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이러한 히어로는 처음이다. 지질한 모습 뒤에 영웅적인 면모를 감춰온 히어로들은 많았지만, 무대 위에서 이토록 자유롭고 코믹한 히어로는 없었다. 작품은 프랑스 혁명 시기 공포 정권에 맞서 이중생활을 했던 영웅 ‘스칼렛 핌퍼넬’의 사랑과 영웅담을 그린다.

영국에서는 한량 귀족으로, 프랑스에서는 영웅으로 이중적 삶을 살아가는 ‘퍼시’를 두고 ‘조로’, ‘배트맨’, ‘수퍼맨’, ‘스파이더맨’ 등이 떠올랐다면 잠시 접어두자. 그는 ‘스파이더맨’의 피터보다는 차라리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에 가깝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작품은 혁명, 영웅 등 묵직한 대형 뮤지컬의 수식어를 버리는 대신 유쾌함이라는 새로운 디자인의 수트를 챙겨 입는다.

즐겨라, 유쾌한 영웅!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은 ‘바로네스 오르치’의 고전 소설이 원작이다. 뮤지컬은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작품은 그해 토니어워즈 최우수작품상, 대본상, 남우주연상 등에 노미네이트되며 원작의 힘을 증명했다.

영국 귀족 ‘퍼시’는 프랑스 여배우 ‘마그리트’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지만 ‘퍼시’가 ‘마그리트’를 프랑스의 첩자로 오해하면서 일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퍼시’는 프랑스혁명의 잔혹함에 맞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위해 6명의 친구들과 비밀 결사대 ‘더 리그 오브 스칼렛 핌퍼넬’을 결성한다. ‘스칼렛 핌퍼넬’은 ‘별봄맞이꽃’을 뜻하는 ‘퍼시’의 가명이다. 그는 ‘블링블링’ 패션에 집착하는 한량 귀족으로 위장해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놀랄만한 활약을 펼친다. 한때 ‘마그리트’와 연인 관계였던 ‘쇼블랑’은 그녀의 동생을 인질로 잡아 ‘스칼렛 핌퍼넬’의 정체를 밝히려 한다.

작품은 대형뮤지컬이 ‘묵직’해야 한다는 편견을 깬다. ‘무게’를 강조하는 여러 뮤지컬들 사이에 선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의 독특한 위치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주로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던 대형 뮤지컬을 아이들도 스스럼없이 즐길 수 있는 ‘모험 활극’으로 만든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하지만 이야기의 촘촘함과 깊이는 다소 부족하다. ‘스칼렛 핌퍼넬’의 결성 동기가 빈약해 설득력이 약해지고, 결사대의 활약이 부각되지 않아 히어로물로서의 긴박감도 떨어진다.

반면 이 작품의 매력도 그 ‘가벼움’에 있다. 한량으로 위장한 ‘퍼시’는 재빠르고 나긋한 악센트로 상대를 비꼬거나, 레이스와 ‘블링블링’함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한다. 그는 검은색 패션으로 일관하는 ‘쇼블랑’에게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 모습이 마치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의 심사위원 마냥 진지하면서 능청스러워 웃음이 자꾸 터져 나온다. 영웅 ‘스칼렛 핌퍼넬’과 한량 귀족 ‘퍼시’ 사이의 간격이 커지면 커질수록 작품의 재미는 배가 된다.

볼거리도 다양하다. ‘퍼시’와 그의 친구들이 프랑스로 출정 나가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배 모양의 세트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오브제가 끊임 없이 순환하는 무대 위에서 ‘퍼시’, ‘쇼블랑’, ‘마그리트’가 얽히고설킨 그들의 관계를 노래하는 ‘The Riddle’ 장면은 무대와 노래의 은밀한 분위기가 맞물려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음악은 큰 화력을 불태우지 못했다.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그의 선율은 그대로이지만 특유의 ‘한 방’이 부재했다. 인물의 내면을 폭발시키는 ‘프랭크 와일드혼 표’ 음악은 드라마와 코미디 사이를 맴돌며 서둘러 귓가를 떠나고 말았다.

‘퍼시/스칼렛 펌피넬’ 역의 한지상은 주역으로서 부족함 없는 아우라를 내뿜었다. 그는 구렁이 담 넘듯 ‘퍼시’와 ‘스칼렛 핌퍼넬’을 오가며 캐릭터에 감칠맛을 더했다. 입에 착착 감기는 대사와 적절할 때 터트리는 감성과 가창력이 압권이었다. 바다는 특유의 고운 목소리와 사랑스러운 외모로 ‘마그리트’ 역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쇼블랑’ 역의 에녹은 그동안 삭여뒀던 가창력과 카리스마를 이번 작품으로 폭발시켰다. 그는 긴 시간 쌓아온 단단한 연기력으로 차세대 뮤지컬스타로서의 재목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정지혜 기자_사진 박민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