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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새로운 문화사조 ‘이미지리즘’(imagerism) 진단

 

- 21세기 ‘이미지문화’의 탄생

사회의 변화가 극심하거나 큰 변혁이 있거나 혹은 사회적 위기감이 농후하게 감지되거나 하는 경우에는 이전 시대와 다른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어 하나의 사조를 만들어낸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의 전환이라는 사회 변화는 앞선 시대와 다른 양상을 보이는 ‘이미지문화’를 만들어냈다.
출판계에서는 서사적 언어에 기대면서도 시각적 이미지를 추구하는 소설과 비쥬얼에세이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건축·미술계에서는 실용과 기능을 넘어서 심미적이고 장식적인 건축물과 디자인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서사가 중시되는 연극은 축소되고 서사보다 이미지적인 멀티양식으로서의 뮤지컬이 성장하며, 내러티브와 영상을 통한 직접적 시각을 제시하는 영화는 부흥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감각적이지만 추상적인 형태의 음악과 무용은 보다 구체화 된 추상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야기와 이미지를 차용하는 비언어극이 주류를 이룬다. ‘이미지 문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보화 사회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뉴미디어가 수용되면서 우리는 모든 사물을 이미지로 환원하여 통신의 대상으로 삼고, 이미지 자체를 통신의 수단으로 삼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개인 미니홈피, 블로그, UCC 등이 그러한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뿐만아니라 ‘이미지문화’가 중시되는 사회현상은 유행, 성형, 얼짱, 몸짱 등의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뷰티 산업은 바야흐로 전성시대를 맞이하였다.
21세기, 우리는 왜 ‘이미지문화’를 만들어 가는가? 이것은 과도기적 현상인가? 하나의 새로운 사회문화 코드인가? 앞서 설명한 현상들을 비추어 볼 때, ‘이미지문화’는 이미 과도기적 현상을 넘어 새로운 사회문화의 ‘new code'임을 직감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미지문화’가 왜 형성되는지에 대한 현재의 정확한 진단이나 정리가 뒤따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다양하고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 앞서가기 위해서는 미래예측을 위한 현재진단의 의무가 존재한다. 그러함에 기인하여 지금부터 필자의 부족한 소견으로 현재 ‘이미지문화’가 왜 형성되고,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진단해 보려한다.

- 추상과 구상을 결합하는 수단, 이미지

이미지란 생각과 느낌을 구체화하기 위한 가상적 영상을 의미한다. 슬프다, 기쁘다, 그립다, 귀엽다 등의 느낌이나 감각 혹은 마음의 작용 등은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실제적으로는 있지만 그 있음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나를 발견하면서 나와 세계를 소통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 매개체로 언어, 즉 구체화된 기호를 필요로 한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 혹은 우리가 알지만 표현의 공유 수단을 갖지 못하여 소통할 수 없는 세계마저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리적 어려움을 극복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이야기로 만들고 소통할 때 우리는 진실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가상적인 영상을 만들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게 꾸미고, 그 영상을 매개로 하여 서로의 소통을 일궈내기 위하여 개발한 것이 이미지 기법이다. 즉 이미지란 우리의 행동과 생각, 감정, 욕망에 대하여 시간을 초월한 소통적 대화를 위한 매개 수단이다. 물론 이미지란 언어로서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원시적인 이미지 생산의 수단은 그림이었다. 이미지야 말로 추상과 구상을 결합하는 수단이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화예술의 발달사는 어쩌면 이미지의 구체화를 위한 역사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화 하는 것은 현 시대에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전 시대와 현 시대의 것과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 이전 시대의 것이 창작의 방법론으로 존재한다면, 현 시대의 것은 대상자체의 이미지화를 통하여 이미지화 된 콘텐츠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한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소설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경우 서사를 이미지로 구체화 시킬 수 있는 기호학적인 대상들이나 서사의 주제를 담고 있는 명화의 사용은 서사를 실재적인 시각적 영상으로 만날 수 있게 한다. 또한 기악의 경우 감각적이지만 추상적인 음악의 선율을 구체화 된 이미지로 만나기 위하여 서사음악이나 음악극의 형태의 양식을 추구하며 다른 인접예술과의 만남으로 내러티브나 이미지를 추가시키는 것이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일상 문화로 등장하는 UCC의 경우 언어를 이미지화한 영상컨텐츠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변화의 특징을 갖는 ‘이미지문화’는 이전 시대의 것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라고 할 수 있다.

