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009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 초청작 <올르론(Holeulone)>을 가지고 벨기에로부터 날아온 무용가 까린느 퐁티를 만나 그녀의 작품과 춤인생에 관해 들어보았다. 그녀는 무드라 무용학교의 1세대 졸업생으로 ‘벨기에 웨이브’의 탄생에 일조한 인물임에도 한국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무용가이다. 이번 만남은 연습실 한편에서 무용수들이 몸을 푸는 동안 이루어졌는데, 건장한 두 남성무용수가 장난치며 노는 동안(그들은 워밍업 중이라고 했다.) 마치 놀이방 볼풀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힐끔거리며 커피한잔의 여유를 갖는 엄마들처럼 간간히 눈치도 주고, 무사한지 확인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용수들의 장난이 지나쳐 소리가 커질 때 마다 까린느는 ‘우리 아이들이 떠들어서 미안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들의 무겁고 심각한 작품과 달리 유쾌한 만남으로 기억된 시간이었다.

(다음은 월간 ‘춤과 사람들’ 2009년 10월호에 게재된 글의 일부이다.)

- 아시아 진출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 국립극장 기획팀의 김상필씨가 우리 무용단의 영상을 보고 관심을 두었다가 벨기에를 방문한 기회에 직접 만나 초청해 주어서 ‘2009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무용단 이름 담 드 픽(Dame de Pic)은 어떤 뜻인가요?

나의 첫 안무작 제목입니다. 뜻 그대로 ‘담 Dame’은 여성을 뜻하고 ‘픽Pic’은 칼이나 날카로운 집게를 뜻해요. 처음 안무를 할 당시 마리오네트를 사용했었는데 내용은 말벌의 독침이 갖는 의미를 표현한 듀엣이었어요. 그 작품의 성공 후 그 의미가 좋기도 했고 우연하게도 스텝과 댄서 모두 여자들만 모인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 짓게 되었습니다.

- 한국관객에게 어떻게 보여지기 바라나요?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 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지만 한국 관객이라고 해서 특별히 생각하는 것은 없습니다. 춤을 보는 것은 전 세계 관객이 다 같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한국 관객의 반응이 궁금하긴 합니다.

- 한국의 무용가나 작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었나요?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무용가를 한두 명 본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유럽에서 유학했거나 오랜 시간 머물면서 유럽화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저는 한국의 무용가들을 봤다고 할 수 없어요. 한국적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이번 방문 기회에 공연들을 보고 싶습니다.

- 무용 ‘올르론(Hoeleulone)’은 어떤 작품인가요?

2006년 8월 벨기에의 the Chapelle des Brigittines Theatre에서 초연되었고, 현재까지 6개국 32지역에서 60여 회 공연된 작품 입니다. 이 작품은 처음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영상작가인 티에리 반 하쎄(Thierry Van Hasselt)와의 공동작업으로 탄생된 것으로, 타이틀 'Holeulone'은 “Hole Alone(영어 All Alone)”이라는 이중의미의 불어식 발음을 하나의 단어로 만든 것입니다.

- 다니엘 키스의 소설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무용 ‘올르론’은 1959년 출간된 다니엘 키스(Daniel Keyes) 원작 ‘앨저넌에게 꽃을(Des fleurs pour Algernon)’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춤은 줄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줄거리 보다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에요. 무식하고 가진 것 없는 찰리 라는 주인공이 유식해지면서 인생에 대해 자각하게 되고 종국에 가서는 다 부질 없다는 것, 즉 인생무상을 느끼는 과정이 제 관심을 끌었거든요. 어떤 이든 간에 출세를 하고난 후 자신의 추락, 실패 그리고 타락을 차례로 겪으며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감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 했습니다. 인간이 지적 능력이 향상되면 대조적으로 사랑의 감정 같은 본능을 소홀하게 되어 균형이 깨지게 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 춤 내용은 어떤 것인가요?

두 남자가 나오는데 주인공과 그의 분신을 표현합니다. 또 현재의 주인공과 과거의 주인공이 되어 서로를 관찰하고 평가하기도 하는데 서로 부족한 점을 발견하거나 보완하게 됩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과거, 현재 시점을 자유롭게 이동 합니다. 내면의 자아성찰이기도 하고, 보기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2.5미터 길이의 세트 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제약이 많습니다. 세트에는 구멍도 있고, 경사진 부분도 있어요.

- 무용수들이 안무에 참여하기도 합니까?

이 작품은 2006년 것인데 무용수들은 그 훨씬 전부터 함께 작업해왔고 앞으로도 함께 할 사람들입니다. 각각 12년, 6년 된 무용수입니다. 다른 작품과 달리 그림(영상)의 진행과정을 보며 제가 움직임에 대해 어떤 제안을 하면 무용수들이 반응하고, 그중 제가 몇 개를 고르고 대화를 통해 다듬어가는 방법으로 안무 했습니다. 대부분 무용수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누구나 자기만의 표현방식이 있다는 것을 존중해주고 싶습니다.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제 안무를 주는 것 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고 힘들지만 나만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 매 공연이 똑같은가요 아니면 무용수들이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순간도 있나요?

