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바이올린’ 하면 생각나는 계절로 가을을 꼽는다. 맑고 청아한 현의 울림 뒤에 묻어나오는 쓸쓸함 덕분일까. 어쩌면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불멸의 거장 바흐는 오직 바이올린을 위해 한 솔로곡으로 6작품을 썼다. 작품마다 분위기와 스타일이 달라 하나의 계절이나 이미지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바흐가 사랑한 바이올린이 4월 25일 봄밤 예술의전당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의 연주로 관객을 만난다.

김응수는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어린 시절을 울산에서 보냈다. 첼로를 가르치고 싶던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지방에서 좋은 선생님을 찾기란 녹록지 않았다. 대신 사택에서 그룹레슨으로 바이올린을 잡은 것이 지금의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를 만든 첫걸음이었다. 그는 지금껏 30년 동안 바이올린과 함께하며 어느덧 중견 연주자로 우뚝 섰다. 오랜만에 국내에서 독주회를 여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 지난해 5월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약 1년 만에 같은 무대에 서는데 소감이 어떤지?

우리나라 최고의 음악홀인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열게 되어 기쁘다. 주로 협연을 했는데, 이번 공연은 전과는 다르게 혼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이라 도전과 실험의 의미도 깊다. 연주를 들으실 청중들에게 순수하게 ‘바이올린의 음악’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어 기대된다.

흔히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다. 물론 그 이전의 작곡가들도 존경하지만 바흐는 음악사(音樂史)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작곡가다. 이번 공연의 메인 테마가 바흐인데, 저 역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결정했다.

벨기에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의 곡도 함께 연주한다. 이자이는 바흐의 바이올린 솔로 6곡에 영감을 받아 여러 곡을 썼다. 이중 소나타 4번은 친구이자 동시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프리츠 크라이슬러에게, 6번은 루마니아 출신의 조지 에네스쿠에게 헌정되었다.

-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와 연주가는 누구인가?

어렸을 때는 ‘누가 좋다’고 말하기 쉬웠다. 유럽에서 데뷔해 활동할 당시 다양한 곡들을 만나게 됐다. 연주를 하려면 그 곡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는데, 그중에는 잘 알지 못해서 와 닿지 않는 곡도 있었다. 더 공부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됐다.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존경하는 대상도 많아졌다.

누군가를 손꼽아야 한다면 ‘베토벤’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음악이 바로 베토벤의 곡들이다.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모든 벽이 형제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러한 베토벤의 음악세계와 정신을 존경한다. 연주자로서는 구소련의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꼽는다. 국내외에 훌륭한 연주자가 많지만,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노력했던 그의 모습을 닮고 싶다.

- 매년 여름 오스트리아에서 ‘레히 클래식 뮤직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음악인으로서 직접 공연을 기획한 배경이 궁금하다.

오스트리아 레히(Lech)는 스키 리조트로 유명한 곳이다. 한국에서는 생소할 수 있는데, 할리우드 톱스타나 유명인사들이 휴양 삼아 찾는 곳이라 다소 폐쇄적인 분위기다. 이러한 분위기를 조금 누그러뜨리고, 혼자가 아닌 함께 교제하고 더 많은 것을 나누기 위해 페스티벌을 기획하게 됐다.

- 국내와 해외 무대에 설 때 느낌이 다른가?

무대에 서는 느낌은 어디에 서느냐보다 어떤 청중이 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음악이란 형언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감정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구분 짓고 싶진 않지만, 국내에서 연주할 때는 음악인으로서 모국에 봉사하고 헌신할 기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 한양대학교 관현악과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제자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면.

스승과 제자를 갑을관계에 비유하자면 선생은 항상 을이 되어야 한다. 겉으로는 갑처럼 보이지만 항상 참고, 기다리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을의 입장에서 가르치고 연주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서서히 배워가고 있다. 후배, 제자들을 보면서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다음 세대에 준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 어떤 마음으로 이번 공연을 준비하고 있나?

매 공연을 준비하는 마음은 항상 같다. 안 틀리고 잘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제가 하는 음악을 설득력 있게 들려드리고 싶다. 연주자를 비롯해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공명심(功名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유명해지기보다 삶 속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음악가로 살고 싶다.

노오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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