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학교에서는 빨강, 노랑, 파랑 등의 원색을 먼저 배웠다. 이름 없는 색을 만나면 한참을 망설인 후에야 연한 빨강 식의 답을 흘렸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익어가며 하나 둘 말로는 다 표현 못할 갖가지 색들을 접하게 됐다. 어느새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상에 정해진 원색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어린 시절부터 봐온 색들은 또 많이 변했음을 깨닫는 데도 마찬가지 꽤나 긴 시간을 요한다. 청춘은 아이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색을 끊임없이 만나는 과정이다. 새로 만난 색에 내 몸을 놓아주기도, 색을 흡수하기도 하면서 비틀거리는 한 때가 ‘청춘’인 것이다. 연극 ‘겨울 선인장’은 세상 밖의 색, 동성애 코드를 바탕으로 평범할 수 없었기에 비틀했고 그렇기에 더욱 끈끈할 수밖에 없었던 청춘의 한 때를 그렸다. 연극 ‘겨울 선인장’은 ‘용기와 희망, 얼마 안 되는 돈과 사랑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며 기쁜 우리 젊은 날, ‘청춘’을 노래한다.

- 동성애? 결국 ‘우리’사는 이야기

조명이 무대를 강렬하게 비추면 관객은 추억의 필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배경은 어느 지방 야구장의 라커룸이다. 동성연애 5년 차인 청춘 둘 가즈야와 후지오, 술집에서 일하는 여장남자 하나짱, 대인공포증과 각종 콤플렉스로 여자를 못 만나본 베양은 고교 야구단 동기로 1년에 한 번, 야구부 모임을 갖는다. 남자 넷이 꾸미는 무대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솔직담백한 성적 농담과 스킨십이 오간다. 관객이 동성애라는 낯선 정서 안으로 흡수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극 ‘겨울 선인장’은 그러한 난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애틋한 사랑과 우정, 헤어짐과 만남을 생생하고 진정성 있게 엮어냈다. 관객들은 저마다 다른 모양의 삶의 불균형을 떠올리며 마음이 금세 동한다.

- 겨울, 그러나 사랑스러운 선인장 넷

가즈야와 후지오, 하나짱, 베양 캐릭터 넷 모두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가즈야와 후지오는 여느 연인들처럼 서로를 향한 뜨거운 감정을 적절히 밀고 당기며 조심스럽게 사랑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결혼’의 문턱에서 가슴 아픈 이별을 인정한다. 녹음테이프에 담긴 진실한 사랑고백과 달콤한 애정이 담긴 노래, 서로를 바라보는 사랑 가득한 눈빛과 리액션 등은 관객들로 차가운 냉소보다 훈훈한 감동을 남긴다. 건장한 몸의 하나짱은 감정을 추스르고 자제하는 다른 배역에 비해 소란스럽고 톡톡 튀는 캐릭터다. 능숙한 화장과 여자를 흉내 낸 간드러지는 목소리, 자극적인 옷차림으로 무대를 자유자제로 누빈다. 딱딱하거나 건조한 남자 셋에서 하나짱은 단연 눈에 띠며 우스꽝스러운 제스처와 가볍지만 따뜻한 만담으로 폭소 제조기 역할을 한다. 모든 남자의 어깨에 본능처럼 기대 아양 부리는 모습이 미워할 수 없는 천상 여자다.

청춘의 한 때 우리 가슴을 뜨겁게 했던 추억, 한 순간이 있는가? 세월이 지나 매번 같은 추억을 나누어도 기분 좋아지는 것은 ‘함께’, ‘우리’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연극 ‘겨울 선인장’은 청춘의 한 때를 그리움으로 남기고 그보다 뜨거울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하교 길, 느슨하고 서늘한 신발장에 홀로 놓인 실내화 한 쌍처럼 동성애라는 단어는 쓸쓸하기만 하다.

뉴스테이지 김미성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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