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무용단은 2012년에 이어 2014년 조선의 역사와 함께한 정재(呈才)에 대한 재조명의 일환으로 ‘마지막 황태자, 조선의 꿈을 보다’라는 뜻깊은 공연을 기획했다. 이는 정재에 대한 관객의 이해와 학습효과의 거리 좁히기 작업으로, 1930년 7월 창경궁 인정전 서행원에서 이왕직아악부가 연행한 연희를 모티브로 한다. 이번 공연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이 일본에서 환국한 것을 기념해 벌이는 춤과 노래를 담은 정재를 바탕으로 근 80년 만에 재연하는 무대다.

우리 역사 속 가장 어두웠던, 비운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야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 그는 볼모에 가까운 일본생활과 황족으로서의 모든 것을 몰수당하고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경계인으로서의 혼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주체적인 의지와 무관하게 조정된 꼭두각시처럼 지내다 환국한 그의 눈에 비친 고국의 연희, 궁중 정재의 모습과 의미는 어떠했을까?

예인들은 이러한 비운의 역사 속에서 춤과 노래와 기악을 통한 연주로 어두운 회한의 옥죄임 속의 순간들을 여미고, 주권을 잃은 그들의 왕 앞에서 숨죽인 채 통한의 아픔으로 안간힘을 다해 ‘우리다움’을 연주했다. 부정할 수 없지만 되풀이할 수 없는 역사 앞에서 그래도 이어져야 하는 맥을 이어가려는 마음을 근간으로 슬픔과 위로를 서로의 눈빛과 마음으로 나누었다. 애써 태연한 척 올곧은 심지를 담아 은근과 끈기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통곡 같은 디딤새와 통한과 자존감으로 무장한 절제된 연주 속에서 예인들의 숨결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처연한 당당함과 겸손한 미덕으로 춤과 가창, 연주를 통해 기품 있고 세련된 하모니를 이루어낸 당대의 예술혼이 이번 무대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오늘날까지 정재를 학습하고 지켜온 이 땅의 예인들은 통한의 역사 속에서도 그렇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호 호환하는 우리 문화의 주춧돌이다. 이번 공연은 우리 문화의 모든 것과 만나게 하는 심장이고 얼개이며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역사의 화두가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각오와 다짐이 녹아난 남다른 무대였다.

무대 위 오래된 정원의 하얀 나무는 질곡의 역사와 숱한 세월의 풍파를 견디어 내며 세월을 지내온 지킴이 같은 상징적인 존재이고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견뎌 낸 예인들의 표상이다. 그 많은 세월과 사건과 역사를 지키고 넘어서서 우리 가슴에 버팀목처럼 남아있는 존재의 이유, 때로는 응어리고 한이며 새롭게 도약하는 희망인 듯했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이번 무대는 정재를 그냥 보존하고 재연하는 차원이 아닌 현대의 시각에서 원형에 접근한 정재의 전통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현대와 연계한 드라마적 내러티브를 통해 정재에서 행하던 연희의 배경과 정서를 유추하거나 적합하게 유지한 채 소담스런 정성과 맛깔스러운 춤태를 모아 원형의 호흡과 춤의 형태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모던하고 상징적인 무대와 넘치지 않게 첨가된 역사적인 영상 기록을 통한 과거와 현재,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무대 미장센으로 관통한다. 일반인들에게도 그저 멀게 느껴지던 전통으로만 안주하지 않고 동시대성을 확보하고 더불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돋보인 세련된 무대를 선보였다.

개인적으로 볼 때 아주 조금 아쉬운 면도 있었다. 함께하는 연주자들의 전면을 바라보고 싶은데 뒷면만 보였다. 가창자의 노래가 너무 조심스러워 연주자보다 조금씩 늦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호흡을 머금고 속성을 하더라도 조금 더 영글어진 통성과 두성을 활용했더라면 더 풍성한 무대였을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는 정재 12종 중 처용무, 보상무, 무고, 춘앵전, 봉래의 재연과 창덕궁을 방문한 현대의 젊은 무용가의 만남을 통한 역사 속의 정재의 기록들이 현대적 시점으로 고스란히 무대에서 살아났다. 앞으로도 남은 정재의 기록들이 국립국악원 무용단에 의해 새롭게 동시대성을 확보한 무대로 거듭나길 소망해본다.

유희성 he2sung@hanmail.net

사진_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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