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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인간 11] 작은 배에 같이 타고... (3)

 

[아래는 김방옥의 연극론집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를 일부 연재한 것이다. 기획연재 ‘연극과 인간’은 김방옥의 연극론집을 통해서 한국 연극의 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전반적인 한국 공연문화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함이다.]

좌담, “배고팠던 연극정신과 비평정신은 어디로”를 읽고-

◎ 연극계의 혼돈상: 중독자들끼리의 폐쇄된 순환계
1.1. 오늘날 그래도 어떤 사람들이 연극을 하는가?

오늘의 연극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을 크게 둘로 나눠본다면 우선 60~70 년대부터 연극을 해온 기성세대들, 그리고 새롭게 연극계로 흘러 들어오는 젊은 세대들로 나눌 수 있다. 기성세대들에게 지난날의 사명감과 자부심이 다소나마 남아있다면 새롭게 연극계를 메우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물론 증설되는 연극과의 졸업생들이 대학로로 꼬리를 물고 나온다는 대답도 있겠지만 대학로가 그들의 직장은 되어주지 못하지 않은가?
제자리걸음치는 연극문화에 대한 무력감에 시달리던 나는 근래 이 사회의 연극문화를 예술생산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문화인류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대상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해본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그래도 계속 연극행위가 이어져간다는 것은 그 사실자체가 오히려 경이로운 탐구의 대상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 시대의 연극인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나마 사회가 고급예술인 연극을 요구하고 자신들이 그 요구에 헌신적으로 부응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와 같은 연극인의 사회적 소명감도, 순수예술인으로서의 자부심도, 그렇다고 경제적 보장도 받지 못하는 오늘의 연극계에 왜 사람이 그치지 않고 모여드는가? 그런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낭만적 표현을 빌자면, 일종의 ‘피의 부름’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무대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관객 앞에 서지 않으면 병이 나는, 욕망과 몽상을 무대 위에 구현시키지 않으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그런 사람들이 연극인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런 ‘피의 부름’에 과거와 같은 낭만적이며 비극적인 운명의 무게 감이 줄어들어 그것이 단지 기질이나 기호의 차원으로 변질되기는 했어도 말이다.
오늘날의 ‘기질적 연극인’들이 스스로의 기질에 대한 무거운 해석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분위기의 변화 때문인 것 같다. 즉 ‘연극인’이라는 것을, 과거와 같은 운명적 피의 부름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는 구도자적 집념도, 사회적 사명감도, 지성적 자부심과도 연결 짓지 않으며, 그대신 다양한 기호(嗜好)와 삶의 방식들이 수평적으로 허용되는 사회 속에서의 삶의 한 방식이자 직업으로서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은 분명 연극 없이 못사는 ‘연극 병 환자’이기는 하되 치열함이 결여된 ‘일상적인 연극중독자’들로 살아간다. 여기서 ‘연극중독자’란 연극 없이는 못살되 연극에 관한 분명한 의식이나 비전이 갖춰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1.2. 오늘날 도대체 누가 연극을 보러 가는가

내가 항상 지적해온 바이지만 우리극장의 객석을 채우고 있는 연극관객의 대부분은 얼굴이 없는, 마치 허깨비와 다름없는 관객들이다. 연극이 무엇인지 알며 즐길 줄 알고 기대치를 가지고 극장표를 사는 그런 관객이 아니기 때문에, 지난 좌담에서 김태원 선생이 주장했듯이, 기획에 의해 일회적으로 만들어졌다가 곧 사라지고, 천만 서울인구 중 급조되었다가 다시 묻혀버리며, 혹은 동숭동을 떠돌다가 시간을 메우기 위해 잠시 들리는 그런 관객들이라는 뜻이다.
한편 인문적 소양의 고갈 때문에 연극이 버림받는 이 시기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연극은 인문적 소양을 키우기 위한 관객들에 의해 배양되기도 한다. 보통 한 강좌에 수백 명씩, 한 대학에 서너 강좌 이상의 교양과목 ‘연극의 이해’의 수강자들은 레포트를 쓰기 위해 극장객석을 꽉꽉 메운다. 이들은 미래의 얼굴 있는 관객들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이런 동원성, 우연성의 관객 외에 순수 자발적인 연극관객은 없는 것일까? 연극 병 환자는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뿐 아니라 관객 중에도 있다. 그들 역시 어떤 심리학적, 사회학적, 문화인류학적 요인들 때문에 부단히 극장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떤 종류건 무대와 배우를 보아야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기 쉽다. 개별적인 연극작품들보다도 연극이라는 장르자체에 향수나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으며 어떤 경우에는 그들이 무대에서 실제 보고 있는 것 너머의 상상 속의 무대를 볼 능력이 있는 관객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좀 너그러운 편이다. 무대에서 감각이 좀 떨어지는 연극에도 그런대로 만족하거나, 혹시 실망을 해도 다시 극장을 찾음으로써 곧 연극중독증이 되어간다. 아마도 연극이란 살아있는 인간의 구체적 행위를 매체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단편적 영상광고나 인테리어나 패션감각 등의 변화처럼 재빠르게 감각의 시류에 편승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며 살아있는 인간에 관심을 갖는 연극중독자들은 이런 ‘촌스러움’에 다소 너그럽기 때문일지 모른다. 의식화되지 못했거나 중독자라는 점에서는 연극관객들도 마찬가지다.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편집부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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