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비참하고 부조리한 일면을 보여주는 장르 ‘블랙코메디’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절망이 숨어있다. 신랄하고 날카로운 비판을 웃음과 함께 전달하며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의 절정을 맛보게 한다. 이 매력은 실로 치명적이다. 무거운 감정은 표출할수록 알코올처럼 쉽게 번져 가볍게 날아가는 법이다. 하지만 ‘블랙코메디는’ 어떤가. 말 그대로 직역하면 어두운 웃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음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괴롭고 슬픈 감정을 숨기고 눌러 담다 보면 그것은 응어리가 되고 부지불식간에 폭발해 더 큰 재앙을 낳는다. 이런 점에서 ‘블랙코메디’란 장르의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

연극 ‘블랙코메디’는 제목부터가 대놓고 ‘블랙코메디’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극작가 피터 쉐퍼의 작품을 원작으로 대학로에서 최고의 흥행을 거둔 작품이다. 브로드웨이 극평가들에게 최고의 희극이라고 찬사 받은 이 작품은 국내에는 극단 성좌에서 공연했고 전회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바 있다. 연극 ‘블랙코메디’의 허영심 가득한 무명 조각가 브린즈리는 인간의 단면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며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는다. 인간 이면에 감추어진 지독히도 다중적인 모습, 갈수록 첨예해지는 물질문명에 대한 이기를 해학과 위트로 그려낸다. 백만장자 역에 출연하는 카메오들의 열연도 상당한 볼거리다. 성좌출신의 탤런트, 연극배우들이 총출연하는 기획작으로 탤런트 김정균과 개그맨 이태식의 뛰어난 연기는 좌중을 압도한다.

- 암전, 또 암전

무대 위는 지독한 암전상태다. 관객들의 시야 확보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관객들을 위해 암전은 광명으로 표현되고, 암전은 어두운 조명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대와 조명적 장치서부터 모순 그 자체다. 빛과 어둠으로 나뉘는 극명한 흑백이 전달하는 것은 단편적인 논리 밖에 모르는 자들의 어리석은 이면 표출이다. 머리 아프고 진중한 주제를 희화화해 그려낸 이 작품은 우리가 짊어진 커다란 고민과 혼란, 정체성의 방황을 조금은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사회의 모든 계층을 비판하는 통렬함으로 절대적인 웃음을 선사하는 이 작품은 암전이 광명으로 표현되는 장치마저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배우들은 시종일관 밝은 조명아래서 암전의 상황을 연기한다. 두 팔을 허공에 휘두르며 위치 찾기에 바쁘고 동공의 초점은 흐리멍텅하다. 리얼한 배우들의 열연은 가히 명품코메디의 위상을 세울 만하다. 어둠속에서 깜빡이는 두 눈의 움직임은 부질없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진실로 믿는 인간의 어리석은 면은 이들의 무의미하고 멍청한 행동으로 직결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장치는 목소리다. 또는 직접 다가가 손으로 만져보고 감촉을 느낀다. 보이는 것만 진실이라고 믿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무력해 지는 인간의 모습은 탄식할 정도로 한심하며 우습기 그지없다. 이들의 모습에서 현재 우리의 행동을 깊이 반성하게 된다. 광명의 빛이 때론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뉴스테이지 강태영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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