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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인간의 심연에 악마가 산다, 뮤지컬 ‘잭더리퍼’10월 9일까지 디큐브 아트센터에서 공연

 

그 깊이를 측량하기 어려운 인간의 심연에는 무엇이 있을까. ‘별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를 계산할 수는 없다’는 뉴턴의 말처럼 인간의 복잡한 내면은 간단히 선악으로 이분할 수 없다. 그 복잡하게 얽힌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형상화한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뮤지컬 ‘잭더리퍼’는 영국 런던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인간의 심연에 자리한 어둠의 실체를 ‘잭’이라는 잔혹한 캐릭터로 형상화한다. 하지만 진정 관객을 섬뜩하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결론에 다다를 때까지도 끝까지 관객의 뇌 속을 지배하는 질문 하나. 과연 진짜 살인마는 누구인가?

차례로 완성되는 퍼즐, 조여지는 긴장감

뮤지컬 ‘잭더리퍼’는 전형적인 퍼즐 맞추기 구성으로 서사의 밀도를 빠르게 높여나간다. 강력계 수사관 ‘앤더슨’의 수사일지로 시작되는 첫 퍼즐은 작품의 이야기가 단순히 연쇄살인 사건을 좇아 범인을 추적하는 수순을 밟으리라 속단하게 한다. 그러나 이후 장면부터 결정적인 순간의 틈을 조각조각 잘라내 재배치함으로써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져들고 관객의 긴장감은 팽팽히 당겨진다. 또한, 각각의 퍼즐 조각은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하면서, 단순할 수 있는 살인 사건을 더욱 입체적으로 느끼게 한다.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살인마로 등장하는 ‘잭’만이 과거가 시종일관 베일에 싸여 있다. 수많은 여성을 죽이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좀처럼 뚜렷한 살인의 동기 역시 드러나지 않는다. 무대 위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살아 있는 인간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그 묘한 위화감. 관객은 공연이 후반으로 흐를수록 그의 정체에 의문을 더하게 된다. 그는 어떤 사람이며, 왜 살인을 하는가. 작품은 그 해답을 관객이 예상치 못한 끔찍한 마지막 조각으로 완성시킨다.


탐욕적인 ‘남성들’과 희생되는 ‘여성들’

이 작품이 좇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살인범의 행적이지만, 관객이 곳곳에서 마주하는 것은 인물 저마다가 가진 내면의 어둠이다. 수사관 ‘앤더슨’은 약물 중독자로 약을 구하기 위해, 런던타임스 기자 ‘먼로’는 특종과 돈을 위해 사건에 혈안이 된다. 점차 자제력을 잃어가는 둘의 광기어린 탐욕은 작품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 자신의 이성은 물론 양심과 인간성마저 먹어치운다.

남자 주인공들이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의 늪에 빠지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철저히 나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작품 속 모든 여성이 매춘부로 등장하며, 그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선택하거나 구제할 수 없다는 상황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만약 이에 저항한다면 ‘글로리아’처럼 위험을 무릅쓰고도 밀고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살해되거나, 이에 따른다 해도 앤더슨의 옛 연인 ‘폴리’처럼 이용당하는 줄도 모른 채 슬픈 최후를 맞이할 뿐이다. 그녀들에게 제3의 선택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면, 살인마 ‘잭’을 구원하고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소리를 높여 외치는 인물 또한 여성 주인공인 ‘글로리아’다. 물론 그녀 또한, 경찰을 믿고 벌인 행동으로 허무하게 죽을 뻔 했던 과거가 있음을 생각하면, 그녀의 외침이 저항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용서와 희생으로 보이는 한계가 있다. 작품의 공간적,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남성에 의해 성적 착취와 살해, 방화의 대상이 되고,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적인 존재로만 그려지는 여성의 모습은 아쉽고 안타깝다.

2016년 뉴 캐스팅, 캐릭터의 재발견

이번 공연에서는 류정한, 이창희, 조성윤, 김예원 등이 새롭게 캐스팅되어 개성적인 캐릭터를 이끌어냈다. 새롭게 ‘다니엘’ 역을 맡은 류정한은 ‘다니엘’의 매우 이중적이면서도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고도 강렬하게 표현했다. 사랑에 빠진 순수청년의 모습부터 강한 사명감을 가진 의사의 모습, 나아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살인에 동참하는 잔인함까지. 류정한은 표정과 목소리를 달리하며 다양한 층위의 복잡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잭’ 역을 맡은 이창희도 무대 위에서 강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그는 잔혹한 살인마 ‘잭’을 스타일리시한 안무와 노련한 노래실력으로 섹시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탄생시켰다.

뮤지컬 신예라 할 수 있는 김예원은 연기자 출신답게 풍부한 감정연기와 여운이 있는 노래를 선보여 관객의 이목을 끌었다. 변곡점이 많은 글로리아의 삶을 사건과 장면별로 발랄한 사랑스러움부터 깊은 좌절과 절망의 연기, 다정함과 순수함까지 짙은 감정으로 소화해냈다. 앞으로 그녀가 다양한 배역을 만나 어떤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뮤지컬 ‘잭더리퍼’는 실존했던 연쇄살인마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여름밤에 잘 어울리는 가슴 서늘한 스릴러 공연이다. 빠른 전개와 역전적 구성, 마지막 의외의 결말에서 오는 반전까지, 관객의 호응을 얻을만한 요소가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자의 욕망으로 이성과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형상화했다는 점이 관객에게 섬뜩한 자기 성찰의 여운을 남긴다.

사진 출처_쇼홀릭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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