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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의 아껴둔 이야기들, 서윤미 연출가 인터뷰②작품 속 키워드에 관한 이야기

작품의 해석에 논란이 많았던 데에는 독특한 역사적 키워드들도 한몫했다. 나치, 최면실험, 프로이드, 유전자 등 다양한 키워드들이 서로 조합되며 관객의 수많은 해석과 추리를 낳았다. 또한, 메리와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왜 그랬을까’를 추리하는 과정도 객석에서 다양하게 가지를 뻗어갔다. 서윤미 연출은 “관객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길 바란다”고 했지만 관객들은 제작진의 생각이 궁금한 법이다. 작품 속 키워드들과 이야기에는 무대에 드러나지 않은 어떤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지 않을까.

- 몰라도 되는, ‘키워드’ 속 숨겨진 이야기들

키워드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키워드와 관련해 설명적인 부분을 없애는 과정에서 10페이지 정도의 대본을 잘라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작품을 만들면서 1시간 40분 안에 넣기 위해 10페이지 정도의 대본을 잘라내야 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선택을 지금 다시 하라고 해도 역시 그 10페이지를 줄일 것 같아요. 거기에는 굉장히 설명적인 부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다큐멘터리 작가였기 때문에 설명적 부분이 많이 포함됐었고요. 배우들과 충분히 상의해서 연기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 부분은 생략했어요.

예를 들어, 메리가 혼자 말하는 ‘유전자’의 언급 부분은 애초에 굉장히 많은 고민과 논의를 하고 나서 넣은 부분이에요. 저희는 굉장히 우수한 유전자의 아이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했어요. 백인종의 푸른 눈동자, 핸섬하고 아이큐도 높은 아이들을 상상했어요. 예를들어, ‘한스는 152... 와 천재네’ 하면서요. 작품 속 실험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 실험이 아니거든요. 자기네들 독일 게르만족을 세상의 중심으로 봤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거잖아요. 그러니 게르만인종으로 실험을 한 거예요. 유대인을 학살하려고 연구를 한 게 아니라 게르만을 더욱더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서요. 변호사가 되고, 화가가 되고, 작가가 될 수 있는 아이, 음악적 소질이 풍부한 아이까지 뽑힌 거죠. 이렇게 네 아이들이 뽑히게 된 배경을 자세히 극에서 설명할 수는 없었어요.
 
나치 실험과 유전자가 실제 역사적으로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가요?

실제로 유대인 학살을 나치가 한 이유가 진화론 때문이에요. 다윈의 진화론이 그때 이론적으로 등장했거든요. 당대의 핫한 이론이었죠. 창조설밖에 없던 시대에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하면서 유전자라는 개념이 갑자기 등장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지금의 유전자는 DNA에 불과하지만 그 당시의 유전자는 굉장히 앞선 연구자들의 견해였어요. 메리나 그란첸 박사 같은 인물들이 지금의 줄기세포 얘기하듯이 유전자를 얘기했을 거예요. 유대인은 게르만인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죽는 것이 당연하고 우월한 유전자만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진화론을 받아들여 유대인을 학살할 수 있었던 거죠. 유대인을 말살시키고 순수 게르만 혈통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자, 그것이 전쟁의 명분 중 하나가 된 거에요.

그렇군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주제와는 관련성이 적은 서브텍스트인 거죠? 배경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의견도 있었는데요.

오히려 이런 배경이 자세히 설명되면 극의 진짜 주제와 너무 멀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건 왜 실험을 하게 됐을까에 대한 배경에 불과하니까요. 대사적인 설명이 없는 부분을 구멍이라고 보실 수도 있는데요. 그 구멍에 심리적인 연기들을 채워 넣었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뉘앙스를요. 왜냐하면 이 작품이 과거회상을 하는 작품이거든요. 사건으로 풀어나갈 수가 없어요. 이미 일어난 것들의 회상이고 최면에 의한 왜곡된 기억이에요. 그렇게 보면 극은 왜곡된 기억, 재구성된 진술이고 진짜 진실은 알 수 없는 거예요. 생략되거나 확대된 부분이 있다면 그게 진술자 한스의 관점인거죠. 보통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과 내 관점에서 더 아픈 내용들이 중심이 되죠. 이를테면 한스 버전인 초연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죄책감이 중심인 것처럼요.

실험의 배경은 이제 확실히 알게 됐는데요. 그 이후 실험 내용이 기억을 삭제하기 위한 최면으로 진행된 것에도 이유가 있을까요?

