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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임리뷰] 뮤지컬 <스핏파이어그릴> ‘희망, 그 웅크린 어깨를 펴다’

 

뮤지컬 <스핏파이어그릴> ‘희망, 그 웅크린 어깨를 펴다’
2007년 6월 13일, 충무아트홀
연출 김달중
cast 이주실, 조정은, 조유신 등


뮤지컬 <스핏파이어그릴>은 1996년 선댄스 영화제 최우수 관객상을 수상한 동명의 영화를 소극장용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으로 국내 초연작이다. 뼛속까지 온통 상처뿐인 여주인공 '펄시'가 호젓한 달빛그림자 같이 쓸쓸한 '길리야드'에 정착하게 되면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이 작품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 지극히 미국적인, 하지만 고요한 듯 퍼지는 ‘공감(共感)’
희한하게 우리 정서와 맞다. 무대와 구조는 외국시골의 정서를 그대로 나타내며 영화를 보는 듯 하다. 하지만 탄탄한 스토리는 각 인물에 우리와 너무도 닮아있는 친밀감을 더해 준다. 마음을 굳게 닫은 ‘펄시’의 그 차가웠던 마음이 녹는 과정은 너무도 일상적이지만 그 일상적임에 관객들은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그 곳, ‘길리야드’의 잊혀졌던 원래 모습을 찾아내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각 인물의 구성은 스토리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인물들의 상호관계 또한 간명하지만 극이 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기에 충분하다. 깐깐하고 무뚝뚝한 ‘한나’,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쉘비’, 소심한 보안관 ‘조’, 거칠고 불만이 많은 ‘케일럽’ 등 이들은 마치, 누군가에 의해 무리하게 세상 끝에 떠밀려온 것처럼 마음이 엉망인 채로 살고 있다. 그들의 상처 또한 다른 형태로 고스란히 극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추운겨울도 지나면 자연스레 봄이 오듯 아무도 풀 수 없을 것만 같던 마음의 매듭이 풀리고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던 그들도 결국엔 ‘평온함’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입고 그 상처에 아파하다가도 뜻하지 않은 곳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는 세계 어디를 가나 변함없나 보다. 이 작품은 어떤 화려함이나 비주얼함 없이도 그것을 관객과 함께 나눈다.

― 음악, 그 어쿠스틱(acoustic)의 무한함
<스핏파이어그릴>의 음악은 마치 인간감정의 ‘고향’ 행세를 하는 듯하다. 모자람이나 넘침이 없이 모든 인간의 감정을 다룬다. 바로크시대의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음악을 내보이다가 어느덧 드라마틱한 표제음악과 민족주의를 담고 있고 또 어느새 간결하고 스탠다드(standard)함으로 무대를 꽉 채운다.
가장 돋보이는 점은 매우 뛰어난 저음의 활용과 리듬과 화성의 환상적인 조화가 빛을 발한다는 점이다. 아르페지오의 반주 형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평범한 멜로디에 어려운 리듬의 반주가 들어가는 등 반주는 노래와 상관없이 독립적이다. 폭발적인 가창력을 요하는 노래들은 아니지만 결코 쉬운 멜로디의 음악은 아니다. 스타카토와 레가토 등 맺고 끊음의 탁월함과 익스프레션(Expression. 음악적 표현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의 적극적인 표현은 이들의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특히 ‘펄시’가 서투르게 요리를 하는 장면이나 ‘에피’가 마을에 소문을 내기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할 때 내보인 음악은 빠른 호흡이지만 감각적으로 반복되며 위트가 넘친다.
모든 음악은 드러남과 숨겨짐 없이 수평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이상하게도 한국적 정서와 닮아 있다. 이것은 이들의 노래가 두성과 비성을 이용한 꺾임을 많이 사용하는 점과 시끄럽지 않은 장식음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친근함이 느껴진다. 많은 부분 한국의 음악과 다르지만 그 감동의 정점이 서로 닮아 있다는 것은 이 작품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 Dear Mrs. Ferguson!
닫혀있던 그들이 소통하게 되는 매개체는 바로 ‘편지’다. ‘Dear Mrs. Ferguson!’으로 시작하는 타지(他地)인들의 편지는 ‘길리야드’의 ‘절망’에 물음표를 찍어 주었다. 그 어느 곳과도 단절되어 늘 떠나고픈 ‘길리야드’를 ‘특별한 길리야드’로 변화시킨다. 커피 잔에 수다를 따르는 곳, 세상가득 천국의 빛깔을 가진 우리의 고향으로 말이다.
이것이 바로 '편지'의 힘이다. 관객들은 또한 당장이라도 누군가에게 자필의 편지를 쓰고 우표의 힘을 빌어 먼 곳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쳐진 어깨를 바로 세우는 힘, 너무나도 가까이 있었다.

― 이들의 ‘구원과 희망’에서 지금은 잊혀져버린 오랜 가르침을 보다
“상처가 깊으면 낫는 과정도 힘들지” 극 중 펄시의 이 대사처럼 상처받은 사람은 무엇이든 어렵다. 마음의 문을 다시 열기도, 누군가를 이해하기도 참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절’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단절’을 푸는 ‘소통’의 힘이 이곳에서 보인다. 인간에게서 배울 수 있는 오랜 가르침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극 중 ‘조’에게는 쓸모없게만 보이는 ‘숲’이 ‘펄시’에게는 늘 꿈꾸던 곳이었으며, ‘한나’의 부끄러운 아들 ‘일라이’또한 아이를 잃은 아픔이 있는 ‘펄시’에게는 부러움일 뿐이다. 상처로 인한 ‘단절’의 명약은 우리의 발밑에 있고, 진리는 바로 옆에 있다. 그것을 <스핏파이어그릴>의 무뚝뚝한 그들이 알려준다.

― 기회를 잡아요! 바로 <스핏파이어그릴>에서.
이 작품은 마치 극 중의 ‘길리야드’라는 곳과 매우 닮아있다. “천국은 바로 여기!”라는 그들의 노래는 ‘고향’이라는 단어자체도 잊혀진 요즘 시대에 많은 부분 귀감이 된다.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의 고향 말고 내 마음이 열린 그곳을 ‘고향’이라고 두자. 무엇이든 침착하고 낭비가 없는, 그래서 서두르지도 강요하지도 않는 ‘감동’이 충만한 곳, <스핏파이어그릴>에서 그 ‘고향’을 만나보자.


공정임 kong24@hanmail.net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7년 6월 23일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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