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은 복수와 용서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수히 많은 누아르물이 뇌리를 스친다. 배신, 복수, 용서의 ‘3박자’는 장르를 막론하고 오랫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이 애용하던 소재가 아니던가?
 
‘진짜’가 돌아왔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가 2013년의 여름밤을 붉게 달구고 있다. 작품은 프랑스 대문호 ‘알렉산드르 뒤마’가 1845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작으로 한다. 이번 공연은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 역에 배우 류정한, 임태경, 엄기준, 김승대가 열연한다. 그의 연인 메르세데스는 배우 윤공주와 정재은이 함께한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어느 날, 배우 류정한과 윤공주가 펼친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를 만났다.
 
‘흑과 백’의 단순구도 포기한 고전의 페르소나

고전의 재해석은 원작 드라마를 얼마나 잘 살려내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원작의 기승전결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재창작의 가치가 없다. 지나치게 독자적인 노선을 달리는 것도 원작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원작과의 ‘줄타기’를 잘 하는 작품이다. 자칫 치정극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며 원작 특유의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메타포는 ‘아가페적인 용서의 대서사시’가 아니다. 피를 피로써 갚는 과정에서 인물이 겪는 혼란과 각성을 용서로 승화시킨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이하 단테스)와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간 몬데고 일당의 대립을 일반적인 ‘선악구도’로 그리지 않는다.
 
악명 높은 감옥 ‘샤또 디프’에서 세월을 보내던 단테스는 파리아 신부를 만나 많은 가르침을 얻는다. 파리아 신부가 ‘용서는 가장 큰 보물’이라는 유언을 남기는 중에도 단테스는 ‘왕이 되어 정의조차 사겠다’며 세상을 향한 원망을 드러낸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된 단테스는 ‘복수’라는 칼을 빼들고 그들에게 다가간다. 누가 악(惡)인지는 분명하다. 하지만 작품의 중반부에 이르도록 누가 선(善)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이런 모호함을 이용한다. 작품은 관객에게 용서의 당위성에 관한 원초적인 물음을 던진다.
 
작품의 메시지는 가볍지 않지만 공연 내내 무거움을 유지하지는 않는다. 단테스와 그의 연인 메르세데스의 약혼식 장면,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된 단테스가 파리 귀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파티를 여는 장면에서는 프랑스 상류층의 발랄함이 묻어난다. 또한, 단테스를 연기한 배우 류정한과 파리아 신부로 분한 배우 박철호의 코믹 연기가 돋보인다. 그들이 갇힌 감옥은 절망의 심연이 아닌 희망을 발견하는 공간이 된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과 배우들의 호연 돋보여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작곡은 프랭크 와일드혼이 맡았다. 그는 한국 뮤지컬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작곡가다. 뮤지컬을 잘 모르는 사람도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지금 이 순간’을 무리 없이 따라 부른다.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그의 노래는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서도 빛을 발한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선율은 인물의 내면에 깊이 박힌 점 하나를 끄집어내 무대 가득 팽창시키는 힘이 있다. 그 멜로디는 좋은 배우와 만나면 울림이 되고 관객과 만나면 떨림이 된다.
 
단테스 역의 배우 류정한은 2시간 30분 내내 뜨거웠다. 시선 하나, 호흡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단테스, 위기에 빠진 단테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된 단테스는 ‘열정’의 일관성이 있다. 공연의 클라이막스인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 장면에서는 넓은 무대를 홀로 채우며 복수의 화신으로 불탔다.
 
몬데고 역의 배우 조휘, 메르세데스의 아들 알버트로 분한 배우 신현묵 등 조연들의 연기도 돋보였다. 배우 조휘는 몬데고가 메르세데스와 결혼한 후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호흡으로만 대사를 처리했다. 음량이 작아도 힘이 있어 대사 하나 하나가 귀를 파고들었다. 배우 신현묵은 알버트와 어울리는 해사한 얼굴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표현했다.

극의 흐름 원활하지 못해 아쉬워

배우 윤공주의 메르세데스는 아름다웠지만 다소 아쉬웠다. 단테스와 사랑을 속삭일 때와 그를 잃고 어쩔 수 없이 몬데고와 결혼한 심정을 대비해 보여주려는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인위적인 중년의 목소리가 꼭 필요했을까? ‘나이감’을 주기 위해 입힌 중년의 목소리는 메르세데스 대사의 세밀함을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원작 소설의 분량은 다섯 권에 이른다. 원작의 많은 이야기는 소설 ‘몬테크리스토’를 2시간 30분의 뮤지컬로 재창작하는 과정에서 생략됐다. 대신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부족한 서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손실된 내러티브를 보완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사건의 중요한 이음새를 거의 영상으로 처리하다 보니 매끄럽지 않았고 현장감이 떨어졌다.
 
주연들의 심경이 변화하는 계기도 잘 와닿지 않았다. 연인이 죽었다는 비보 앞에서 메르세데스가 어떻게 몬데고와 결혼하게 되는지, 단테스는 알버트와의 결투에서 왜 그를 살려주는지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었다. 방대한 원작의 텍스트에서 ‘무엇을 빼느냐’ 보다 ‘어떻게 빼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오란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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