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베 크뢰거!’ 이름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중량감이 느껴지는 이 독일의 뮤지컬 스타가 7일부터 10일까지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김준수뮤지컬콘서트-르베이와 친구들’에 게스트로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우베 크뢰거라는 이름은 일반 대중들에게는 낯설지만 최근 ‘모차르트’의 성공으로 독일어권 뮤지컬에 관심이 쏠리면서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서 상당한 팬 층을 형성하고 있다.
1964년 독일 출생인 그는 19세기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벳의 드라마틱한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엘리자벳’의 1992년 세계 초연 무대에서 초월적 존재인 토드(죽음) 역으로 스타덤에 오른 후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미스 사이공’의 크리스,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모차르트’의 콜로레도 등 대형 뮤지컬의 굵직한 캐릭터를 두루 섭렵하며 20년 넘게 정상급 뮤지컬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꾸준한 커리어,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 독보적인 카리스마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남경주와 류정한을 섞어놓은 듯하다.
지난 월요일 늦은 오후, 콘서트 연습 현장에서 우베 크뢰거와 팬들과의 만남의 시간이 있었다. 이경아(43,주부), 박희정(35,직장인), 김세영(34,프리랜서), 최지이(24,학생) 씨가 행운의 주인공들. 연령도 직업도 달랐지만 ‘우베’라는 공통분모로 똘똘 뭉친 이들은 첫 만남임에도 무척 화기애애했고 크뢰거의 작품과 매력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팬들과 동행 인터뷰가 처음이었던 필자에게도 무척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날의 즐거웠던 다이얼로그.

- 유튜브 동영상으로만 만나다가 실제로 뵙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팬들과 만난 기분이 어떠신가요?
저도 영광입니다. 한국에 제 팬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 한국에 온 소감이 궁금합니다.

어제 도착을 했는데 제일 먼저 느낀 것은 한국인들이 국제적으로 굉장히 열려 있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런가하면 전통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졌어요. 친절하고 아름답고요. (웃음) 그리고 아주 재능 있는 배우들도 만났죠. 굉장히 감동받았습니다.

- 무대에서 크뢰거 씨는 아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팬들은 당신을 ‘우마왕’이라고 부른답니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우마왕’이라고요? (웃음) 맘에 듭니다. I'll take it! 받아들일게요.

- 본 공연도 아니고 콘서트 무대에 게스트로 서기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한국에 올 결심을 하셨나요?
전혀!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어요. 마지막 순간에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제가 무대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게 될 지 그런 걸 잘 몰랐을 뿐이지 결정 자체는 쉬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틀 전에 무척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제가 실베스터 르베이, 미하엘 쿤체와 함께 1994년에 발매한 앨범이 있는데 그 앨범 수록곡(본 조비의 노래)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라이브로 부르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 일본에서는 여러 차례 공연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한국에서도 자주 만났으면 합니다.
일본에서도 2004년에 ‘엘리자벳’의 일본 라이선스 버전에서 토드를 연기했던 배우와 함께 한 차례 콘서트를 한 게 전부랍니다. ‘디바(Diva) 2004’라는 콘서트였죠. 저는 디바가 아니지만요. (웃음)

- 그런가요? 크뢰거 씨가 일본에서 인기가 많으셔서 자주 공연한 걸로 착각했나 봅니다.
제가 일본에서 유명한가요? 아시아에서 활동해야 할까 봐요. (웃음)

- 한국 배우들과 호흡은 맞춰 보셨나요?
아직은 콘서트의 진행 순서와 동선을 파악한 정도입니다. 아, 전동석이라는 배우와 듀엣곡을 한 곡 불러봤어요. ‘엘리자벳’의 넘버 중 하나인데 그가 독일어로 불러서 놀랐습니다. 무대에서 굉장히 신이 날 것 같아요. 독일어 발음도 훌륭하더군요.

- 한국어로 부르는 ‘모차르트’와 ‘엘리자벳’의 노래를 듣는 느낌이 궁금하네요.
이미 일본어, 헝가리어, 스웨덴어 등 다양하게 불렸기 때문에 외국어로 제 노래를 듣는 것이 그리 낯설지는 않아요. 한국어로 듣는 것은 무척 흥미로웠고 배우들의 음색이 아름다워서 무척 듣기 좋았어요.

- 1992년 ‘엘리자벳’ 초연에서 토드(죽음) 역으로 큰 인기를 얻으셨죠. 2012년에 한국에서도 ‘엘리자벳’이 공연될 예정입니다. 크뢰거 씨는 토드를 연기할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일단은 카리스마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작품 속 엘리자벳의 이야기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죠. 죽음의 천사로서 부드럽고 유혹적인 모습이 있는 반면 굉장히 어두운 모습도 보여야 해요. 죽음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건 간에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섹시해야 하지만 차가움과 냉정함도 동시에 갖고 있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죽음이라는 캐릭터는 깊이의 완성도가 꼭 필요해요. 수억 년을 살아온 토드는 정체된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러다 알 수 없는 뭔가에 이끌려 엘리자벳과 사랑에 빠지기로 합니다. 그런데 죽음이 뭔가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존재일까요?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죽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을 관객들에게 납득시켜야 하고 죽음 스스로도 그 사랑을 확신해야 해요.

