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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길 떠나는 가족’ 어머니=조국=작품, 그리고 중섭

이중섭은 왜 그토록 ‘소’를 사랑했을까.  

피카소는 대단한 혁명가였지만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는 이중섭을 혁명가로 만든 것은 힘든 시대상도, 애국심도 아닌 작품이었다.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했던 예술가의 외로움으로 빚어진 작품 ‘소’였다.

제주, 서귀포, 그리고 이중섭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휴양 도시 제주는 이제 따로 명소를 지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섬 전체가 관광 스팟이 됐다. 관광 수요가 늘어나면서 명소 코스만 방문하고 체험했던 종래의 여행공식이 깨지고 ‘발길 닿는대로’ 여행족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주의 예술에 관심 갖는 이들도 많아졌다. 내륙과 단절된 독립된 지역의 특색에 매료된 예술가들이 제주에 내려와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 느끼지 못했던 제주만의 느낌이 충만한 예술 세계를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런 맥락에서 천재 화가 이중섭이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는 서귀포 일대는 이중섭 거리가 형성됐다. 작고한 화가의 명성의 덕을 톡톡히 본 이 거리는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 됐다. 이는 유명 예술가의 일생과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걸까.

최근 화가 이중섭의 작품을 모아 전시가 열렸다. 그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도 했다.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소’와 ‘황소’를 비롯한 유수의 작품을 보여주었고, 다큐멘터리는 이중섭이라는 예술가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해 방영했다. 그렇다면 이번 9월 공연된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무엇을 보여주었을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

무대 공간을 둘로 나눈 듯 무대의 중심을 기준으로 둥근 곡선으로 단을 올려 만든 길은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의 세트 전부이다. 연극은 이 곡선을 따라 등장한 어머니가 아이의 분신으로 대변되는 인형을 조정하며 등장해 중섭에게 이 인형을 넘겨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인형은 아마도 중섭의 분신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것을 중섭에게 부여한 인물은 어머니다.

이번 작품에서 중섭은 유난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강조하는 인물로 표현된다. 중섭이 동경 유학 전 가족끼리 모두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의 젓가슴을 서슴없이 만지는 장난을 치는 장면이라든지, 유학 중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그린 방백 등이 이러한 모습을 주요하게 드러낸다.

나에게 작품은 작품이면서 어머니이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이중섭의 생애나 작품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살면서 누구나 겪는 고독과 귀소에 대한 본능을 군더더기 없이 담아냈다. 그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정서를 증폭시켜 표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중섭의 작품은 어머니가 된다. 왜냐하면 작품 속에서 어머니는 조국으로 치환되고 치환은 자신의 작품으로 치환된다. 조국을 떠나 작품을 할 수 없다던 이중섭의 작가관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어쩌면 이중섭의 그림이 민족의 정서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 역시 이 부분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희곡 ‘길 떠나는 가족’를 쓴 고 김의경 선생은 이중섭의 그림의 원천을 인간이 가진 근원적 정서인 유기불안에서 오는 모성에 대한 갈망이, 조국이라는 큰 범주로 확장되어, 조국과 고향으로 대변되는 대표 기호인 ‘소’로 이미지화 된 것이라는 사고를 통해 이 작품을 이끌고 나간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한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이 작품에서는 화려한 미쟝센이 구사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작품을 영상이나 다른 화려한 장치들로 표현하지도 않았다. 그가 갈망했던 조국, 고향, 어머니의 정서가 웅축 된 대표적 ‘소’가 중섭 역할의 배우 윤정섭의 손 끝에서 리얼 타임으로 재탄생할 뿐이었다. 

전시나 다큐가 하지 못한 연극이 할 수 있는 것, ‘나와 만나기’

어머니, 소와 고향인 원산에서 그림을 그리며 사는 것은 중섭이 원하는 삶이자 소년 중섭의 삶이다. 노동을 하거나 하기 싫은 그림을 억지로 그리며 보낸 인내의 시간이 댓가로 준 돈을 술값으로 탕진하는 중섭의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섭은 작품에서 전쟁의 상황에서 가난과, 노동, 그리고 자아실현의 사이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실상 그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크게 괴로워하지는 않는 듯하다. 오히려 어른이 되면서 소년의 삶을 더 이상 살 수 없는 현실과 만나며 내면의 고통을 느끼며 크게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모습은 오늘날의 많은 이들도 느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중섭처럼 ‘진정한 나’를 갈망하며 인내의 삶에 대한 구토와 혐오를 느끼며 힘겹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예술가이면서 하나의 인간인 중섭을 두고 인간이라면 겪는 고뇌와 그 사이에서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앞서 언급한 다큐나 전시가 보여주지 못한 것을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보여준 것이다.

외로움을 강조하기 위한 역주행 장치, 남덕

중섭이라는 인물이 살면서 느끼는 감정적 기복이나 내면의 고통은 아내 남덕의 등장을 통해 한층 풍성해진다. 인물들 중 남덕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정서를 노래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중섭과 헤어지는 장면을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뮤지컬에서 주요 장면을 노래로 처리함으로써 정서를 극대화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서를 풍부하게 만든 ‘한국적 색채’  

남덕이 부르는 노래와 같이 중섭의 인생 여정에 정서적 풍미를 가하는 방식으로 한국적 표현을 많이 활용하였다는 점이 독특하다. 남덕과 중섭의 결혼식 장면은 주변인물들이 떼로 나와 탈춤의 춤사위를 펼치고, 연이어 밀양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으로 연출되는데 전쟁의 상황에 억눌려 있으면서도 그 위를 비집고 튀어나오는 신명의 정서를 드러낸다. 

절제된 무대가 주는 정서의 미학

곡선으로 길게 뻗은 둥근 길로 등장하고 퇴장하는 어머니, 남덕 등은 중섭이 원하지만 가질 수 없던 아련함과 그리움의 상징으로 박제된다. 별다른 무대세트 없이 둥글고 길게 뻗은 길은 동선이 길어지는 효과를 주었고, 실제 등퇴장 시간은 이로써 늘어나게 되었다. 이는 떠나는 정서인 아련함을 더 극대화한 곡선의 동선 연출이라고 볼 수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배우들의 몸에 완벽히 이입하게 하려는 연출 포인트인 것이다. 그러니 다양한 방식의 극적 연출로 인해 관객과 소통을 하는 부분 없이 제 4의 벽을 완벽히 세팅하고 완전한 프로시니엄을 구사한 이번 작품의 매력이 바로 관객의 완벽한 극적 몰입을 도모했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9월 25일까지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_연희단거리패

나여랑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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