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토와 연극을 기반으로 정신적인 수련을 통해 내면적 동기를 육체로 표현해내며 “어떤 범주로부터도 벗어난 새로운 춤을 창조해내는 최고의 무용수들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컨템포러리 안무가이자 무용수 야마다 세츠코. 그는 메이지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후 카사이 아키라의 부토연구소에서 춤을 시작했으며, 1980년대 후반 창무회와의 작업으로 처음 한국에 소개되었다. 이 후 러시아와 동유럽, 미국 등에서 안무가/무용수로 활동하다가 2000년부터는 교토 조형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9 창무국제예술제’의 기획가운데 하나인 ‘한.미.일 여성안무가전’에 참가하고자 방한한 그를 만나 춤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월간 춤과 사람들 2009년 9월호에 게재된 글의 일부이다.)

- 한국과 오랜 인연이 있으시죠. 이번 방문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요?
1986년 김매자선생의 초대로 신촌의 창무춤터를 처음 방문한 이래 계속해서 한국과 교류 해왔습니다. 90년대에 한국을 자주 방문했었는데 한 동안 와보지 못하다가 올 해 창무국제예술제가 의정부로 자리를 옮겨 열린다 하여 오게 되었습니다.

- 독자들에게 당신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부토 출신의 컨템포러리 무용가라고 불리는 것이 좋습니다.

- 한국 관객들에게 이번 공연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오래 전부터 한국에 제 춤을 소개했었는데, 이번 공연이 오랜만이다 보니 그 사이 나의 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번 공연될 <기묘한 고독>은 2009년 신작으로 나의 요즘 스타일이 실려 있는 작품입니다.

- 주로 솔로작업을 하시는데, 군무를 만들기도 하나요?
주로 솔로 작업을 많이 하지만 듀엣 작품을 만들기도 해요. 작년에 발표한 신작도 듀엣 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군무작품을 만들기도 했지만 자주 하지는 않습니다.

- 한국 현대춤 공연을 보시나요?
한국을 방문할 때 마다 보기도 했지만 요즘은 일본에서 한국 작품들이 자주 공연되기 때문에 많이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본 것을 기억하자면 저는 전통춤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창무회의 공연을 좋아 합니다. 최근에 본 젊은 무용가의 공연가운데는 김성용의 춤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요즘 일본에서는 ?늄뵀맛舅� 춤을 선보인 김희진의 공연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 한국 현대춤의 전반적 인상은 어떤가요?
한국의 현대무용가들을 보면 전반적으로 신체의 레벨이 높습니다. 리듬감도 좋고, 몸의 활용도가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특별한 점은 발레와 현대무용을 공부한 사람이 많은데 그들 가운데 한국의 전통적요소를 결합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을 좋게 생각해요.

- 당신의 춤의 뿌리는 어디인가요?
나의 춤 뿌리는 ‘부토’입니다. 부토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나의 부토는 즉흥성을 강조하는 것이에요. 서양 춤의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면 어릴 때 배운 발레를 들 수 있습니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내 춤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 연극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무용가가 되었나요?
몸에 관심이 있다 보니 무용가가 되었어요. 그리고 연극을 하다 보니 제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별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죠.

- 처음 무용을 시작했던 때를 기억하나요?
6살 때 발레를 시작했어요. 그 이유는 나의 언니가 이미 발레를 배우고 있었고 나의 아버지가 이시이 바쿠선생의 제자로 대학에서 무용교육학을 전공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몸이 아파서 무용가의 길을 포기하고 평범한 회사원이 되셨고, 발레에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한 저도 몇 년 후 그만두었어요. 그러나 춤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어서 10대의 저는 책상에 앉아 예술을 공부하는 아이 였습니다.

- 그러다 부토를 시작하셨는데 무엇이 당신을 부토로 이끌었나요?
스무 살에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어요. 대학에 들어가서 많은 춤공연을 봤었는데 그 중에 카사이 아키라 선생의 공연과 그분이 쓴 책을 보고 부토를 시작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춤을 만들고 출 수 있구나 하는 것은 충격이고 감동이었습니다. 어릴 때 배운 춤이라는 것은 스승이 시키는 대로 틀에 맞추어 춰야하는 발레였기 때문에 저에게 부토는 아주 흥미롭고 신선한 것이었어요.

- 안무는 언제 시작하셨나요?
27살에 만든 군무작품이 나의 데뷔작입니다. 1989년에는 나의 무용단 “BIWAKEI”를 만들었는데 ‘비와’는 비파나무의 열매를 뜻하고 ‘계’는 계파를 나타내는 단어를 서양식으로 쓴 것입니다. 8명의 단원이 있는데 제가 대학의 교수가 되고 나서 각자 독립하여 활동하고 있어요. 공연이 있을 때만 모여서 함께 작업 합니다.

