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쾅쾅’ 천둥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에드워드 하이드. 야수처럼 절규하고 우짖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포효하는 짐승이다.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에서 배우 양준모가 연기하는 ‘지킬과 하이드’는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극과 극의 캐릭터지만 관객은 점차 ‘지킬과 하이드’라는 동일한 인물을 바라보게 된다.   

‘지킬과 하이드’ 한 사람의 인간으로 표현 

배우 양준모는 ‘인간의 선악을 분류할 수 있다’는 지킬의 고고한 신념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초반에 쉽게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지킬의 모습은 단조로운 캐릭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배우 양준모는 지킬의 캐릭터 속에서 하이드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가 표현하는 지킬은 ‘선’의 가치를 완벽하게 맹신하는 인물은 아니다. 약혼자 엠마가 있는 지킬이 루시에게 호감을 느끼고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 지킬은 화들짝 놀라지 않는다. 지킬은 마치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루시에게 나지막하게 ‘미안해요’라고 속삭인다.

배우 양준모는 ‘의심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지킬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학식이 풍부하고 자비심이 많은 아버지는 지킬이 확고하게 추구하는 완벽한 인간형이다. 지킬의 집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버지의 초상화는 마치 신을 모셔놓은 듯한 위엄이 서려 있다. 그렇지만 지킬은 자신의 롤모델로 설정한 아버지의 그림이 담긴 초상화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 아버지의 초상화를 아련하게 바라보는 지킬의 눈빛은 관객에게 ‘지킬도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인물이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르게 만든다. 지킬이 완벽한 행복의 경지를 꿈꾸며 부르는 ‘지금 이 순간’은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지킬이 하이드로 변하는 모습은 자연스럽다. 지킬과 하이드는 극과 극의 인물이지만 절묘하게 그 둘은 이어져 있다.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변하면 무서운 것처럼 한 사람의 모습에서 다양한 면모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폭발적인 에너지, ‘광기’ 속의 ‘슬픔’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는 천둥 효과, 술집, 법원, 불꽃놀이 장면 등 무대의 모든 장면이 화려하고 웅장하다. 무대 연출에 시선이 집중되면 배우의 역량이 축소될 위험도 생긴다. 그렇지만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에서 폭발적인 에너지와 광기는 무대의 효과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바로 배우 양준모의 깊은 내면 연기가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배우 양준모가 연기하는 하이드는 강력하고 풍부하다. 양준모 배우는 격렬한 움직임과 다양한 음역을 넘나드는 목소리로 하이드의 다이나믹한 면모를 드러낸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쩌렁쩌렁 울리는 하이드의 목소리는 관객에게 두려움을 선사한다. 고개를 돌려 지킬과 하이드를 동시에 연기하는 넘버 ‘Confrontation'에서는 거친 음성과 폭발적인 성량으로 광기의 최고조를 완성한다. 그가 살인하는 모습은 정확하고 섬뜩하다. 반면, 하이드가 위선자 성직자와 권력자를 살인할 때 말하는 차분한 목소리는 또렷하고 이성적이다. 마치 지킬이 악인을 처단하는 듯하다.  

에너지 넘치는 연기는 관객에게 지루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묵직한 양준모의 연기는 진솔함의 감동을 선사한다. 하이드가 루시를 살인한 후, 눈빛으로 허망함의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은 하이드가 단순한 미치광이만은 아니었구나 생각하게 한다. 하이드의 감정이 폭발하는 지점마다 ‘광기’는 물론 ‘슬픔’이 묻어나온다.

‘지킬과 하이드’, 인간의 은밀한 내면을 대변해

배우 양준모는 점잖은 신사에서 악마로 돌변하는 틈 사이를 세밀하게 연기한다. 이는 극단적인 하이드의 모습에서 지킬이 보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들도 이러한 지킬과 하이드의 사이를 넘나들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일상에서 지킬처럼 ‘선’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지만 그 안에서 파괴적인 하이드를 숨기며 고뇌한다. 그렇지만, 부끄러운 모습이라 해서 그것이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다.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에서 지킬과 하이드는 양면의 기로에 서 있는 인간의 본질을 여과 없이 털어낸다.

배세민 기자_사진 박민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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