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11.24 화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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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애수와 회환 한층 짙어진 김준수, 뮤지컬 ‘드라큘라’드라마틱한 음악과 회전무대, 강렬한 캐릭터 매력적

시각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피의 이미지를 이렇게 완벽하게 활용한 작품이 있을까. 십자가가 붉게 젖어들면, 노스페라투(악마)를 부르는 음산한 여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붉은 피가 가지는 불길하고도 두려운, 그리고 한편으로는 매혹적이면서 아찔한 유혹의 이미지가 이율배반적인 드라큘라의 일대기에 진하게 녹아든다. 게다가 삼연째 다시 돌아온 뮤지컬 ‘드라큘라’에서는 한층 더 애수와 회환이 깊어진 강렬한 ‘드라큘라’를 만날 수 있다. 뮤지컬 무대에 선 지 벌써 10년째. 수많은 연기 중에서도 “드라큘라를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로 단연코 손꼽았던 김준수가 핏빛 머리를 하고 ‘농익은 샤라큘라’로 다시 돌아왔다.

-드라마틱한 무대 회전, 드라큘라 성 오싹한 연출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한 이번 시즌은 화려한 4중 회전 턴테이블이 더욱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해 무대를 꽉 채우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삼연은 세세한 수정과 보완으로 서사의 완성도를 더욱 끌어올렸는데, 극 초반에 등장하는 ‘드라큘라’의 아내 초상화는 ‘드라큘라’와 ‘미나’의 과거 인연을 상상하게 했고, 이후 ‘미나’를 향한 ‘드라큘라’의 강렬한 애정을 감정적으로 납득시키는 효과적인 장치로 작용했다. 영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블랙 스크린 설치나, 무대 위쪽 공간을 활용한 플라잉 장치 등은 장면마다 신비롭고 극적인 분위기 연출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극 초반 ‘드라큘라’ 성의 내부 곳곳을 보여주는 무대 회전 장면이었다. ‘드라큘라’와 ‘조나단’, ‘미나’가 공간을 이동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회전되는 4중 무대는 단순한 장면 전환이 아니라, 몽환적이고 음산한 성 내부를 직접 이동하며 탐험하는 듯한 드라마틱한 연출을 선보였다. 여기에 성을 감싸는 안개나, 푸른 조명, 에코나 그림자 연출 등이 때때로 더해지면서 400년을 살아온 드라큘라의 압도적이고 위험한 힘이 고딕풍 성의 외관과 함께 충분히 오싹하게 전달됐다.   

-김준수 농익은 ‘샤라큘라’, 감정의 완급조절 놀라워

김준수는 기존의 ‘드라큘라 백작’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면이 있다. 특히 초연 때는 극 초반 백발노인의 모습을 연기할 때 그 특유의 가는 미성과 기존의 앳된 이미지가 캐릭터 몰입에 방해가 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재연을 거쳐 삼연이 되니, 그가 성숙해진 것인지 캐릭터가 진화한 것인지 400년 동안 한 여자만을 사랑해 온 내면의 순수함과 외면의 괴기한 노인의 욕망이 한 캐릭터 안에서 완벽하게 녹아든 것을 느꼈다. 특히나 농익은 김준수가 보여주는 감정의 완급조절이 놀라웠다. 노인의 모습일 때는 특유의 쇳소리가 줄고 단단한 저음으로 음산한 울림을 전달하더니, 젊은 모습을 되찾은 후에는 섬세해진 고음으로 애절한 내면의 작은 흔들림마저 전달했다. 마치 인간과 악마 사이에서 그의 영혼이 방황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연기였다.

갑자기 고음을 터뜨리거나 낮게 윽박지르지 않아도, 충분히 애절한 동시에 위압적이었던 김준수의 ‘드라큘라’는 완전히 자신의 캐릭터라는 자신감이 풍긴다. 그의 개성은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드라큘라’의 이미지에 새롭고 생생한 존재감을 채색하는 효과마저 준다. 조나단의 피로 젊음을 되찾으며 화려하게 부활하는 ‘Fresh Blood’의 임팩트도 여전히 눈과 귀를 자극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드라큘라’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넘버 ‘She’와 미나에게 애절하게 고백하는 ‘Loving You Keeps Me Alive’였다. 김준수는 순수했던 만큼 깊이 타락해버린 ‘드라큘라’의 내면을 설득력 있고 호소력 짙게 표현함으로써, 악마가 아닌 한 인간, 특히 순수한 청년과 같은 인간적인 ‘드라큘라’의 모습을 관객이 기꺼이 받아들이게 만든다.

