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아버지의 폭력, 동생만을 아끼는 어머니를 피해 도망쳤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리가 안주할 곳은 없었다. 쫓고 쫓기는 생활 속에 리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사막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짐승처럼 헤매며 문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사막에서의 삶이 리에게 준 것은 자유였다.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소외감으로부터의 자유.

그렇게 자유를 찾았다. 물보다 술을 많이 마시고, 개를 키워 개싸움을 하며 돈을 벌었다. 어릴 때부터 본 것은 아버지가 휘두른 ‘폭력’이었다. 개싸움은 몸과 머리에 습관처럼 스며든 폭력을 표출하는 방법이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일상이었다. 삶은 무의미했다. 어린 시절의 끔찍했던 기억은 사라지고, 동네에서 동생과 뛰놀던 기억만이 아련했다. 다시 가족을 찾아가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서로가 간절히 원하는 ‘관계’, 하지만 너무 다른 소통방식

형 리는 무너진 가족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기 위해 사막으로 떠난다. 그는 사막에서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동생 오스틴을 찾는다. 동생 오스틴은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하고 할리우드의 인기 작가가 됐다. 오스틴은 정돈된 집에서 안경을 쓰고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 각자의 다른 삶을 살다 다시 만나 그들이 서로에게 다가서는 방법은 너무나도 다르다. 형 리는 표현 하나하나가 거칠고 파괴적이다. 동생 오스틴은 끝없이 인내하며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

오스틴의 차분함은 리를 더욱 날뛰게 한다. 악을 쓰고 빈정대며 머리통을 툭툭 때려도 반응이 없다. 오스틴이 배운 ‘관계’는 서로 물어뜯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이었다. 으르렁거리며 감정을 주고받아야 상대와 소통한다고 느낀다. 아무리 건드려도 반응이 없자 리는 오스틴에게 무시당한다고 느낀다.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가 동생만 예뻐한다고 생각하던 리는 질투와 심술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동생이 가진 것을 빼앗고 싶다. 부럽다.

두 형제는 사울키머라는 물질 만능주의 영화 제작자와 마주하게 된다. 돈에는 관심 없었던 리는 요양소에 갇힌 아버지를 데려오기 위해 오스틴의 프로젝트를 빼앗는다. 일을 빼앗기자 이성적이던 오스틴은 내재했던 폭력성을 드러낸다. 물건을 때려 부수고, 소리치고, 남의 물건을 훔쳐온다. 둘의 역할을 바꾸어 행동하며 형제는 자신의 모습을 서로에게서 본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둘은 소통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한 사람의 같은 아버지, 하지만 형제의 기억 속에서 다른 아버지

같은 아버지이지만 오스틴은 아버지와 대하는 것을 끔찍하게 두려워한다. 밤이면 술을 먹고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의 환영이 나타난다. 오스틴에게 폭력은 공포다. 그리고 아버지의 존재는 곧 불행이다. 반면, 리에게 폭력성은 일상이다. 아버지의 폭력이 리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지 않았다. 리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 요양소에 있는 아버지를 데려오고 싶어 한다. 리는 그렇게 해서라도 함께 있고 싶다. 무너진 가족이라 한들 끌어안고 시궁창에서라도 함께 있고 싶다. 함께 있고 나서 다음 상황은 생각해본 적 없다.

밤새 싸우다 만신창이가 된 형제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주고받는다. 오스틴은 아버지를 찾아갔었다. 이가 없어 틀니로 씹다 음식을 다 먹지도 못하고, 아들이라고 자랑하고 싶어 찾아간 곳이 술집이다. 자랑스러운 아들을 옆에 두고 아버지는 또 술을 마신다. 실패한 인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아이비리그를 졸업하고 할리우드 작가가 된 오스틴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거부하고 싶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불쌍하고, 아버지를 거부하는 자신이 밉다.

리는 아버지의 강압이 싫어 떠났다. 하지만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요양소에 갇혀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그저 안쓰럽다. 리에게 아버지는 그저 ‘이룰 수 없는 꿈’ 같은 가족이다. 희미하게 잡히지 않아 한 번쯤은 손에 쥐어보고 싶은 간절함이다. 형제는 서로가 꿈꾸는 가족을 완성할 수 있을까.

이소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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