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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처럼 행복한 ‘샤인’

 

지난 2002년 ‘인간극장’이라는 이름 아래 방송을 탄 성탄이가 뮤지컬로 돌아왔다. 5년이 흐른 지금, 사춘기를 맞은 17살의 모습으로 말이다. 혹시 이 뮤지컬이 방송의 힘을 믿고 무임승차 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뒤로 밀어 두어도 좋을 듯하다. 실화에서 오는 잔잔한 감동을 무대에서 결코 해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성탄이가 태어나기 전,후로 나뉜다. 그러나 구성에 있어 의도적으로 꼬아둔 흔적이 보인다. 시작은 누군가에게 맞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이내 무대는 양분화 되어 젊은 시절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88올림픽을 개최하던 시절이다. 도끼빗으로 머리를 빗어 넘긴 듯한 장발의 젊은이와 미니스커트 길이를 단속하는 경찰이 그 시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 때 시대를 풍미하는 젊은이 하나가 또 있다. 그는 미 8군부대에서 한껏 폼을 재며 기타를 치는 박영종이다. 후에 주인공 박성탄의 아버지가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폼을 재다 못해 대마초까지 손을 댄 그는 감옥행에 이어 조폭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잘나가던 그의 인생이 엉키고 꼬이면서 다시 극의 초입의 장면으로 돌아온다. 누군가에게 배신당하고 맞는 모습이다.  

이즈음, 이 작품의 연출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연출력에 있다. 이 이야기는 마치 외줄타기를 하듯 티끌만큼의 실수도 없이 이해와 모호함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었다. 올해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을 수상한 김달중 연출가의 명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도 역시 80년대를 향유한 젊은이였으리라. 섬세한 복고 스타일의 소스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특별한 웃음을 주었으니 말이다. 그의 매끄러운 시간 구성과 작품 콘셉트에 정확히 맞춰진 웃음의 파장은 색다른 빛을 내고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두 번째 매력으로 꼽을 수 있다. 단 4명의 출연배우들은 각각 큰 굴곡 없이 자신의 주어진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주변인물을 모두 담당하는 M 역의 최재웅은 그 변신이 매번 새로웠던 만큼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진정으로 그가 없으면 ‘샤인’은 존재하지 않을 정도다. 산후 정신지체자가 된 어머니 역의 양꽃님, 아버지의 젊은 역할부터 성탄이의 7세, 17세까지를 연기하는 박인규도 부족함 없는 연기를 자랑했다. 그러나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한성식의 ‘좋다’라는 대사 한 마디로 모든 게 평정된다. 빠르게 흐르는 이야기 속에서 그의 ‘좋다’는 말 한마디는 순간 모든 감각을 정지하게 만든다. 그것은 마치 탄산음료를 막 돌려 딴 듯 청명하면서도 반면으론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무대는 별다른 세트 없이 텅 비어있는 느낌이 들었으나 배우들은 관객들 스스로 그림을 그리게끔 이끈다. 비록 변화 없는 무대더라도 진정 그곳은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것은 개인들이 가진 상상력이었다.

그래서일까? 많은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훌쩍대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고루할지도 모르는 ‘가족애’라는 주제가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순수함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억지가 없다. 이 이야기가 실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지 모르겠으나 억지로 관객의 눈물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배우들은 그 누구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고, 신파극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왜 관객들은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역설적인 작품의 주제의 탓일 것이다. 어두운 무대만큼 그들의 인생은 지긋지긋하게 불운해 보인다. 그러나 성탄이를 지키기 위한, 엄마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인생은 눈물겹게 아름답다. 그 때 ‘샤인’이라는 제목이 주는 의미를 알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음악활동을 방해하는 가족 따윈 필요 없다며 가출했던 박영종이 정신지체아 부인에게 ‘당신은 나에게 음악이다!’라고 말함으로써 표출된다. 그리고 그 주제는 너무 평범하기만 한 일상을 불만 섞인 목소리로 칭얼거렸던 우리들을 포근하게 쓰다듬어 준다.

이 작품을 착한 뮤지컬일 것이라 예상한 이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물론 예상 밖의 걸쭉한 농담과 단어들이 전개될 때에는 놀랄 법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너무도 아름답게 구성한 진정으로 착한 뮤지컬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사춘기를 맞은 17세의 고등학생 성탄이가 꿈을 노래할 때 관객들은 진심으로 그가 훨훨 날아오르기를 응원하게 된다. 성탄절에 태어난 성탄이... 크리스마스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날인 것처럼 그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

뮤지컬 ‘샤인’은 콘텐츠의 차별성이 뚜렷하다. 음악은 80년대 ‘로큰롤(rock and roll)’ 스타일로 귀를 즐겁게 한다. 세련되지 않은 선율이었지만 작품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만 등장하는 춤도 ‘3cm 반경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조폭의 말처럼 절도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누구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흥을 가진 움직임이었다. 이 작품이 특별히 복고 스타일을 고집하는 만큼 그 시대의 낭만과 깊이도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보는 이들은 두 가지의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첫 째는 완성된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듯한 만족일 것이고, 두 번째는 사랑 이야기 일색이었던 창작뮤지컬이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는 성취감일 것이다.
뮤지컬 ‘샤인’은 성탄이를 응원하는 만큼 한국창작뮤지컬을 응원하게 만드는 ‘빛’과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김유리 yuri400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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