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배우예술이고 영화는 감독예술이다. 서울예대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영화판에서 시나리오, 연출 등으로 이름을 알리다 20년 만에 연극무대 첫 연출 도전장을 내민 장항준 감독은 “연극이 영화보다 2배 더 힘들었다”는 말로 작품에 임하는 소감을 밝혔다. ‘감독, 무대로 오다’의 세 번째 시리즈로 류장하, 허진호의 바통을 이어 받은 그는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 완전히 삐지다’로 장항준식 코미디를 보여줄 예정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쉴 틈 없이 들어오는 개그의 대시는 ‘그’가 그리고 ‘그의 연극’이 도대체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간접적인 대답이기도 하다. 코미디는 그에게 있어 ‘습관’ 같은 것이었다.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 완전히 삐지다’는 삼류 영화감독인 만춘이 일본의 야쿠자 두목 와타나베의 전기 영화를 만들게 되면서 벌어지는 코미디물이다.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영상이나 내레이션의 사용 등 영화적 기법이 돋보인다. 연극의 첫 장면은 한국 영화계 낭보를 전하는 뉴스가 편집돼 틀어진다. 장항준 감독은 “한국 영화가 1천만 관객 시대를 열고, 1조원이라는 시장규모를 형성하고, 많은 감독들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카드가 연체되고, 그런 소외된 감독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영상들이 필요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상은 못 받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장항준 감독은 이번 작품을 만들면서 일본의 거장 기타노 다케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기타노 다케시는 세계적인 감독이자 배우, 그리고 코미디언이다. 그가 연출한 ‘하나비’나 ‘소나티네’ 같은 작품을 보면 늘 광폭하고 흉폭해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외로워지는 인간형을 자주 등장시킨다. 언젠간 그런 인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와타나베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작품 속 와타나베는 야쿠자로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살았지만 언제나 자신이 이 길로 들어선 것에 대한 후회로 가득한 인물이다. 어느날 삼류 영화감독 만춘은 그에게 묻는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내리겠냐고.

와타나베 역에는 중년배우 기주봉과 백인철이, 주인공 만춘 역에는 배우 정은표와 최필립이 동반 캐스팅됐다. 그 중 정은표와는 서로 대학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그는 정은표를 향해 “신화 같은 선배”라고 기억했다. 그는 “제가 처음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정은표 배우는 그 당시 혜성처럼 나타나 신인상을 다 휩쓴 사람이었다. 그런 은표 형에게 지금은 감놔라, 배놔라, 약하다, 쎄다, 그 대사는 재미없다는 등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 묘한 쾌감을 느낀다 (웃음)”라고 전했다. 옆에 있던 정은표 배우가 그에게 “작가로서는 80점 만점에 78점, 연출로서는 80점 만점에 75점을 주겠다”고 말하자 장항준 감독은 “요즘 스타들의 티켓파워가 크다. 정은표 보러 네 장이 팔렸다 (웃음)”라는 말로 응수했다. 곧이어 “어떤 배우가 나옴으로서 ‘이 작품은 어느 정도 질이 높은 작품이 되겠구나’ 하는 신뢰감이 생긴다. 은표 형은 그런 점에서 아무래도 이 연극을 대표할만한 인물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번 작품은 그의 첫 연극 연출 도전이었다. 영화 작업과는 또 다른 환경에 낯설기도 했을 터. 그는 “좋은 건 진행비가 나와서 배우들이랑 같이 술 먹을 수 있었던 거다. (웃음) 어려웠던 점은 영화는 현장에서 찍은 후 편집과 후반잒업을 거치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데 반해 연극은 모든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일단 무대에 오르면 연출자가 배우나 스탭들을 컨트롤하기도 힘들다는 점이 어려웠다”고 비교했다.

작품은 시작과 동일하게 영상으로 막이 내린다. 신이 태초의 인간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듯 감독은 화면 속 인물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이제 감독은 다시 한 번 선택을 내려야할 시간이다. 만춘이 와타나베에게 했던 질문은 고스란히 감독 장항준의 몫으로 남는다. 그는 “와타나베의 선택과 후회를 통해 우리가 살면서 ‘그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싶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미 망가져 사람들에게 적이 되어버린 자신의 인생에 대해 한탄하는 것을 떠나 ‘어떤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순수하게 전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유머 뒤엔 늘 이렇듯 쓸쓸함이 남는다.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 완전히 삐지다’는 오는 6월 6일까지 백암아트홀에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 글_최나희 사진_강지영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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