- 불안한 시대가 요구하는 존재확인의 욕망

‘이미지문화’가 앞선 시대 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된 것에는 현대 사회의 사회적 위기감과 소외현상이 그 원인으로 작용한다. 지금의 위기감은 세기말적 현상이라는 철학사적 성격을 갖기도 하면서 과학 기술의 무분별한 치솟음에 의한 문명사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동시에 경제 체제의 급진적 변화와 정보 통신사회의 단절감이 파생하는 사회사적 현상이기도 하다. 이렇듯 사회는 복잡해지고 유기적으로 얽혀서 현상을 낳고 이해관계도 다중적이 되며 사물을 이해하는 각도고 넓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반면에 사물을 주체가 수용하는 속도와 현상의 변화 패턴의 주기는 급감하여 항상 미래를 대비하고 예측하는 삶이 요구 되어진다. 이러한 현재의 위기감은 눈에 보이지 않고 급변하며 전망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전 시대보다 더 암담하다. 그런 급진적 미래주의적인 사회현상과 기술의 발달은 개인의 삶을 합리화, 다양화, 개별화 시켰다. 개인은 사회의 억압과 소외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픈 욕망에 시달리며 이러한 욕망은 그에 맞는 문화예술을 필요로 한다. 창작자들은 이전체계에 저항하며 현 시대의 특수적인 배경에 맞는 새로운 문화예술을 창작하고 ,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예술작품을 통하여 수용자들은 자신의 삶을 이해한다. 문화예술작품은 수용자들에게 불안과 소외의 실존의 현실세계에서 벗어나 가상세계에서의 구체적인 자기 확인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며 성찰과 희망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요충분조건에 의하여 가중된 불안과 소외를 더 명쾌하게 완치해 줄 수 있는 예술작품이 현 시대에 필요했던 것이고, 그리하여 이전시대보다 구체화되고 실재화되어 시각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이미지리즘(imagerism)이 탄생되게 된 것이다.

- 저항적 이미지리즘과 이미지리즘의 상품화

불안과 소외를 배경으로 하는 이미지리즘은 창작자의 저항적 욕망과 수용자의 소비적 욕망이 공존하는 가운데 탄생되었다. 기존 사회의 위기감에 대한 실존적 대응은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스타일을 갈망하게 했고, 변화하는 정보기술과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적 욕망이 이미지리즘을 만들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앞서 언급한 창작자적 욕망과 수용자의 욕망의 공존하에 새로운 문화예술이 만들어지며, 이전시대에 비해 이러한 두 욕망의 공존과 균형이 더욱 중요시 된다. 상품이기 이전에 문화예술로써의 가치가 있기 위해서는 창작자의 저항적 욕망에 의해 생성된 것이어야 하고, 이러한 문화예술은 수용자의 소비적 욕망을 대신하는 것이어야 생존할 수 있다. 창작자로서의 저항적 욕망이 우위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던 이전시대에 비하여, 자본주의 시스템이 강화되고 문화예술작품이 하나의 소비체계로 변모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면서 수용자의 소비적 욕망은 저항적 욕망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미지리즘은 그러한 두 가지의 욕망의 공존 하에 저항적 욕망으로부터 시작되어, 수용자에게 확산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확산의 과정에서 이미지리즘은 저항적 욕망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배제한 채,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에 편입되어 빠르게 상품화 된다. 이미지리즘을 넘어 시각적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무거운 주제의식을 동반하거나 추상적이거나 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제와 사상이 전제된 문화예술이되 그것의 골치 아픈 관념성은 떨쳐버리고 쉽고 편안하며 빨리 내 것이 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 하에 이미지리즘의 저항은 소멸되어 주체를 상실하게 된다.
이미지리즘은 그 자체가 정보기술과 자본주의의 배경적 인식이 포함된 저항으로 이전시대의 저항에 비하여 급진적이거나 강경한 저항의 성격이 아니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는 공급자의 욕망에서부터 수용자의 욕망이 하나의 저항요인으로 작용하여 균형을 의식한 채 탄생된 온건주의적 저항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저항은 이보다 강한 외부적 자극에 의해 쉽게 예속되거나 편입될 약점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약점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기회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이미지리즘의 현 주소인 것이다.

- 자본주의 리얼리즘 창작자와 수용자의 이름으로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이미지리즘의 상품화의 원인은 자본주의라는 사회적 시스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창자자와 소비자의 욕망이 올곧게 실현되지 못함이 그러한 시스템을 형성하는지 모른다. 이 시대의 문화예술 공급자들에게는 저항의 요인으로 수용자의 소비적 욕망이 잠재적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의도하지 않아도 생존의 무의식은 그러함을 반영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 시대에 비하여 감각적이고 혁신적일 수는 있으나, 외부의 자극에 쉽게 예속 될 수 있고 본질이 해체될 수 있는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시대의 공급자들에게는 이전 시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양식보다는 그 양식을 얼마만큼 올곧게 지키고 개별적 다양화를 이루느냐가 중요한 미덕으로 자리한다. 자본주의의 시스템을 인정하고 수용하되, 그 문제점을 상기하고 해결하려는 ‘자본주의 리얼리즘 창작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수용자도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리얼리즘 수용자’가 되어야 한다. 감각적이고 대리적 욕망을 실현하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부터 독립된 저항적 욕망 실현으로의 작품을 선별해 낼 줄 알아야 한다. 수용자의 올바른 욕망 실현을 바탕으로 질 좋은 문화예술이 탄생되며, 그렇게 탄생한 문화예술은 수용자에게 품격 있는 삶을 제시한다. 계속 언급하지만 이 두 욕망에 우위는 없다. 두 가지의 욕망이 공존하고 상생 할 때 문화예술은 존재의 이유를 갖는다. 올바른 욕망의 실현으로 시대의 불안과 한계를 넘어 새 시대에 꼭 맞는 문화예술을 마련하는 노력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글 · 김 미소 · 키네틱국악그룹 옌 연출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7년 3월 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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