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뮤지컬동네는 큰 경사가 났다. 그동안 옆 동네 K-POP 쪽이 전 세계적으로 가는 곳마다 대성공을 거두며 장사진을 치고 있는 데 비해서 너무 초라해 보였는데 문화관광부에서 뜻밖에 26억이라는 큰돈을 9개 단체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으니 잔치라도 벌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 26억이라는 돈이 위로금인지 격려금인지 포상금인지 모르나 선정된 작품을 보면 이미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것들이니 격려금임이 틀림이 없다. 세상 어느 나라 문화부가 민간 상업단체에게 이런 큰 격려금을 주는 예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받은 뮤지컬 업계 쪽에서 보면 좋은 일이다. 돈 주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26억은 개인이 주는 돈이 아니라 국민이 낸 세금이다. 이 돈은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문화산업이 발전하는 데 쓰라고 국민들이 주는 돈이다. 그러니 문화관광부는 주어진 예산을 가장 적절한 곳에 가장 적절한 수준으로 맞추어 써야 한다. 한 단체에 많게는 5억 적게는 2억이면 큰돈이다. 그러나 문화계에서는 큰 감동이 없다. 왜 그럴까?

혹시 이 돈이 가장 적절한 곳에 가장 적절한 수준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이 큰돈은 대개 이 업계에서 이미 내로라하는 단체들이 받았다. 편당 20~30억에 웃도는 예산을 쓰는 단체에서 2~3억은... 글쎄 별로 감동적이지 못하리라.

그러나 이 2~3억이 새롭게 뮤지컬을 해보려는 젊은 단체, 겨우 라면으로 끼니를 채워야 하는 가난한 뮤지컬 지망생들, 아이디어는 있으나 대본을 완성 못 해 쩔쩔매는 사람들, 대본은 있으나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아 좌절하는 사람들, 기존의 뮤지컬 문법이 싫어서 새로운 실험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돈이 간다면 이 돈은 그야말로 큰돈이고 감동이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뮤지컬의 미래가 이들에게 있는데 우리 문화관광부는 딴 데를 바라보고 멍청하게 헛돈질을 하고 있다. 그나마 ‘창작 팩토리’를 만들어서 새로운 뮤지컬 콘텐츠를 개발한다고 하지만 일 년 연극에 쓰는 예산이 고작 4천5백만 원이고 뮤지컬에 쓰는 돈이 6천만 원 뿐이다. ‘빈익빈 부익부’ 이 말은 경제뿐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계에도 철저히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문화계는 어떤가?

가령 몇몇 젊고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 그룹을 만들어 국가 행사 이벤트에 참여한다고 하자. 그러나 그들은 지원서류도 못 내보고 돌아서야 할 것이다. 그 회사가 몇 억 짜리 국가나 지자체 공사를 딴 실적이 없으면 아예 원서도 못 내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러니 새로운 아이디어, 젊은 문화기획자들이 어떻게 이 단단한 문화계의 장벽을 뚫을 수 있겠는가?

경제 민주화와 더불어 문화 민주화를 속히 이뤄내야 한다. 실적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좌파 우파, 진보 보수를 떠나서 경쟁력이 있는 사람, 가능성이 있는 대본과 기획을 문화관광부는 온 힘을 다해서 찾아내고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뮤지컬, 나아가 문화의 모든 장르가 더불어 발전을 할 것이다.

고학찬 1970년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 같은 해 TBC-TV에 입사해 1980년까지 다수의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했다.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뉴욕에서 최초의 한국어 방송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후 1994년 귀국해 Q채널 제작국장, 삼성영상사업단 방송본부 총괄국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현재 윤당아트홀 관장을 맡고 있으며, 서울예술대, 상명대, 세명대, 추계예술대, 한세대에서 겸임교수로서 후배양성에도 힘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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