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글로벌 청년백수 전 상서, 뮤지컬 ‘애비뉴 Q’

놀랍도록 닮았다. 녹록찮은 세상의 벽에 부딪친 이역만리(異域萬里)의 청년과 이 나라 젊은이의 얼굴이 제대로 오버랩된다. 올 여름 한국을 찾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애비뉴 Q’ 속 청년백수의 자화상에는 국경이 없다.

빛의 속도로 탈락한 이력서를 붙들고 코만 풀어봤자 아무 것도 달라질 게 없다. 손수건을 버리고 좁은 방구석을 탈출하자. ‘웃픈(웃기지만 슬프다는 뜻을 가진 신조어)’ 현실을 위트 있게 날려버린 뮤지컬 ‘애비뉴 Q’는 만국의 청년들에게 바치는 헌정공연임이 분명하다.

‘꿈높현시’: 꿈은 높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면

작품의 주인공 프린스턴은 만년 구직중인 청년백수다. 뮤지컬 ‘애비뉴 Q’의 이야기는 프린스턴이 취업을 위해 집 값 비싼 뉴욕의 중심가 대신 주변부인 애비뉴 Q로 이사를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프린스턴은 이웃인 케이트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취업’ 말고 다른 고민에 빠지게 된다. 미래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던 프린스턴은 케이트에게 이별을 선언한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우리나라의 ‘삼포세대’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예술이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것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우울한 현실의 초상만 줄창 그려댄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라 다큐일 뿐이다. 뮤지컬 ‘애비뉴 Q’는 진지하고 불편한 의제를 말하고 있지만 조금 특별한 화법을 구사한다. 작품의 주제는 인간 군상들의 넋두리 대신 퍼펫(인형)의 입으로 튀어나와 아주 당돌하고 깜찍해진다.

작품에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반기지 않는 소재들이 등장한다. 경제 불황, 동성애, 섹스, 마약, 인종차별 등은 미국 사회에서(어쩌면 한국에서도) 항상 뜨거운 감자다. 답 없는 현실에서 뮤지컬 ‘애비뉴 Q’가 선택한 방법은 ‘답을 내놓지 않는 것’이다. 작품은 그 대신 코미디를 선택한다. 어느 누가 ‘해학’에서 ‘해답’을 구하랴. 작품의 저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도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불편한 소재들은 작품을 통해 ‘아니 불(不)’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버리고 비로소 편해진다.

‘분명 영어인데…’, 그거 한국말 아니에요?

뮤지컬 ‘애비뉴 Q’의 또다른 매력은 싱크로율 120%의 자막 번역이다. 프린스턴이 부르는 뮤지컬 넘버 ‘영문과를 나와서 뭘 할 수 있나’의 네이밍 센스만 봐도 그렇다. 작품은 대사에서도 한국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속어, 유행어들을 그대로 반영해 관객의 공감대를 증폭시킨다.

작품의 ‘치밀함’은 번역에서 끝나지 않는다. 애비뉴 Q의 이웃들이 케이트의 대안학교 건립을 위해 모금을 계획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전직 대통령에게 기부금을 요청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그들 사이에서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는 그 사람?’이라는 비아냥이 삐져나온다. 이 장면은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를 리 없는 한국 관객들을 노린 강력한 스트라이크 한 방이다.

보통의 인형극에서 배우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인형을 통해서만 연기한다. 뮤지컬 ‘애비뉴 Q’의 배우들은 퍼펫과 함께 자신의 표정과 움직임을 드러낸다. 이들은 2개 이상의 퍼펫을 연기하면서도 집중력을 놓치지 않는다. 퍼펫이 웃으면 같이 웃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한다.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에서 ‘공존’과 ‘유기(有機)’의 가치가 드러나는 연출이다.

노오란 기자_사진 박민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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