- 최근 한국에서는 ‘모차르트’, ‘엘리자벳’ 과 같은 독일어권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독일어로 부르지만 만든 사람들은 오스트리아인들이죠. (웃음) 꼭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빈에 있는 공연 컴퍼니에서는 도전적이고 새로운 이야기의 뮤지컬을 극장에 올리는 것을 굉장히 독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자벳’ 같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었어요. 이야기를 믿고 밀어붙인 거죠. 또 하나의 비밀을 알려드릴까요? 1992년에 ‘엘리자벳’ 초연 이후 7년이 지난 1999년에 ‘모차르트’가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정체해 있다가 2006년에 ‘레베카’가 공연됐죠. 매직 세븐! 빈에서 7이라는 숫자는 참 마술 같아요. 2013년에는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어요?

- 크뢰거 씨는 1988년도에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로 데뷔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제가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네요 (웃음) 저의 첫 뮤지컬 무대는 1985년도에 있었던 뮤지컬 갈라 콘서트였어요. 그 후  ‘록키호러쇼’에서 손만 나오는 앙상블로 출연했고 날씬해지고 싶은 뚱뚱한 돼지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에서 록큰롤을 좋아하는 오리 역을 맡기도 했어요. (웃음) 1987년에 베를린에서 노래와 연기를 공부하면서 텔레비전에서 댄서로 일하기도 했고 서커스에서 춤을 추기도 했죠. 쇼호스트로도 일해봤고요. 그러다 1988년에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에서 처음으로 배역다운 배역을 맡았습니다.

- 20년이 훌쩍 넘게 뮤지컬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나폴레옹’을 제외하고는 작품의 타이틀 롤을 맡은 적이 없어요. 항상 주인공 다음 가는, 두 번째나 세 번째 정도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토드도 엘리자벳 다음의 역할이고, '미스사이공‘의 크리스도 킴과 엔지니어 다음 가는 역할이에요. ‘모차르트’의 콜로레도는 아주 작은 역할입니다. 등장 횟수가 통틀어 4번이에요. 물론 큰 역할을 맡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매번 주인공일 필요는 없어요. 어떤 역이냐가 중요합니다.

- 네, 그럼 이제 팬 분들의 질문을 받아볼까요?
물론이죠.

- 2006년에 독일에서 우베 씨가 팬텀으로 출연한 ‘오페라의 유령’을 봤어요. 아주 파워풀하면서도 섬세한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캐릭터를 맡으면 어떻게 특징을 잡으시나요? (김세영)
아주 섬세한 질문이네요. 저는 항상 캐릭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어요. 연출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작품 자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뭔지를 먼저 파악합니다. 작품의 배경과 캐릭터에 대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죠. 그런 후에는 나의 본능을 믿어요. 팬텀의 경우 그의 광기는 사랑에 대한 깊은 갈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지적이고 너무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추한 외모 때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학대당한 그는 자신만의 세상에 살면서 낭만적인 환상을 꿈꾸고, 무대에서 자신의 러브 스토리를 구현하고 싶었던 거죠. 저는 이렇게 역할에 개인적인 생각을 담으려 합니다. 물론 궁극적인 메시지를 놓아서는 안 되죠.

- 실제로 뵙고 놀랐어요. 나이에 비해 무척 동안이신데 비결이 궁금해요. (이경아)
마음가짐 때문인 것 같아요.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 어머니께 물려받은 좋은 유전자 덕분이기도 하고요. (웃음) 보시다시피 오늘은 메이크업도 했답니다. 아, 물도 많이 마셔요.

- 이제 마쳐야할 시간이 다 됐네요.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한국의 무대에 서는 것을 얼마나 영광으로 생각하는지 여러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재능 있는 캐스트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동적이에요. 그들과 함께 섞여서 어우러지고 싶어요. 그리고 조만간 다시 뵐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요. 또 이렇게 나이 든 저를 지켜봐줘서 감사합니다. (웃음)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무대를 지배하는 우베 크뢰거. 가죽 재킷과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반짝이는 징이 박힌 구두를 신은 채 터프한 록스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강렬한 외모와는 달리 무척 다정하고 세심했다. 느리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인터뷰어를 배려했고, 정성 어린 팬들의 선물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미리 사인을 준비해와 팬들에게 선물했고 즉석에서 ‘엘리자벳’ 중 토드의 솔로곡인 ‘Der letzte tanz(마지막 춤)’을 불러 감동을 선사했다. 팬들에게 2010년 10월 4일은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게다. 30cm 거리에서 들은 우베 크뢰거의 나지막한 노랫소리를 오랜 동안 잊지 못할 나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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