-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시나요?
올해로 9년이 되었는데 교토의 조형예술대학 무대학과에서 무용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몇 군데 대학의 강사를 하기도 했지만 교수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 특별한 교육철학이 있나요?
내가 가르치고 있는 무대학과의 학생들 대부분은 춤을 전공하거나 무용가가 되고자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춤기술만을 가르치지 않아요. 기교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의미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창조정신을 강조합니다.

- 부토출신의 컨템포러리 무용가는 어떤 메서드로 연습하나요?
물론 부토의 움직임이죠. 저는 그 뿐 아니라 일본의 합기도와 중국의 태극권 등 무술을 공부해서 그 움직임 가운데 춤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습니다. 요가도 공부했고, 여러 가지 움직임들을 춤으로 어우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메서드라고 할 것 까지는 없습니다.

- 작품을 위해 고정적으로 협업하는 스텝들이 있나요?
음악, 미술, 의상 등 처음부터 오랜 시간 함께해온 스텝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최근 젊은 스텝들로 바꾸었어요. 새로운 영향을 받을 것 같습니다.

- 평소에 선호하는 주제는 어떤 것인가요?
작품의 주제를 정하기 위해서 책을 읽기도 하지만 드라마 트루거와 대화를 많이 나눕니다. 요즘 관심을 갖는 주제로는 ‘인간의 고독’이 있어요. ‘고독’이라는 것의 어둡고 부정적인 면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 즉 고독의 아름다운에 관해 관심을 갖습니다. 또 시간에 관한 주제를 많이 택하는데 인간 삶의 흘러간 시간에 관한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 일본 현대춤의 흐름은 어떤가요?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있어요. 원로 무용가도 많고 젊은 층의 무용가도 많지만 30-40대쯤 되는 중간층의 무용가가 적다는 것입니다. 20대 젊은 무용가들은 주로 자기중심적 주제를 주로 다루고 있어요. 사회문제나, 인간관계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춤 뿐 아니라 삶의 연륜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30대 무용가가 적어서 아쉽습니다.

- 한국 젊은 무용가들에게는 일종의 유행 같은 것이 있는데 일본은 어떤가요?마찬가지입니다. 유럽의 영향을 받은 공연이 유행처럼 있기도 하죠. 몸의 움직임 보다 다른 요소들에 중점을 두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 일본 현대춤의 미래를 예측해본다면 어떤가요?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모든 무용수들이 다 같은 춤을 추고 있으니까요. 새로운 시도가 다음세대에서는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새로운 춤과 다양한 주제를 추구하라는 조언을 하는데 이것은 곧 나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나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무용가이니까요.

- 일본의 현대무용단들은 어떤 환경에 있나요?
제가 보는 일본의 무용단은 그 수가 많은 것 같지만 한국에 비하면 적은수입니다. 일본은 한국처럼 대학에 무용과가 별로 없거든요. 경제적으로 좋은 여건에 있는 무용단은 거의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같은 환경이 아닐까 생각해요.

- 도전하고 싶은 일들이 있나요?
도전까지는 아니지만 이번에 발표하는 작품 <기묘한 고독>이 20분 품인데 1시간으로 확장시켜서 독일과 방콕에서 발표할 계획입니다. 내년이 되면 동경에서 완전히 완성된 작품을 공연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함께 작업하고 있는 중견 극단이 있는데, 여배우와 저, 그러니까 춤과 언어가 어떻게 아름답게 조우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이것을 풀어내는 것이 나의 도전이고 숙제입니다.

- 결혼을 했나요? 가족의 이해가 많이 필요하실 것 같군요.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습니다. 남편도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나의 생활을 충분히 이해해주고 있어요. 남편은 그림책을 만드는 일러스트 디자이너입니다.

- 모든 분들에게 드리는 질문입니다. 춤은 당신 인생에서 무엇인가요?
춤은 우연히 만났지만 삶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춤추는 것 없이 나의 삶을 생각할 수 없어요. 어릴 때부터 춤을 추는 사람들 가운데는 어른이 되어서 발레리나가 된다거나, 춤교사 등 목표가 뚜렷한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렇게 시작하지 않아서 좀 다릅니다. 나의 생각과 존재감, 정체성 등 찾고자하는 것이 많은 나이에 춤을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지금까지 왔는데, 무엇인가 찾는 일이 끝나면 저는 춤을 그만두려합니다. 몸을 통해 발견할 것이 더 이상 없다면 춤을 출 이유가 없는 것이니까요.


글_김예림 무용평론가 yelim110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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