실제로 실험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실험플랜을 짜봤었어요. 일단 전체 실험의 목표는 ‘사람들의 기억을 삭제하는 것, 무의식을 조정하는 것’이에요. 그 당시 독일은 1차 대전 후 2차 대전을 일으키기 전까지 굉장히 가난하고 패전의 아픔을 힘들게 겪고 있었어요. 그래서 정권은 그들의 무의식을 조정하고 기억을 지우고 싶은 상황이었죠. 그래서 나치가 그걸 자신들의 집권의 무기로 삼게 된 거에요. 실제로 히틀러는 괴벨스를 통해서 계속해서 집단최면 연설을 시도했고요. 히틀러의 선전장관인 괴벨스가 어느 심리학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고 가정한 거죠. 우리 게르만의 우수한 혈통을 찾아라, 그리고 무의식의 조정이 가능한지를 알아내라, 한 거죠.

그래서 실험대상은 유대인이 아니라 우수한 독일인이에요. 자신의 군중이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나서 그 실험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론이 필요한데요. 그때 메리와 그란첸 박사가 가져온 것이 프로이드의 이론인 거죠. 왜냐하면 그때 프로이드의 이론도 막 제기된 핫한 이론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론들이 주제의 핵심은 아니에요. 단지 배경이 될 서브텍스트죠. 이게 진정한 극의 반전이나 주제가 아니니까요. 이건 사실 어찌됐건 상관없고 몰라도 괜찮은 서브텍스트에요.

사건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니 충분히 작품의 상황이 실제로 가능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역사적인 사실들을 어떻게 작품으로 쓰게 되신 건지 궁금한데요. 이런 내용을 따로 공부하셨나요?

대학원에서 서양사학과 심리학 프로이드 욕망이론을 연계해서 공부할 때가 있었는데요. 그때 관심을 가지게 된 사실이에요. 프로이드가 말한 한계치도 실제로 어디인가 하면 근친상간이거든요. 그걸 미리 얘기하면 안 되기 때문에 후반에 안나의 실험으로 보여줬어요. 그것도 성적 폭력에 의한 근친상간이라는 엄청난 강도로요. 프로이드 이론에 따르면 그것이 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치였고, 메리와 박사는 나머지 세 아이들에게 그걸 직접 보게 하면서 트라우마의 종류가 어떻게 달라질 지도 실험한 거예요. 모두의 누이이지만, 그중에 한 명은 연인 같은 존재니까요. 직접 당한 안나와 그걸 본 한스와 요나스,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당했다는 헤르만의 강도는 각각 다를 거예요.

살인 후 메리에게 최면을 요청할 때 불을 지르는 데도 이유가 있을까요.

최면에 잘 걸리게 하려면 충격이 필요했어요. 아이들은 최면에 내성이 생긴 상황이거든요. 메리를 불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게다가 아이들이 온갖 실험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해버렸어요. 한스 주도하에요. 한스는 어떻게 하면 최면에 빠지지 않을까를 아빠서재에서 치밀하게 준비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아이들 스스로가 최면을 원하게 되는 거예요. 아이들은 안타까울 정도로 나약하죠. 결국 아이들은 메리를 믿고 맡기는 거예요. 그렇게 메리가 자신들에게 끔찍한 짓을 했는데도 말이죠. 하지만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된 다음에는 최면을 스스로 거부하잖아요? 어릴 때는 너무 끔찍해서 받아들일 수 없다가 무의식의 고통 속에서 성숙해진 그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했는지를 깨닫고 기억을 지우지 않겠다고 선택하게 돼요.

메리가 불을 지르고 자신들이 거기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헤르만이 말하죠. ‘우릴 두고 가지 않을 거지?’ 라고요. 저희는 메리가 거기서 마음이 급격히 흔들릴 수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이때까지는 메리가 아이들을 속였더라도 이 시점에서 바뀔 수도 있다고요. 아이들이 자신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실험을 포기하게 되는 착한 메리 버전인거죠.

예전에 아동성폭력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신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이번 작품에서도 안나의 내면연기가 매우 가슴 아프게 그려져 있고요. 예전의 경험이 반영되신 건가요.

아동성폭력 피해자들이 아픔을 그린 ‘가면놀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적이 있어요. 그때 아동심리학자들과 많은 인터뷰를 했어요. 강간을 당한 아이들의 성적 트라우마와 무의식 속에 절대 사라지지 않는 고통을 목격했죠. 어린 아이들에게 어른은 세상이 될 수도 있어요. 세상이 아이에게 평생 사라지지 않을 상처를 남기는 거예요. 작품 속 아이들 역시 아무리 기억을 삭제하고 삭제해봐야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을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방법은 오로지 자신이 주체가 돼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에요.

