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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성장하는 이야기는 결국 사랑하는 이야기

내가 어떤 모습을 하던 나를 보는 너를 보니, 보이지 않던 나의 모습이 보인다. 너는 나를 통해 변화했고, 나는 변화하는 너를 지켜보며 알지 못했던 나와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시간이 주는 여백의 미, 표현의 극대화가 주는 정서의 증폭,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소설의 묘미는 언어로 함축된 새로운 세계를 자신만의 감정으로 해석해낼 여지를 주는 것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은 같은 이야기라도 독자에 따라 장면의 정서를 이해하는 ‘결’이 각기 다르다. 그러나 연극이나 뮤지컬 등의 공연은 드라마적 표현을 배우가 직접 등장해 관객들 앞에서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에 표현의 방식이 추상적이고 간접적이라고 할지라도 드라마 흐름과 작품 분위기가 창작자들의 방식대로 노출된다.

다시 말해 드라마에 대한 사고의 시간은 소설보다 현저히 줄어들고 작품 전체에 대한 적극적인 정보 전달이 창작자들의 정서의 틀에 선험적으로 걸러진 채 관객에게 정확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소설이 가진 ‘생각의 여지’가 드라마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대중이 얻을 수 있는 뜻밖의 선물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보면 원작 소설을 공연 화 했을 때 큰 호평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이런 이유에서 기인한 것이 많다.

그러나 소설이 가진 매력인 ‘상상의 시간’과 드라마가 공연으로 올려졌을 때 드러나는 매력인 ‘감정의 증폭’, 이 두 가지 장점을 동시에 뽐내는 작품도 드물게 있다. 대학로에서 무서운 속도로 인기 몰이 중인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가 바로 그 드문 작품이다.

누군가 소설책을 읽어주는 것과 같은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두 명의 배우가 소설 속 인물이 되어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의 특징은 이렇다 할 무대 전환이나 화려한 무대 연출이 없다. 인물의 심리와 이야기의 전개 모두 편지 내용 안에서 정보가 드러나는데, 드라마 흐름으로는 강조점이 될 만한 인물의 심리묘사는 노래를 통해 전달된다. 뮤지컬에서 음악이 중요한 정서를 증폭시키는 적절한 수단으로 작용되는 점을 십분 활동한 구성이다. 그 외의 이야기 전개는 모두 배우의 입을 통해 편지 내용으로 소통되는데 두 명의 배우가 번갈아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작품 전체 구조의 전부이다. 이런 간단한 전개는 단조로운 인상보다는 마치 소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집중력을 유발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 읽는 식으로 구성되었지만, 관객은 두 인물의 편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인물들의 정서나 이야기의 진척 상황에 대해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가 소설책을 읽어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는 것이다.

일인칭과 삼인칭의 조화, 소설과 뮤지컬의 만남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에서 주요하게 사용된 편지를 통해 자신의 심리를 직접 언급하는 표현 방식은 소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하는 일인칭 시점의 표현 방법과 닮아있다. 이 작품은 뮤지컬이기 때문에 말과 대사로 심리를 드러냄과 동시에 무대 위의 배우들은 연기를 통해 장면을 묘사한다. 관객은 인물이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일인칭 적 관점을 경험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인물로서 연기하는 이행자로서 역할을 하는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삼인칭 시점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이는 장르와 장르가 만난 지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구조적 틀의 새로운 시도이다.

가깝고도 먼 제루샤와 제르비스
이 작품은 유난히 방백이 많다. 인물들 간의 액션과 리액션이 암묵적으로 막힌 상황에서 관객을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백은 원작 소설이 가진 ‘아련한 감성’을 잘 표현한 대사 처리 방식이다. 쉽사리 뜨거워지지 않지만 쉽사리, 식지 않는 사랑의 감정은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던 제루샤와 제르비스가 실제 무대 위에서도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상황을 진득하게 보여준 점에서 적절했다고 본다. 두 인물 간의 직접적 교류는 편지글 안에서 장면을 묘사하기 위한 부분에만 제한적으로 활용된다. 이런 전개 때문에 관객은 외나무다리 위에서 아슬아슬 서 있는 두 남녀가 어서 빨리 이어지기를 바라는 가슴 졸임을 겪는데 이 부분은 작품이 가진 숨은 재미의 요소라고 본다.

사랑에 목메는 이유
이 작품의 드라마적 터닝 포인트는 역시나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팔십 세에 배가 나왔고 대머리인 스미스가 젊고 사랑에 적극적인 청년 제르비스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겪는 제루샤의 혼란과 성장통이 가장 극적인 전개를 드러낸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가 원작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제루샤의 성장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난을 겪고 타인의 도움을 통해 세상을 알고 성장해나가는 캔디형 캐릭터 소녀의 성장 이야기는 소설에서 강조된 드라마적 맥락이지만, 이번 작품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에서는 자신과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고를 하며 진취적으로 삶에 맞서는 여성을 바라보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마음에 관해 확인하고자 하며, 진실한 사랑에 대한 절실함이 있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용기를 갖기 위한 의지적으로 노력하는 제르비스의 모습 역시 비슷한 무게로 강조되었다.

두 젊은이가 서로의 변화를 바라보며 성장하고, 다름에서 느껴지는 울림을 기반을 둔 마음이 사랑으로 발전되는 계기를 만나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청춘의 성장 안에는 사랑도 포함된다는 당연하지만 대단한 진리가 작품의 대표 메시지로 관객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작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나, 원작을 모르는 관객을 막론하고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를 관람한다면 인간이 사랑에 목메는 이유에 대한 각기 다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여랑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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