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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소 칼럼] '김춘수' 기존 질서에 대한 반란의 증거

 

김춘수는 전능한 창조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의 작품은 절대적이고 고고한 예술로 경외감에 눌려 뒤로 물러서거나 움츠러들게 했다. 전능한 창조자보다 소시민으로써의 자기를 대상화하여 벌거벗기에 주력했던 김수영을 만나고 나서 더 그랬는지 김춘수는 굉장히 불편한 존재로 다가왔다. 그의 인생행로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서 있을 수도 있고, 내가 동일시 할 수 없는 작품관을 지향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김춘수에 대한 필자의 반응을 반골정신으로만 치부해 버리기엔 할 말이 너무 많다.
김춘수의 화두는 실체와 투영, 그리고 무의미와 의미이다. 세상에 대상으로 존재 하는 것에 대하여 그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너 진짜니? 라고.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대상은 그것을 인식하고자 하는 또 다른 대상에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써 인식한다고 주장하며, 본질 자체를 바로 인식하려면 그것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독립되어져 무의미로써 대상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앞선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그의 인식론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는 실제로 이데올로기와 규정되어진 이미지에 갇혀 그 본질이나 실체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의미 되어진 세계와 규정되어진 세계의 딜레마가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춘수의 경우도 딜레마는 존재한다. 본래 언어는 보이지 않는 추상의 세계를 구체화, 대상화 한다. 그러나 김춘수는 자신이 주장하는 무의미론과 함께 시에서 대상화 된 언어를 배재하는 절대 순수시를 추구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를 실행시키는 과정에서의 언어는 의미를 상실한 묘사와 이미지의 언어로 그 한계를 보여준다. 그의 시와 시론은 그것을 구성하는 언어의 역할을 배재한 것에서 출발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개념들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작품이 독자에게 비인간적이고 고고한 예술로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작품이라는 것은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아주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존재의 이유가 성립된다. 고단한 현실이 있어야 활기찬 이상이 있는 것이고, 꽃이 있어야 꽃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 진리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존재하고 타자와 관계를 맺고 그것은 사회라는 이름으로 자연의 질서를 갖는다. 아니라고 부인해도 존재하며, 부인하려 다른 세계를 꿈꾸는 것조차 이쪽의 세계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상대적인 것이다. 김춘수의 시가 공허한 것은 기존의 질서로부터 나를 떨어뜨려 놓고 절대적인 창조자가 되려한 증거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김미소 kmgmiso@hanmail.net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7년 3월 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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