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홉의 연극 ‘갈매기’는 지금도 수많은 공연장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올라가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갈매기’는 상투적인 형식과 스토리 위주의 구성을 탈피, 새로운 서술구조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연희단거리패 대표 배우 김소희, 이승헌의 연기가 다른 어떤 수식을 압도할 만큼 결정적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10명의 인물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 같아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콘스탄틴을 사랑한다는 마샤의 말에 “모두 제 정신이 아냐! 전부다...어딜 가나 사랑이니...”라고 말했던 도른의 대사처럼 이 극의 등장하는 인물 모두는 얼마간 미쳐있거나, 결핍된 사람들이다. 이 극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을 섬세하고 깊고 예리하게 담아냈다.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갈매기’는 오는 7월 21일까지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된다.

- 퍼즐을 짜 맞추듯 재구성한 대본

공간 안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점심 먹기 전 그들은 로또게임을 즐긴다. 그 사이를 콘스탄틴이 걸어 들어온다. 작가이자 유명 여배우의 아들인 그는 천천히 관객석을 등지고 선다. 그리고는 총을 꺼내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쏜다. 천천히 콘스탄틴은 쓰러진다.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갈매기’는 콘스탄틴의 자살로 시작된다. 기존의 작품에서 그의 자살이 극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것을 생각해볼 때 역순행적 구성이다. 연출과 번역을 맡은 윤광진이 17개의 인상적인 장면으로 대본을 새롭게 재구성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이 구조는 지루하게 흘러갈 수 있는 체홉극을 단단하게 쪼여준다.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군더더기는 제거하고 극의 긴장은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 작가와 배우와 삶

작가와 배우는 선택받은 직업이다.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재능이 있다고 되는 건 더더욱 아니다. 하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만이 선택된 고독을 이겨낸다. 그들은 연약하지만 강하고, 때론 자살을 선택할 만큼 또다시 연약해지기도 한다. 희곡 작가 콘스탄틴은 자괴감과 애인 니나의 변심으로 자살한다. 배우가 꿈이었던 니나는 3류 연극배우가 된다. 그녀가 선망했던 유명 작가 트리고린은 사실 무언가를 써야한다는 강박 때문에 미쳐버릴 것만 같다. 외부의 힘에 농락당하는 구제불능의 삶이지만 그 역시도 순응한다.

연극 ‘갈매기’의 인물들은 고립되어 있다. 이들은 지루함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싸우고 사랑하고 꿈꾸고 운다. 박탈된 삶은 이를 보충하기 위한 대상들을 찾는 행위들로 채워진다. 이 작품은 삶의 결핍, 부족의 극적 결과를 보여준다. 극의 이야기보다는 인물 내면의 풍경에 더 초점을 맞춘다. 관객들은 그들이 느끼고 싸우는 게 무엇인지 안다. 배우들이 표현하는 인물들의 고독은 관객들을 따뜻하게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