-망치 같은 굳건함 vs 송곳 같은 광기, 손준호-조성린

드라큘라와 극 후반까지 대립 구도를 이루는 ‘반 헬싱’과 드라큘라의 심복인 ‘랜필드’는 상반된 캐릭터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중요한 배역들이다. ‘반 헬싱’을 연기한 손준호는 특유의 단단하고 풍성한 중저음이 마치 망치처럼 굳건한 울림을 준다. 특히 아내를 죽게 한 과거를 떠올리며 복수심에 불타는 ‘Last Man Standing’은 정의롭고 남자다운 ‘반 헬싱’의 캐릭터를 잘 표현한 솔로곡이다. 또 그의 탄탄한 발성은 다른 배우들과 합을 이룰 때도 단연코 빛이 나는데, ‘드라큘라’와의 대결을 뜨겁게 그린 ‘It's Over’는 강렬한 멜로디와 액션까지 더해지면서 감정의 고양을 절정까지 끌어올린다. 고음인 김준수와 중저음의 손준호가 서로 다른 음역대로 섞여드는 강렬한 보컬은 관객에게 둘의 이질적인 캐릭터를 와닿게 하는 동시에 전투의 박진감을 짜릿하게 느끼게 하는 명장면이다.

‘랜필드’를 맡은 조성린의 광기어린 연기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드라큘라와 정신적 교감을 하는 그는 기이한 행동-과 함께 주인에 대한 집착과 확신을 다양한 표정과 목소리로 표현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그가 노래할 때 송곳처럼 날카롭게 찌르는 음색은 ‘반 헬싱’과의 만나는 장면에서 서로 다른 음색이 대비되어 그 매력이 더욱 두드러졌다. 무대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길게 이어지는 그의 비명. 비교적 짧은 등장만으로 제 역할을 충분히 각인시키는 조성린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발랄함에서 퇴폐미로 변신, 이예은의 ‘루시’

비극을 연기를 할 때 숨이 섞여드는 이예은의 애절한 고음 또한 객석의 탄성을 자아낸다. 극의 초반 세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발랄하고 천진한 아가씨의 연기도 좋았지만, ‘드라큘라’를 만난 후 영혼을 잠식당하는 ‘루시’의 연기는 그야말로 시선을 빼앗는다. 새빨간 의상과 몽환적인 표정 연기는 흡혈귀로 다시 태어난 이후 더욱 매혹적인 퇴폐미를 발산하며 관객을 과감히 유혹한다. ‘드라큘라’에게 처음 이끌림을 느끼기 시작하는 넘버 ‘The Mist’나, 흡혈귀로 다시 태어난 후 드라큘라와 함께 부르는 넘버 ‘Life After Life’는 드라큘라만큼이나 극적으로 변신하는 ‘루시’의 매력을 잘 드러낸다. 발랄한 음색에서 출발한 이예은의 연기가 섬세한 고음을 거쳐 강렬하고 유혹적인 고음으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해 극을 보면, ‘루시’의 이중적 매력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드라큘라’의 마지막은 두 연인이 서로의 마음을 강하게 확인한 직후의 비극적 결말이라는 점에서 더욱 애절한 여운을 남긴다.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그들은 뜨겁게 슬퍼하며 아름다운 죽음을 택한다. 타인의 생명을 희생시키며 자신의 삶을 연장해왔던 ‘드라큘라’가 오직 죽음으로써만이 인간적 삶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아름답다. 웅장한 성 안을 장악했던 그가 좁은 관에 들어가 안식을 취하는 모습은 그의 고독했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드라마틱한 무대와 음악, 캐릭터의 강렬한 매력까지. 이만큼 객석을 두루 만족시키는 판타지 로맨스가 있을까. 김준수가 ‘드라큘라’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했던 이유를 막이 내림과 동시에 실감했다. 

사진 제공_오디 컴퍼니(주)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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