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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명의 희곡읽기 16] 현실의 나, 허구의 나 -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연극은 저희들 속에 있어요. 저희가 바로 연극입니다.
여러분이 창조해 내야 하는 환각이 우리에게는 유일한 실재가 되는 겁니다.”

얼마 전 우연히 ‘잉크 하트(Ink Heart)’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굳이 풀이를 하자면, 문자가 가진 심장일 터. 작가의 창작물인 문학작품이 실버통(silver tongue)이라는 신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순간 ‘잉크’가 ‘심장’을 갖게 된다. 즉 실버통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써진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 그 읽는 내용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을 모른 � 아기에게 소리 내 책을 읽어주었다가 ‘잉크 하트’라는 작품 속 인물들이 현실세계로 오게 되었는데 이때 작품 속으로 그의 아내가 들어가 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한 번 현실로 들어오면 같은 작품을 다시 읽지 않는 동안은 인간과 함께 머물게 된다. 창작된 허구의 세계와 실제 세계가 뒤섞여 있는 점이 흥미로운 영화였다.
‘잉크 하트’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현실에 맛을 들인 악당이 ‘잉크 하트’를 모조리 회수해서 작품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또한 그는 실버통을 찾아내어 작품으로부터 금은보화를 가져온다. 그가 지배하는 성에는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도 살고 알리바바의 도적들도 살고 있었다. 주인공 역시 딸과 함께 아내를 구출하기 위해 ‘잉크하트’를 찾아 전국의 헌책방을 모조리 뒤지고 다닌다. 결국 ‘잉크 하트’의 작가를 찾아 내용을 수정하기에 이르고……. 이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문자의 힘을 그렸기 때문이다. Written words have power! 작가는 말한다. “내가 쓰는 작품이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면 인물들이 내 손을 떠나서 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빠져서 오히려 현실을 부정한다. 결말에서 그는 주인공에게 자신을 ‘잉크 하트’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한다. 실버통인 주인공이야 소리 내어 읽기만 하면 될 뿐이니…….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작품이 있었다. 루이지 피란텔로(Luigi Pirandello, 1867-1936)의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6 Characters in Search for an Author)’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의 등장인물이 자신들의 연극을 써줄 작가를 찾아 극단을 방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은 완전한 사기로 출발한다. 관객은 극장 안에 들어와서는 리허설이 진행 중인 걸 보게 되고, 극장 밖 세계와 동일한 현실 세계 속에 자신이 들어와 있다고 여기게 된다. 이 작품은 극장의 텅 빈 무대에서 연극연습이 시작되려는 무렵에 시작된다. 그들은 그들의 얘기가 공연이 되어 그들에 관한 진실이 알려지게 되기를 요구한다. 연출자가 결국 그들에게 설득당해서는 그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즉흥적으로 창안해 낼 것을 제안한다. 그들의 공연은 원작의 조잡한 희화화에 지나지 않게 되고 연극적 리얼리티의 인위성이 드러난다. 소위 극장주의(이에 관해서는 다음을 기약한다.) 계열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예술적 창조과정을 보여주며 인생과 예술의 상이점에 대한 환각과 현실, 그리고 가면과 얼굴의 관념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작가 피란델로의 견해를 보여준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크게 두 가지 층위로 나뉜다. 연극을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 예컨대 배우와 연출, 무대일손 등과 그들을 설득해 자신의 연극을 하려는 등장인물, 즉 아버지, 어머니, 의붓딸, 아들, 소녀, 파체부인이 그들이다. ‘인생은 연극이요 세상은 무대’라는 개념에서 봤을 때 연극은 그 본질 속에 극중극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런 연극 자체가 또 극중극을 사용하여 이른 바 ‘극중 극중극’을 만들면 ‘극중극’에서 창조한 작중인물이 바로 ‘극중 극중극’을 만드는 극작가가 되는 것이다. 이 극 속의 극작가는 물론 허구적인 존재로 그 자신이 인위적인 현실이긴 하지만 흔히 완전한 자의식을 갖추고 있어 작가가 그에게 준 역할이나 그를 위해 설정한 운명의 과정을 그대로 따르지 않거나 때로 햄릿이나 폴스타프처럼 자신이 등장하는 작품보다 더 크게 확대되어 보이는 수도 있다.

“굳이 말씀드리자면 모든 게 여러 가지 방식, 여러 가지 형태로 태어난다는 거죠. 이를 테면 나무, 돌, 물 또는 나비……. 아니면 여자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연극의 등장인물로도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중략) 작가에 의해 창조된 인물이 이 무대 위에서 서로 만나게 될 때 난데없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못 보셨나 보지요. 아니면 저기에는 (프롬프터를 가리키면서) 우리가 들어있는 극본이 없으시다는 말씀인가요?”

“사람은, 작가는, 창조의 도구인 인간은 죽습니다. 그러나 그의 힘으로 창조된 존재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무슨 뛰어난 자질이나 귀재가 있어야 할 필요는 조금도 없지요. 가령 산초 판자는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돈 아보디오는 뭡니까? 그렇지만 그들은 영원히 살고 있지요. 왜냐고요? 생명의 씨앗인 그들이 자기들을 잉태하는 모체를 찾아내는 행운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뜻하는 연극은 한 가지 것, 즉 우리는 각자가 단일한 인간이라고 믿고 있다는데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각자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인간입니다. 각자가 자기 속에 갖고 있는 존재의 모든 가능성에 따라 여러 개의 인간이 되는 거죠.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누구에게든 한 가지 사람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고 있어요. 무슨 짓을 하건 항상 우리는 한 가지 인간이라고 믿는 겁니다. 허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니고말고요! 이 점을 우리는 아주 뚜렷이 알게 되지요. 우리가 무언가 하다가 비극적 우연으로 그만 허공에 떠버렸다고 느낄 때 비로소 그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위의 ‘아버지’의 대사처럼 극의 전반부에 등장인물의 관점, 즉 창조된 허구적 인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실제 인간에 대한 견해가 담겨있다면 후반부에는 연극을 올리는 방식과 연기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다음 편에서는 후반부를 통해서 모호하게 얽힌 진실과 허구, 현실과 연극의 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글 김지명(무대감독) jeem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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