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는 다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한다. 무엇을 먹을지, 입을지, 할지 등 선택지는 다양하다. 그 선택은 중요 여부를 떠나 몸에 밴 듯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존’에게 있어 선택은 다르다. 그의 선택은 타인의 강요로 결정된다. 고민 없이 결정되는 선택은 쉬운 느낌마저 전해준다. 쉬운 선택은 오히려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보는 이들은 ‘그래서 네 선택이 무엇인데?’ 반문하게 된다.

단지 ‘사랑’의 확신이 필요했을 뿐

‘존’에게는 동성 애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M’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극 중 ‘M’은 이름이 없다. ‘존’의 동성 애인은 ‘그 사람’ 또는 ‘자기’, ‘그 남자’로 불릴 뿐이다. ‘존’의 새로운 애인 ‘W’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존’은 뜬금없이 ‘M’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는 ‘W’ 사랑하기 때문에 ‘M’과의 이별을 선택한다.

‘존’의 선택은 ‘M’과의 싸움을 불러일으킨다. 무대 위에서 ‘존’은 ‘M’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그들의 싸움은 치고받는 싸움이 아니다. 그보다 더 아픈 상처를 남긴다. 두 사람은 철저하게 말과 말로 부딪힌다. 싸움의 시작은 ‘존’의 신경질적인 고백으로 시작된다. 그의 증언을 따르면 ‘M’은 시시때때로 ‘존’을 감시하고 그의 모든 것을 비웃는다. ‘M’의 태도는 ‘존’에게 참을 수 없는 비참함을 선사한다. 이 모든 것이 쌓이고 쌓여 싸움판 위에서 터진다.

사랑하는 만큼 커진 ‘불안’은 싸움을 부추긴다. 그 ‘불안’은 확신 없는 사랑에서 기인한다. ‘M’은 한 번도 ‘그가 얼마나 존을 사랑하는지’, ‘함께 만들어갈 미래가 얼마나 행복한지’ 확신을 주지 않는다. ‘존’은 그만큼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는 ‘M’과 함께할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M’은 한발 물러나 다른 화젯거리로 말을 돌리며 회피했다. ‘존’은 싸움을 빌어 자신이 사랑하는 만큼 ‘M’도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인받고자 안간힘을 쓴다.

‘존’은 ‘M’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에 확신이 없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확신을 준 ‘W’를 선택한다. 적어도 ‘W’는 ‘M’처럼 강압적이지도 않으며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을 사랑하고 함께 있으면 행복하다 느끼게 해준다. 이런 차이로 ‘존’은 ‘M’에게 이별을 고한다. ‘M’이 ‘존’에게 확신만 주었더라면 ‘존’은 ‘W’에게 흔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랑

‘존’에게 있어 사랑은 ‘Love’임과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이다. 다르게 말하면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수단이다. 지금 ‘존’ 앞에 놓인 ‘선택’은 그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존’은 ‘게이’라 불리며 이성애자와 다른 사랑을 하지만 그것이 틀린 사랑은 아니다. 단지 다를 뿐이다. 그는 동성애인 ‘M’과 7년 동안 동거했다. 그 시간 동안 ‘존’은 오롯이 ‘M’만을 바라봤다. 그 사랑은 그의 첫 사랑이고 현재의 사랑이다. 그런 ‘존’ 앞에 어느 날 한 여자가 나타난다.

‘W’는 ‘M’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존’은 낯선 그녀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그는 한 번도 여자와 사랑하는 상상을 한 적이 없다. 그만큼 그에게 이 상황은 당황스럽다. ‘W’는 ‘존’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그녀는 무엇을 위한 ‘목적’이 되고 싶지 않다고 강조한다. ‘M’과 반대되는 ‘W’가 아닌, 그 자체로의 ‘나’이고 싶어 한다. 그녀는 확실히 ‘M’과 다르고 ‘존’과도 다르다.

‘존’은 그녀의 새로움에 흔들린다. 그는 새로운 고민에 빠진다. 단순한 선택의 문제, 누구와 사랑을 할 것인가의 문제를 떠나 ‘존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M’을 선택하면 지금처럼 지내게 되고 불안한 미래로 고민해야 한다. ‘W’를 선택하면 누구나 그렇듯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존’은 그 갈림길에 서 있는 중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존’의 자유다. ‘M’과 ‘W’는 수시로 ‘존’의 선택을 가로막는다. 그들은 자기 생각과 판단을 ‘존’에게 강요한다. 그럴 때마다 ‘존’은 흔들린다.

사랑 이상의 물음, 나는 누구인가

‘존’의 방황은 사랑과 자신을 두 개로 나눌 수 없기 때문에 훨씬 더 골치 아프다. ‘존’이 말했듯이 그는 ‘M’과 ‘W’ 앞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억압 속에서, 자유 속에서, 남자 앞에서, 여자 앞에서 다른 ‘존’이 나타난다. 그만큼 ‘존’은 ‘M’과 ‘W’가 함께 있는 이 자리가 부담스럽다. 그는 누구에게 자신을 맞춰야 할지 알 수 없어 이 자리가 불편하다. ‘존’은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지’의 헷갈림을 넘어 점점 더 자신을 잃어간다.

‘존’의 행동은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싶을 만큼 답답하다. 답답함은 차곡차곡 쌓이다 끝내 ‘존’의 선택을 강요한다. 그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선택을 ‘M’에게 말한다. ‘M’은 ‘존’에게 ‘불 끄고, 베게 들고 와’라고 말하며 무대를 벗어난다. 그것은 부탁이지만 동시에 명령에 가깝다. 그 순간은 ‘M’이 늘 ‘존’에게 해왔던 것처럼 강압적이다. ‘존’은 선택한다.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존’의 선택이다. 이로써 ‘존’은 ‘M’을 선택했지만 동시에 선택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존’ 옆에는 여전히 ‘M’이 있지만, ‘M’ 옆에 있는 ‘존’은 예전의 그가 아니다. 달라진 ‘존’이 서 있을 뿐이다.

백초현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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