지난 인터뷰에서 배우들에게 캐릭터의 해석을 본인들에게 맞게 연기할 수 있도록 열어뒀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배우들에 의해 바뀐 설정도 있나요?

처음에 요나스는 서브텍스트로 회피성 인격장애를 생각했어요. 공개되긴 했지만 사실 각각의 성격장애들은 연기에 도움을 얻기 위한 우리끼리만의 비밀 서브텍스트였어요. 요나스는 원래 회피성 인격장애였는데 처음 등장할 때 너무 임팩트가 없다 보니 임팩트를 주기 위해 막 화들짝 들어오는 것으로 연기를 했죠.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회피성인격장애보다 공황장애에 가까운 연기를 하게 돼서 그렇게 대사를 바꿨다고 할 수 있어요.

 

다시 앵콜될 때 수정 보완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관객분들의 피드백을 체크하고 다 모아놨어요. 이번 공연 중에는 바꿀 수 없었지만요. 작품 특성상 배우들이 미묘한 심리를 표현해야 해서 연기가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앵콜 때를 위해 꼼꼼히 체크하고 있어요. 피드백을 반영해 아마 안무의 손동작이 좀 보완될 거고요, 대사도 일부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요. 

영화소개프로에서 보면 감독님이랑 배우들이 코멘터리하시잖아요. 사실 이 장면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하고요. 오늘 인터뷰는 마치 ‘블랙메리포핀스’의 비하인드 코멘터리를 듣는 것 같네요.

정말로요.(웃음) 결국 작품에서 무엇을 삭제하고 무엇을 넣을 것인가에 대한 정도를 판단하는 것은 연출의 몫인데요. 제 선택이 모든 관객분들을 만족시킨다면 참 좋겠지만 참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한 분이라도 더 많은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 정도를 조율하는 데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리고 공연 올린 이후에도 그 때문에 조마조마 마음 졸였고요. 피드백을 살피면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체크하면서 좀 더 조율할 부분들을 찾았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관객들이 제작진의 숨은 의도를 발견하시고 궁금하게 생각해주셨는데 그 피드백 하나하나가 정말 고맙더라고요. 작품 입장에서는 그런 관객분들이 있어야 더욱 깊어질 수 있는 거고요.

이번 작품은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었던 것 같아요. 일명 ‘스터디’한다는 관객분도 많더라고요. 작품을 적극적으로 감상하는 관객들을 많이 양산했다고 생각해요.

그랬다면 정말 좋겠네요. 초고를 기반으로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간 것처럼 관객분들과도 함께 만들어가고 싶었어요. 배우들이랑 스터디하면서 정말 즐거웠거든요. 관객분들도 그 즐거움을 함께 느끼셨다면 좋을 것 같아요. 숙제처럼 끙끙 앓게 된 분도 계셨겠지만 다양한 가능성의 답과 해석들을 마음껏 즐겨주셨으면 해요. 그런 의미에서 초연에 대해 주신 의견들은 다음에 꼭 반영해 보완하겠습니다.

다양한 의견이라 하시니 궁금해지는데요. 배우 중에 작품에 대한 상상력이 유독 풍부했던 분이 있으셨다면요?

현덕이요. 상상력이 풍부해서 영화감독하라고 했어요.(웃음) 제가 최다의견상을 줬죠. 그 중에는 배가 산으로 가는 의견도 많았지만요. 2위는 추정화 배우예요. 의견 중에 로만박사가 메리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었죠. 아쉽지만 그런 의견들은 반영되지 못했고요, 나머지 결과는 모두가 적극적으로 얘기해서 협의한 내용들이에요. 테이블에 놓여있는 타자기 위치까지 디테일하게 생각할 때도 있었고, 설정자체를 ‘강간사건 3일 전 몇 시’라고 정해 연습한 적도 있지만요. 그전에는 상상 자체를 넓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던 것 같아요. 그 상상의 기간 동안 영화 3, 40편 정도는 만들지 않았을까요? 돌아보면 우리에게는 참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어요.(웃음)

벌써 다음 공연이 기다려지는데요. ‘블랙메리포핀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앵콜은 사실 아직 모르겠어요. 빠르면 내년이 될 수도 있겠지만 3, 4년 후가 될 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다시 공연된다면 초연과는 다른 헤르만 버전을 보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날을 기대하며 기다려주세요.(웃음)

박세은 기자_사진제공 아시아브릿지컨텐츠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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