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8.9.21 금 16:01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리뷰
[리뷰] 모독당한 천재의 고뇌, 뮤지컬 ‘스모크’미스터리한 서사, 이상의 매혹적인 시 세계 형상화

알 수 없는 것만큼 매력적인 것이 또 있을까. 알 수 없는 것을 알기 위해 골몰하는 과정은 매혹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매력적인 대상이다. 게다가 가장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시 세계를 보여주는 ‘시인 이상’을 무대화 했다면 관객의 주목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뮤지컬 ‘스모크’는 수수께끼 같은 세 인물을 등장시켜 미스터리적 서사를 통해 관객이 천재 시인 이상의 고뇌에 공감하도록 이끈다. 작품은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대사, 알듯 말듯한 전반부의 서사가 꽤 난해해서 해석을 결코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마치 이상의 시처럼 다소 ‘이상’스러운 작품이다.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누구보다도 시대를 앞서 갔던 모더니스트이자 천재 이상, 그의 고뇌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상의 시와 닮은 ‘무대’
-반투명 돔 구조, 세 인물로 형상화한 고뇌

뮤지컬 ‘스모크’의 무대는 직선적인 높이가 느껴지는 독특한 반투명의 돔 구조다. 이상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도록 인간의 뇌를 형상화한 의도가 숨어 있다. 작품의 제목답게 연기처럼 ‘홍’을 등장시키는 연출도 인상적이다. 현실과 망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인물을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서사는 비교적 단순하나, 액자식이면서 수미상관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수감된 상태의 이상이 세간에서 들려오는 비난의 환청을 들으며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 속에 또 다른 서사인 세 인물 ‘초-해-홍’의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다시 수감 상태에서 풀려난 후의 이상의 이야기로 합일된다. 세 인물이 뚜렷이 다른 개성을 가진 만큼 초반의 충돌과 갈등은 흥미를, 후반의 화해와 합일과정은 감동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전반부의 ‘초-해-홍’의 납치 이야기는 다소 불친절하고 난해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전반부만으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작품은 감정이 몰아치는 후반부를 위해 전반부에 함축적인 포석을 깔아두는 미스터리 구조를 택했다. 하지만 작품 전체에서 볼 때 미스터리의 해답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미스터리가 비교적 쉽게 풀려버리면서 조금 맥 빠지는 기분이 드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매우 공을 들인 화려한 연출들이 후반부에 집중 배치되어 객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거울을 형상화한 조명이 무대를 반으로 가르는 연출은 김종구 배우가 프레스콜 현장에서 “자본주의 만세”라고 농담처럼 언급했을 만큼 압권인 장면이다.

이상의 시와 닮은 ‘모티브’
- 거울과 자아분열, 자아부정과 자기위조 

뮤지컬 ‘스모크’의 기본 서사는 이상의 시 ‘오감도’ 시제15호를 기반으로 한다. 이상의 시 세계에서 ‘거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미 그의 여러 작품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이상은 ‘나’라는 자아를 하나의 정체성이 아닌 하나로 화합될 수 없는 여러 개의 분열된 존재로 인식했다. 이 때 ‘거울’은 자아 분열의 도구이자, 분열된 또 다른 자아를 만나게 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 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다. 나는지금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다. 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를하는중일까. - 이상의 ‘오감도’ 시제 15호 중에서 -

뮤지컬 ‘스모크’는 이상 시에 등장하는 자아분열의 모티브를 그대로 차용해 세 인물로 표현했다. 하나의 자아가 또 다른 자아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을 기억상실처럼 서사에 활용했고, 서로 다른 자아간의 충돌이라는 내면 갈등을 형상화된 인물들의 외적 갈등으로 치환했다. 이상의 작품과 시 세계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알려지지 않은 시인 이상의 내면적 고뇌를 대리체험할 수 있고, 스릴러적인 긴장감도 함께 느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이상의 수많은 시와 소설의 구절을 적절히 인용하고 녹여서 대사와 가사에 활용한 것도 이상의 작품을 새롭게 체험하게 하는 즐거움이 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미스터리가 풀린 후에 셋의 구도와 주제의식이 비교적 단순해지면서 직설적으로 주제를 전달하려한 접근방식이다. 절망에 빠진 이상을 의지적이고 희망적인 자아가 일으켜준다는 결말이 다소 뻔한 교훈전달로 느껴질 수 있다. ‘홍’을 여성 캐릭터로 설정한 것도 단순한 남녀 간의 애정으로 단편적인 해석을 낳을 우려가 있어 보인다. 다만, 이 또한 난해한 천재의 자아분열을 더욱 알기 쉽게 전달하려는 의도이자, 이야기의 본질을 최대한 숨기려 한 맥거핀(미끼)의 일종이라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자아의 분열이라는 모티브도 이제는 흔한 소재가 됐지만 모독당한 천재가 고뇌하는 과정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선택도 없어 보인다.

모독당했던 천재, 이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 시대를 초월하는 매혹적인 물음표

이상의 시가 그 난해함 때문에 미친 사람의 말장난 같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음에도 오늘날 여전히 많은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문학을 통해 다른 인물의 정서에 공감하는 대리체험을 원하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규범을 파괴하고 새로운 경지를 체험하는 미적 충격을 갈망하기도 한다. 마치 수수께끼와 같은 그의 시 세계는 정확한 답이 없기에 오히려 지적 호기심이 강한 독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뮤지컬 ‘스모크’는 그의 암호와도 같은 시와 소설의 구절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그 모호함의 여백은 해석의 여지로 남겨두면서, 천재가 암울한 시대에 겪었을 고통과 고뇌는 생생한 인물들의 감정 표현과 갈등 구조로 전달하는 이중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작품의 초반 “천재가 되고 싶었으나 박제 같은 인생을 산 게 아니냐”며 좌절했던 이상은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절망”하기도 했으나, 후반부 또 다른 내면 자아의 부추김으로 인해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여전히 현실은 암울하고, 자신의 시는 박수 받지 못하겠지만 그는 결국 “여자도 남자도 아닌 그저 예술가”이기에, “유쾌하게 웃는 것”을 선택한다. 이상의 선택은 세상을 납득시키는 데 비록 실패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운명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시대를 바꾸는 힘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이상의 시는 시대를 초월해 현대에도 여전히 매혹적인 물음표로 남아 있다. 그의 함축적인 시어를 곱씹는 말맛과 함께 그의 난해한 시 세계를 음미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뮤지컬 ‘스모크’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사진출처_(주)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