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든 듯 남자의 어깨에 기대 두 눈을 감고 있는 여자와 여자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영원히 당신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는 남자. 이들의 사랑은 순결하고도 고결해 보인다. 헌데 여자의 무릎 위에 선명한 핏빛의 붉은 덩어리가 놓여있다. 여자의 두 눈은 남자의 움직임에 미동도 않고 감겨져 있다. 만약 여자의 감겨진 두 눈이 그녀의 생명이 다했기 때문이라면, 그리고 그녀의 죽음이 그녀만을 사랑한다고 말한 남자 때문이라면, 그의 사랑은 ‘사랑’이라고 불려 질 수 있을까.

연극 ‘코뿔소의 사랑’은 코뿔소 조련사 마루의 광기어린 짝사랑을 그려낸다. 밍밍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로 하여금 익숙한 작업복 대신 양복을 입게 하고, 조련사라는 직업에는 필요치 않은 영어회화와 컴퓨터를 배우게 한다. 코뿔소 툴라의 일지를 기록하는 작은 노트는 어느 순간부터 밍밍에 대한 정보과 그녀를 위해 지은 시들로 메워져 간다.

밍밍에 대한 마루의 짝사랑은 밍밍의 짝사랑과 엇갈려 어긋나기를 반복한다. 마루처럼 짝사랑으로 가슴 아파하는 밍밍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마루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한다. 남자를 위해 예약해놓은 밍밍의 케이크와 선물, 키스는 남자의 부재로 단지 ‘친한 이웃’에 불과한 마루에게 주어진다. 상처 입은 자신의 마음을 기만하던 밍밍은 마루에게 거짓 사랑을 속삭이며 그의 감정을 농락한다. 밍밍과 꿈같은 하룻밤을 보낸 마루는 행복에 도취돼 그녀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지만 마루에게 돌아온 건 밍밍의 차가운 몇 마디 말뿐이다.

“요즘 사람들은 누구도 맹세를 믿지 않아. 맹세는 단지 감정표현의 한 방식일 뿐. 꽃을 선물하고 함께 밥을 먹는 것과 다를 바 없지.”

하지만 마루는 짓밟힌 자신의 사랑을 끝끝내 놓으려 하지 않는다. 짝사랑을 찾아 떠나려는 밍밍의 목을 거칠게 조르는 마루는 숨이 끊어진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정성껏 화장을 덧입히며 영원히 그녀만을 사랑할 것을 맹세한다. 그리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코뿔소 툴라의 심장으로 마침내 사랑을 완성한다.

하룻밤의 유희나 서로간의 필요에 의한 인스턴트 사랑이 난무하는 요즘 마루의 사랑은 연애교수의 말처럼 “감정의 남용이 야기하는 각종 폐단”의 한 예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참혹한 사랑노래는 이상적이기에 구닥다리로 치부돼버린, ‘영원한 사랑의 맹세’가 모든 것이 급변하는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렇기에 그의 사랑은 음악의 긴 여운과 함께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뉴스테이지 박소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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