의 작품이다. 그리스 극단 아티스는 아이아스의 비극과 슬픔, 광기, 절망을 현대적으로 잘 표현해 그리스 비극의 정수를 보여준다.

- 소름돋는 갈등과 광기

세 명의 배우는 뭔가 대단한 결의를 한 듯 주먹을 불끈 쥐고 피로 물든 것을 상징하는 빨간 박스에 얼굴을 묻고 앉았다. 배우들은 분명 웃음으로 시작해 울부짖음과 통곡을 보여준다. 그들은 아이아스가 미쳐가는 과정을 소름끼치는 소리로 이어간다. 작품은 아이아스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직 아이아스가 분노와 광기에 휩싸여 동물들을 학살하는 사건만을 보여준다. 배우들은 극히 절제된 신체언어로 그리스비극을 만들어낸 조상의 자손들답게 아이아스의 갈등과 심리를 잘 전달한다. 그들은 트로이해변, 아이아스의 막사 등 각 장면마다 아이아스의 상징적 코드인 쌍칼을 들고 반복되는 단순한 언어로 그의 피해망상을 극대화시킨다. 군더더기 없이 반복되는 대사, 강한 움직임은 극에 대한 몰입을 한껏 올려준다.

- 단순한 무대와 강렬한 조명의 사용으로 분열을 극대화

무대는 별다른 장치없이 사각형의 박스로만 십자형 징검다리를 이룬다. 천장에는 조명이 최소한의 갯수만 단촐하게 달려있다. 이 단순한 무대와 조명의 사용은 절제된 배우들의 연기를 돋보이게 만든다. 배우는 메신저로서 이야기한다. “오늘이 아이아스의 죽음과 전멸을 가져올 것이다”라며 학살의 밤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다. 아이아스가 누구든 죽일 기세로 분열 할 때의 긴박감과 격렬함, 분노는 거침없다. 이 거침없음이 배우들의 동일화된 대사와 통일된 행동패턴으로 관객을 동화시킨다. 또한 배우들이 학살자인 아이아스를 연기하다 학살대상인 동물로 금세 바뀌는 것은 강렬한 이미지로 남는다. 학살대상이 죽임을 당하는 순간에 내리꽂는 조명의 강한 붉은 빛은 숨을 멎게 만든다. 아이아스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미칠 지경이다. 그의 분노와 광기로 삶을 마무리 한다. 피로 상징되는 박스에 아이아스는 쌍칼과 빨간 구두를 넣고 봉인한다. 돌이킬 수 없는 운명에 갇혀 끝난 그의 죽음은 처연하다. 조명이 서서히 꺼지고 무대는 암흑이 된다.

뉴스테이지 전성진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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