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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performance] 위기의 순간에 드러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젊은 안무가의 시각으로 표현한 김판선의 ‘emergency(긴급)’

 

‘평론가가 뽑은 제 11회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 2008’이 지난 7월 16, 18, 20일에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되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2007년도 공연 최우수 안무자로 뽑힌 김판선이 ‘emergency(긴급)’라는 주제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관계와 상황에 따른 긴급함을 표현하였다.

‘emergency(긴급)’는 말 그대로 비상사태이다. 김판선은 긴급함을 표현하기 위해 한 공간 안에서 8명의 무용수들이 벌이는 심리적인 갈등을 몸으로 표현해 냈다. 어두컴컴한 무대는 마치 공포스릴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붉은색 화장대와 한 개의 램프, 초록색 벨벳 소파가 배치되어 있었다. 8명의 무용수들은 각각 여러 방향으로 나뉘어서 엎드리기도 하고 무대를 이리 저리 돌아다니기도 했다. 특히 주술적인 음악이 흐를 때는 무대의 맨 앞에 서있는 여자 무용수가 정신분열을 일으킨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이어 다른 무용수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몸을 부르르 떨며 어두운 무대에 혼란을 가중시켰다. 모든 무용수들의 표정은 어두웠으며 극도로 긴장된 상태의 모습을 보였다. 또 두 명의 남자 무용수가 긴 회색 코트를 입은 여자무용수의 옷을 벗기려고 하자 여자무용수는 반항하며 옷을 벗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치며 발버둥 쳤다. 이 여자 무용수가 어디를 가든지 남자 무용수들은 달려가서 그녀를 데려온 뒤 절대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이렇듯 무용수들은 서로를 억압하고 제압하는 몸짓을 보이며 단절된 의사소통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강렬한 음악이 흐른 후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더욱 빨라지고 거칠어졌다. 외투를 입었던 여자 무용수는 화장대 앞으로 가서 옷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붉은색 미니스커트로 갈아입었다. 또 다른 여자무용수들도 검은색, 초록색, 하얀색의 옷을 입고 높은 하이힐을 신으며 무대 위에서 한껏 멋을 부렸다. 그러더니 3명의 남자 무용수들과 짝을 이뤄 서로 눕기도 하고 남자무용수 위에 여자 무용수가 앉으며 서로의 몸을 만지는 등 성(性)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한 점이 역시 젊은 안무가다웠다. 무방비상태에서 극도로 흥분된 이들의 모습은 어두운 공연장에 적막이 흐르듯 모든 것을 정지시켜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했다. 갑자기 빠른 템포의 테크노 음악이 흐르자 서로 몸을 부대끼며 함께 했던 무용수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무대 앞으로 나와 이리저리 흩어졌다. 하이힐을 신었던 여자 무용수들은 신발을 벗어버리고 무대 위에서 뛰고 구르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그중 한 명의 여자 무용수는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지르며 무언가를 계속 얘기했다. 곧이어 이 여자 무용수만 남겨둔 채 다른 무용수들은 도망치듯 관객석으로 뛰어들었다. 이 작품에서 무대는 위기사태에 직면한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무용수들은 이성을 잃고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켜 뜻하지 않은 행동을 서슴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무용수들이 관객석으로 뛰어든 것은 이러한 위기의 공간을 벗어나고자 한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보여진다.

김판선의 ‘emergency(긴급)’는 다양한 소품과 음악이 주제와 맞게 잘 어우러진 작품으로 긴급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게 되는지 무용으로 잘 나타내 보여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위기는 예고 없이 일어나고 있다. 김판선은 이러한 위기의 순간을 미리 제시함으로써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현대무용은 관객들이 이해하기 힘든 작품들이 비일비재한데 비해 김판선의 ‘emergency(긴급)’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표현을 무대에 올려 현대무용의 고정관념을 깬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하나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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