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명작이 진짜 명작인지 아닌지는 다음 세기에서 판가름난다. 100년이 지나 빛이 바래기는커녕 여실히 건재하다면, 그 작품은 수많은 후대 예술가들의 교과서가 되고 선생이 된다. 될성부른 제자에게 ‘청출어람’으로 져 주기도 하며, ‘명작’은 ‘원작’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는다.

2014년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힌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베일을 벗었다. 명불허전이다. 어떤 수식으로 풀어도 답이 나오는 원작의 완벽함에 한 번, 뛰어난 크리에이티브의 산물이라 평하기만은 아까운 소화력에 두 번 경의를 표하게 된다.

죽지 않는 군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전장에서 천재의사 ‘앙리 뒤프레’를 만난다. 서로의 철학에 매료된 이들은 생명 창조 연구에 손을 잡게 되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실험을 계속한다. 연구의 막바지에서 사람의 뇌가 필요해진 두 사람은 장의사에게 시체를 매수하러 약속 장소에 나가지만 사기를 당한다. 실랑이 끝에 장의사가 죽고, ‘앙리’는 ‘빅터’를 위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된다. ‘빅터’는 ‘앙리’의 머리를 가져와 생명 창조에 성공하지만, 태어난 것은 ‘앙리’가 아니라 ‘괴물’이다.

‘빅터’는 완벽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를 간직한 인간이다. 내면의 결핍에서 시작된 그의 생명 창조 욕구는 이러한 방식으로 정당성을 가진다. 인류의 미래를 역설하지만 결국 자신의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스며있다. ‘앙리’를 부활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욕망의 발현이라기보다 속죄에 가깝다. 두려움을 앞세워 책임을 회피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유아적 속성까지 비친다.

이 작품에서는 ‘괴물’도 사람이다. 그가 피칠갑을 하거나 뒤틀린 사지로 등장했다면 이 작품은 ‘프랑켄슈타인’의 수많은 아류작 중 하나로 전락했을 것이다. ‘앙리’를 위해 창조됐지만 누군가의 팔다리, 몸통, 머리로 만들어졌기에 그가 진정 누구인지는 자신도 알 수 없다.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 세상에 나온 애처로운 생명은 인지상정을 그대로 느낀다. ‘빅터’를 향한 최고의 복수로 영원한 고독을 선물하고 눈을 감는 ‘괴물’. 그에게는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삶보다 자신이 결정하는 죽음이 훨씬 가치 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원작에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문학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인간의 욕망과 고독에 관한 대주제가 단단한 틀로 고정되고 파국적 결말을 위한 사건들이 차곡차곡 쌓여 고도의 개연성을 유지한다. 일기처럼 평이하게 서술되는 원작과 달리 괴물이 태어나는 절정의 순간을 오프닝에 삽입하는 과감함도 엿보인다.

닳고 닳은 ‘프랑켄슈타인’으로 끝을 보겠다는 일종의 자신감이랄까. 작품은 뛰어난 페이스메이커를 만나 ‘읽히는 문학’에서 ‘보이는 문학’으로 진화했다. 전 배역을 1인 2역으로 포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만의 세계관을 창조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다. 인간 세계에서 이성과 합리를 한 꺼풀 벗겨 내면 먹고 먹히는 짐승의 세계가 나신(裸身)을 드러낸다. ‘괴물’이 감당해야 했던 생(生)의 질감은 한 줌 온기 없이 날카롭고 차갑기만 하다.

강렬한 삼바 풍의 넘버 ‘남자의 세계’는 ‘괴물’의 심경변화를 들여다보는 곡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곳에서 인간이 정해놓은 도덕, 이성, 합리는 액세서리로 전락한다. 빠르지만 균형감을 갖춘 리듬과 풍성한 사운드는 열정적인 배우의 가창과 만나 절정의 에너지를 내뿜는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여러모로 뛰어난 수작이지만 균형감이 다소 부족하다. 뮤직넘버는 전반적으로 ‘강-강-강’으로 흘러가 섬세한 완급조절이 아쉽다. ‘빅터’의 작업실을 비롯한 핵심적인 공간들은 그로테스크하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탁월하게 구현하지만, 파티가 열리는 ‘슈테판’ 저택 등 브리지 역할을 하는 장면에서는 무대가 영 허전하다. 도덕적 이상이 높은 ‘앙리’가 ‘빅터’의 연구에 동참하는 계기가 더 극적으로 그려졌다면 흐름이 더 매끄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창작 초연인 만큼, 영리한 창작진이라면 공연을 거듭하며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는 여백이다.

노오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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