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숨겨진 보배, 이 시대 색깔 있는 젊은 작가, 연출을 만난다. ‘봄작가, 겨울무대’가 작년에 이어 오픈을 앞두고 있다. 이번 무대는 신춘문예 당선자의 신작과 젊은 연출가들를 매치해 제작 기회를 마련해 준다. 총 7작품 중에 한 두 작품은 보완을 거쳐 내년 재공연의 기회도 획득한다. 단순 일회성이 아닌 인큐베이팅 형식으로 대학로 연극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작년은 예술 감독이 작가와 연출을 매치했다면 이번은 각각 작가와 연출의 선택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해 더욱 흥미롭다. 12월 6일부터 9일까지 그 첫 번째를 장식할 A팀의 두 번째 스테이지 ‘상자 속 흡혈귀’의 오경택 연출을 만났다.
오경택 연출은 극� 이안異眼의 대표로 2009년 봄작가, 겨울무대에서 연극 ‘솟대와 민달팽이’를 선보인바 있으며 이어 국립극단의 ‘세자매’에서 작품의 본질을 잘 살리면서도 과감한 해석과 기법으로 호평 받은 바 있다. 2010년에는 연극 ‘비정규 식량분배자’로 관객들의 호응과 함께 연극계가 주목하는 젊은 연출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10 서울연극올림픽에서 그가 연출한 연극 ‘로베르토 쥬코’가 선정되면서 연출가로서의 기량을 확증했다.
2010 ‘봄작가, 겨울무대’ 프로그램에 관해
취지가 좋아요. 희곡작가들이 신춘문예에서 등단해도,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가 않아요. 보통 작가분들은 개인 창작을 하시기 때문에 공동 작업에 대한 적응을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제적인 부분도 커요. 연극계 많은 작가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았죠. 이런 기회를 통해 작가에게 작품발표의 기회를 주어져 여기에 큰 의의가 있는 것 같아요. 워낙 어려운 상황이니까요. 신진 연출가들과의 매칭을 통해 세대 간의 원할한 네트워킹 역시 이뤄져 인상적이에요.
이번 선보일 ‘상자 속 흡혈귀’에 관해
‘상자 속 흡혈귀’는 시놉시스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였어요. 처음에는 블랙코미디로 쓰여질거라고 생각했죠. 초고가 나왔는데 완전히 제 예상을 뒤엎었어요. 예상 밖에 굉장히 무거운 드라마가 나왔거든요. 블랙코미디적 요소는 작품에 기본적으로 녹아 있기 때문에 주제에 더 깊은 의미를 담는 방향으로 선회했어요. 즐거운 장면을 뽑아내려고도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양적으로도 꽤 늘었죠. 작가님과 상의해 궁극적으로 무겁지만 보다 재밌고 감동도 있는 작품으로 거듭해가고 있습니다. 버전이 10번 정도 바뀌면서 업데이트 됐어요. 스케일도 굉장히 커졌고요. 14신에 공간변화도 잦아 블록버스터급이 됐어요(웃음).
‘상자 속 흡혈귀’에서 말하는 바는 무언가요?
소외된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작품 전반에 깔려있어요. ‘인간이 되고 싶은 흡혈귀, 흡혈귀 같은 인간이 함께 공존할 수 있을까?’란 다름에 대한 수용, 공존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어요. 그들 나름의 평화로운 삶을 살다가, 인간들이 지구를 좀먹으면서 그들은 쫓겨나 숨어사는 존재가 됐어요. 어쨌든 인간과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공존을 모색하는 모습을 그렸어요. 세상이 잔혹해졌으니 인간은 남의 피를 빨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고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하나의 메시지에만 초첨을 맞추진 않았어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내용이죠.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무대는 관객들이 무대를 둘러싼 형태입니다. 무대연출은 어떤 콘셉트로 가는가요?
고민이에요. 두 팀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데다 예산도 작품을 뒷받침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저희 팀의 무대 디자이너가 참여해요. 두 팀의 상황을 고려해 효율적인 무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죠. 텍스트 스케일이 큰 만큼 표현에 제한적인 것들이 많아서 고민이 되지만 어차피 연극은 그것들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연출로서 흥미로운 무대이기도 해요.
김나정 작가님과의 호흡은 어떠세요?
이번 ‘봄작가, 겨울무대’ 프로그램 참여가 즐겁고 재미있어요. 같은 세대의 친구를 만나니 좋기도 하고요. 나름 호흡이 잘 맞아요. 동년배이고 4차원의 느낌이 있는 친구에요(웃음). 저는 정리를 하는 스타일이니 잘 조화가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충돌하고, 어떤 면에서는 죽이 잘 맞아요. 그러면서 시너지효과를 내죠. 그래서 여느 때보다 이번에 역동적인 작업을 했어요. 좋은 창작극이 나오기란 힘든 일이잖아요. ‘봄작가, 겨울무대’는 뭔가 부족한 것 같지만 꿈틀거리는 가능성이 있는 무대라고 생각해요.
연출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세요? 왜 ‘연출’을 하시나요?
단순 재미가 아니라 감성적 영역에서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면 이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까요? 정답을 말해주는 게 아니라, ‘이것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 까요?’ 묻는 거죠. 기본적으로 연출은 작품에 대한 희열이나 자기만족, 자의성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수용자와 만나 그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가 탄생했을 때, 그것을 경험하는 재미 때문에 하는 게 아닐까요. ‘fun’의 개념이 아니라 ‘interest’ 의미로 볼 수 있죠. ‘interest’라는 말 자체가 ‘사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잖아요.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의미들에 제가 연출하는 이유에 대한 답이 있을 것 같아요.
뉴스테이지 김미성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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