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을 하시는 40대 중반의 P 씨는 항상 목감기로 고생을 하신다. 건장한 체격으로 겉으로는 아주 건강해 보이시지만, 목감기에 자주 걸리고, 환절기에는 어김없이 병원을 찾아오신다. 그리고 감기약을 드셔도 잘 낫지 않아서, 결국 충분히 고생을 하고 나서야 서서히 좋아진다. 반면에 대기업에 다니시는 40대 후반의 J 씨는 잊을만하면 한번씩 감기로 병원을 찾아오신다. 그런데 감기증세가 아무리 심해도 내가 처방해 드리는 약을 하루 이틀만 먹어도 감기가 떨어진다고 아주 좋아하신다.

나는 J 씨에게는 감기를 한 번에 떨어뜨려 주는 명의(?)이지만, P 씨에게는 감기도 빨리 낫게 해주지 못하는 능력 없는 의사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에게 사용하는 나의 처방이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소위 약발(?)이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는 것을 많이 느낀다. 왜 같은 약을 써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를까? 유전적 문제일까, 체질일까? 그렇다면 체질은 무엇일까?

현대의학은 실제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한다. 그러나 병이 없다고 해서 항상 건강한 것은 아니다. 현대 의학적 검사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병은 없지만, 인체의 모든 세포의 기능이 가장 최상의 상태일 수는 없는 것이다. 병이 있을 때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세포들의 기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영양요법을 이용한 ‘기능의학’이다. 그런데 세포의 기능도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이유는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유전자가 발현되면서 체질이 결정된다.

유전자 그대로 운명은 정해지나?

옛말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분명 씨앗이 가지고 있는 성질은 변할 수 없다는 진리에서 나온 말이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같은 콩이라고 해도 어떤 콩은 아주 싱싱하고 건강하지만 반면에 아주 형편없는 콩이 나기도 한다. 이것은 유전자의 문제 보다는 토양의 문제에 더 가깝다. 훌륭한 콩을 만들어 내는 데는 씨앗의 유전자만큼 건강하고 영양분이 풍부한 토양이 있어야 한다. 그럼 사람에게는 어떨까?

우리의 유전자 속에 많은 정보가 정해져 있지만, 그것을 아무런 방어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답답하다.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을 살아가는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삶이라면 얼마나 참담한가?

그렇지만, 좋은 밭에서 좋은 콩이 나오듯이 우리 몸의 토양을 좋게 가꾸어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이러한 토양이론의 시작은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한 시대의 유명한 두 학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그 유명한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이고, 또 한 사람은 조금 생소한 안토인 비첨(Antoin Bechamp)이다.

이 두 사람은 1800년대의 유명한 의학자였지만, 서로의 의견은 대립했다. 파스퇴르는 세균을 발견하고 모든 병은 세균에 의해서 생긴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러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소독법을 개발하였고 이후 항생제 발명의 기초가 된다. 현대 의학에서 파스퇴르를 빼놓고는 할 이야기가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의학의 역사에서 조명받지 못한 비첨은 누구인가? 그는 모든 질병은 잘못된 토양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인체의 토양이 건강하고 영양분이 풍부하다면, 세균이 들어와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후학들에 의해서 비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파스퇴르의 세균이론의 발전이 현대의학의 틀을 만들었다. 여기는 나는 매우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럼, 대립된 의견을 주장한 두 학자는 얼마나 오래 살았을까? 파스퇴르는 74세에 생을 마감했지만, 비첨은 93세까지 살았다. 비첨이 파스퇴르보다 19년을 더 살았다는 것이 세균이론보다 토양이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나의 지나친 억측일까?

가정의학과 전문의

이동환 rivers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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