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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 따위’가 이뤄낸 행복, 연극 ‘기묘여행’의 연출가 류주연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애정의 시선

몇 년 전, 그녀는 일본의 어느 서점에 간 적이 있다. 일본에서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그냥 돌아오기 아쉬워 방문한 곳이다. 눈에 띄는 한 권의 책을 샀다. 일본어도 잘 모르고 맡길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워 번역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조금씩 번역을 한 후 2009년 서울문화재단 젊은예술가지원사업의 서류합격을 거쳐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합격했다. 사형수와 피해자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연극 ‘기묘여행’이 그것이다.

연극 ‘기묘여행’은 피해자의 부모와 가해자 부모의 만남을 시작으로 한다. 연극은 이들이 만나 사형이 확실시 되고 있는 가해자를 면회하러 가는 과정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형수의 부모와 피해자의 부모가 함께 여행을 간다, 이 한 줄만으로도 귀가 솔깃해지고 고통이 전해지죠.” 연극 ‘기묘여행’의 연출가 류주연이 말한다. “그 한 줄이 주는 고정적 이미지가 있는데 그것은 신파로 빠지기 쉽다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취향의 문제인데 개인적으로 신파를 좋아하지 않아요. 저에게는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더욱 담담하게 풀어갈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죠.”

- 작은 거인의 조용한 외침이 크게 울린다

 

이 기묘한 여행 속에는 아픔과 슬픔을 감싸고 있는 위트가 있다. “원작의 고통과 분노, 광분, 슬픔 등의 표현들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외의 유머나 위트는 원작에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하려고 했겠죠. 고통을 고통으로만 풀어낸 작품이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정치적 관점에서는 합법의 이름으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게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거죠.” 사형제도 여부는 이미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매체가 논쟁하며 호소해왔다. 류주연은 사람과 생명에 대해 소통하고 싶다. “사형제도에 대해 논하는 많은 사람들, 생각해보면 그들이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어요. 남의 이야기니까. 관객들이 피해자이건 가해자이건 그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실감했으면 좋겠어요. 생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죠.” 다소 무거운 주제의 이 연극은 어둡지 않다. 오히려 시종일관 재치와 몽환적 느낌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면 아릿한 안타까움이 몸 전체를 관통한다. “연극의 소재는 인간과 인간을 다루는 것,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것, 사회와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나눌 수 있어요. 저의 경우 인간과 사회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사실 처음부터 뚜렷한 목적을 갖고 연극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작품을 하면서 그동안을 되돌아보니 ‘아, 나는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구나’ 알게 된 거죠.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랬어요. 그것이 아마 제가 하고 싶은 게 아닐까 깨닫고 있는 중이예요.”

비극이 내포하는 희극, 희극이 담고 있는 비극. 지금 시대는 너무나 고단하고 피곤하다. 먹고 살기가 빠듯해 여유가 없다. 그것 때문일까, 관객들은 코미디에 집중하고 대학로에는 코미디 포스터로 가득하다. “그만큼 사람들이 피곤하니까 연극마저도 피곤하게 관람해야하나 생각이 들겠죠. 이해가 되기 때문에 연극은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웃고 싶어 한다면 웃겨줘야죠. 다만 그냥 웃기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서도 생각하고 돌아갈 수 있게끔 하는 거예요. 만약 사람들이 울고 싶어 한다면 연극은 울려줘야 해요. 역시 무작정 감성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울더라도 집에 가서 울도록, 내내 울 수 있도록, 생각하면서 울게 만들어야죠.”

- 연극을 위한 몸부림은 계속될 것이다

스물여섯.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직장을 다니다가 연극판에 뛰어들 당시 그녀는 어렸고 또 늦기도 했다. 연극 전공생도 아니었고 직간접적인 연극적 경험도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유리가면이라는 만화책을 보고 연극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연극에 대한 애정은 항상 있었는데 너무 사랑해서, 너무 사랑하면 그 존재가 커 보이고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잖아요. 나 따위가 어떻게 라는 생각에.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나 따위더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극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경제적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가장 버티기 힘든 나이가 20대 말에서 30대까지인 것 같아요. 한 10년에서 15년? 주머니에 몇 백 원 넣고 살아야하는 시간이 길죠. 그게 지나면 조금 나아지지만 그렇다고 절대 부유해지지도 않아요. 그런데 돌아보면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잘 살려고 아등바등 하잖아요. 그렇지만 일정의 수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죠. 그럴 바에야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게 훨씬 행복한 것 같아요. 물론 저도 30대 초중반에는 연극을 계속 해야 하는 건지 고민했었어요. 순수하게 경제적인 문제로.” 그녀는 연극을 하고 싶다는 후배를 필사적으로 말린 적도 있다. “그 친구는 부모님께도 폭탄선언을 하고 연극을 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는데 제가 뜯어말렸어요. 지금은 사회생활 하고 있는데 가끔 후회가 되기도 해요. 그냥 하라고 할 걸.”

그녀는 이제 연극을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말한다. “하고 싶은걸 해라, 그리고 하면서 행복해라.” 그녀는 당부한다. 인생이 너무 짧다고. “엊그제가 스무 살 같은데 벌써 나이가… 건강하고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기가 너무 짧아요.”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것이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것, 그것이 마치 지금 우리가 추구해야할 목표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는 문화가 건강하고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김구선생님도 말씀하셨잖아요. 문화가 살아야 한다, 문화를 살려야 한다고. 다소 걱정되는 문화적 현실을 인식하는 가운데 행동으로 옮기는 삶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고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애쓰고 몸부림치는 게 저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_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사진_뉴스테이지 전성진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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