안무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기계와 같을 수 없어서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 예를 들어 발란스를 잡을 때 더 오래 있을 수도 있고 금방 흐트러지기도 하기 때문에 시간의 사용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 영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어떤 의도인가요?

애니메이션 영상 전문가 티에리 반 하쎄(Thierry Van Hasselt)와 지난 5년간 함께 작업해왔습니다. 책도 만들고 공연, 전시 등 하다가 좀 더 발전된 공연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것입니다. 음악과 영상, 그림 이 완성된 후 춤을 만들었기 때문에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영상을 위해 그림을 1천5백장 이상 그렸는데 검정 잉크 위에 산성액을 뿌리고 휘발되기 전에 빠르게 그려야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고, 그것이 끝나야 안무와 연출이 진행되기 때문에 힘든 작품이었습니다. 무대 세트를 보면 바닥에 영상이 그 위에 춤이 있는데 그 둘 사이의 균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 했습니다.

- 당신 춤은 어떤 메소드를 기초로 하니요?

정의내릴 수 없어요. 저는 클래식 발레, 현대무용, 연극 등을 소화한 퓨전 스타일의 춤을 춥니다. 무용수는 프랑스인 전직 소방관과 전통무용을 추던 슬로바키아 출신 무용수입니다. 두 사람 모두 육체적 발달이 잘 되어 있지만 둘의 특징은 달라요. 그 두 사람의 균형,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육체의 미보다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 관념을 중시하는 당신 작품은 농당스까지도 갈 수 있나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직까지는 움직임에 비중을 두고 있고 그것은 분명 춤작품 입니다. 이제는 복합예술의 시대로 장르를 정의내리기 힘들죠. 내 공연도 시나 연극적 요소가 있다 보니 보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겠지만 저는 춤작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 합니다.

- 당신의 춤역사가 궁금합니다.

저는 프랑스인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스페인에 오래 살았어요. 저는 매우 활동적인 어린이여서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산할 방법으로 춤을 시작했고, 예술적 감각을 인정받아 동시에 음악도 공부했습니다. 후에 벨기에로 건너와 베자르의 무드라 학교를 다녔고 벨기에 여러 무용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했습니다. 1996년 안무가로써의 자질을 주위로부터 권유받아 나만의 무용단을 만들게 되었어요. 학부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부전공으로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했습니다. 지금도 번역일을 하는데 무대예술에 관련하여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번역은 참 좋은 일입니다. 타국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한국에도 벨기에 웨이브가 불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각광 받는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한국에 벨기에 웨이브가 상륙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약 5년 전부터 라고 하는데 유럽에서 15년 정도 되었으니 한국까지 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네요. 벨기에는 작은 나라입니다. 많은 나라 사람들이 벨기에를 통과해서 다니고 있어요. 그 때문에 빠르고 다양한 정보를 늘 새롭게 접할 수 있어요. 한국은 단일민족이고 정체성이 획일화된 면이 있지만, 벨기에는 그와 정 반대의 나라입니다. 예술 전반에 그러한 배경이 영향을 미쳤고, 특히 춤에서는 ‘무드라’ 학교의 설립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설립초기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고 ‘다인종 다문화’ 속에서 자유로운 시도들이 가능했어요. 안느 테레사 드 마커 등 무드라 초기 멤버들이 벨기에 웨이브를 발단시켰습니다. 벨기에는 작은 마을과 같아서 갈 수 있는 곳도 뻔하고 예술가들 끼리 서로의 작업을 모를 수가 없어요. 새로운 시도들을 보며 살기 때문에 함께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 것 같습니다.

- 앞으로 벨기에의 춤을 전망해본다면 어떨까요?

속단은 힘듭니다. 세대교체가 눈앞에 있는 것은 분명한데 다음세대의 성패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무드라 학교의 설립 초기에는 뚜렷한 방향이 없었기에 각자의 개성이 발휘될 수 있어서 벨기에 웨이브를 이끈 무용가들이 나왔지만, 지금은 교육방향이 안정적이고 확고합니다. 학교가 유명해지고 체계가 잡힌다는 것은 개성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해요. 벨기에 웨이브는 빔 반데키부스, 알랑 플라텔, 안느 테레사 드 마커스처럼 개성 있는 사람들이 등장해야 이어질 수 있는데 지금 배출되는 벨기에 젊은 무용가들 가운데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아르헨티나 무용가들을 보면서 새로운 바람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더 새로운 것이 없다면 남미의 바람을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지금은 순회공연을 많이 하고 있는데 조만간 아동을 위한 책을 일러스트 작가와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춤도 만들고 싶은데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심을 표현하는 작품 을 만들고 싶어요. 이렇게 미술가와 하는 작업을 3번 정도 더 할 것 같습니다.

- 당신 인생에서 춤은 무엇인가요?

제가 살아 있음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춤은 경험을 통한 예술로 개인이 바라보는 세상을 배우게 해주죠. 공간적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인간의 진화와 발달, 그 이면의 인생무상, 덧없음 같은 것들을 깨닫게 해줍니다.


글_김예림 무용평론가 yelim1108@yahoo.co.kr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