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한가운데 자리한 고립된 공간. 그 공간은 이름 모를 외딴 섬처럼 홀로 표류해있다. 감옥을 연상케 하는 철제 구조물은 투명한 아크릴판으로 둘러싸여 내부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투영해낸다.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해버린 남자의 일상은 집안의 가장에서 순식간에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해버린다. 연민어린 동생의 시선은 걷잡을 수 없는 혐오로 치닫고 마침내는 “저것이 오빠라는 생각을 버려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돈 버는 기계로의 전락에서 기계로의 능력조차 상실한 그레고리의 한정 없는 추락은 가족의 외면으로 암울한 말로를 맞이한다.
무대의 연극적 ‘변신’
무대는 각각의 독립된 공간으로 활용돼 그들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킨다. 그레고리의 방은 별개의 세트로 제작돼 극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인다. 방의 공간은 전면에 그대로 노출돼 ‘벌레’로 전락해버린 그레고리의 처참한 일상과 가족들의 냉대로 발현되는 인간의 잔혹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일상의 소품들은 이러한 잔혹성을 극대화한다. 토사물 찌꺼기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물과 와인을 곁들인 스테이크, 물이 뚝뚝 떨어지는 대걸레와 거실의 안락한 소파는 현격한 대조를 이루며 쓰레기더미처럼 뒤엉켜버린 그레고리의 공간과 냉엄하게 분리된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그레고리가 어머니의 뜨개질거리를 품에 안은 채 잠든 모습은 발가벗겨진 날것의 고독한 실존을 냉철하게 그려낸다.
배우의 연극적 ‘변신’
홍성락 배우는 걸음걸이에서부터 표정의 섬세한 디테일 하나까지도 쉽사리 놓치지 않았다. 한없이 선량한 미소의 그레고리는 어느새 쓰레기를 입 안 가득 우겨넣고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벌레로 변해있었다. 사람의 기척에 놀라 방구석에 숨는가하면 방천장의 기둥을 타고 식탁으로 넘어가 가족들의 모습을 관찰하기도 한다.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다리를 절뚝이며 어머니에게 다가가는 그는 다만 한 마리의 무시무시한 괴물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정확치 않은 발성과 불분명한 대사의 전달은 감정의 몰입을 방해하는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비정한 인간 군상의 무관심과 이기심이 낳은 존재의 근원적 고독은 벌레의 강렬한 이미지에 묻혀 농축된 원작의 밀도를 희석시키는 아쉬움을 남겼다.
무대와 배우가 혼신의 힘을 다해 구현해낸 ‘변신’의 작은 공간에는 소리 없는 적막만이 남겨졌다. 스냅사진처럼 선명한 장면으로 남겨진 연극적 영상은 긴 여운을 남기며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환기시켰다. 하지만 여운 위로 들려오는 그레고리의 목소리는 여운의 방점에 끝마쳐지지 않을 말줄임표의 수식을 덧붙이고 또 덧붙였다.
뉴스테이지 박소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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