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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는 아직 급하지 않다”…배우 우찬

 

187cm의 훤칠한 키, 건장하고 유연한 몸, 서글서글한 인상, 탄탄한 성대, 위트 있는 말재주까지. 우찬은 남자 배우가 가져야 할 조건을 다 갖춘 보기 드문 배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애매모호한 배우’라며 셀프 디스(?)를 서슴지 않는다. 외모나 매력이나 다 애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무대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그의 ‘셀프 디스’가 주는 견고한 성찰이 얼마나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는지.

2007년 뮤지컬 ‘동키쇼’로 본격적인 뮤지컬 배우 생활을 시작한 그는 다양한 역할로 그간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충실히 쌓아왔다. 뮤지컬 ‘판타스틱스’에서는 대사 한 줄 없는 ‘뮤트’ 역을, ‘식구를 찾아서’에서는 강아지 ‘몽’ 역을 소화했다. 뮤지컬 ‘달을 품은 슈퍼맨’에서는 지적장애를 가진 인물을 연기했고, 뮤지컬 ‘난쟁이들’에서는 자아도취에 빠진 ‘왕자1’과 해설자 격인 ‘마법사’ 역으로 열연했다. 2007년부터 꾸준히 이어온 작품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겹치는 캐릭터들은 거의 없다. 앞서 우찬은 자신을 애매모호하다고 했지만, 지금껏 그는 경계가 없는 연기로 여러 작품 속에서 누구보다 성실히 활약해 왔다. 그리고, 우찬은 여전히 급하지 않은 걸음으로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5월 중순 햇살이 좋은 날,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에 출연 중인 배우 우찬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다사다난, 배우 우찬이 되기까지

최근 우찬은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뮤지컬 ‘난쟁이들’의 끝물에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의 연습을 시작했고, ‘난쟁이들’이 끝나자마자 다시 ‘달빛요정과 소녀’의 무대에 올랐다. 근래에는 뮤지컬 관련 행사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근황에 대해 묻자 숨을 한 번 몰아쉬고는 미소로 말문을 열었다.

“그간 바쁘기도 했고, 체력적으로 힘든 게 있었어요. 거의 쉬질 않았거든요. 남들이 들으면 새파랗게 젊은 놈이 무슨 소리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몸이 예전 같진 않아요.(웃음) 어릴 땐 술을 정말 많이 마셨어요. 그래도 그땐 땀을 좀 빼고 나면 괜찮았었거든요. 아직은 괜찮지만 30대 들어서면서 ‘예전 같지 않네’를 느끼고 있어요. 점점 녹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배우들이 관리를 잘해야 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특별한 일 없으면 그냥 자요.”

우찬은 어릴 적부터 춤추고 노래하기를 즐겼다. 소방차가 유행하던 80~90년대 초반에는 유달리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해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가게 테이블에 올라가 춤을 추기도 했다. 그게 다섯 살 적이었다. 끼 많고, 패기 넘치던 초등학교 시절은 자신이 ‘노래를 좀 한다’는 걸 깨달은 시기였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이었어요. 그때 제가 양파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애송이의 사랑’이요. 너무 좋아서 정말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거든요. 그 때까지는 제가 노래를 잘 하는 줄 몰랐어요. 부모님도 그냥 좀 까부는 애로만 생각 하셨었고요. 수학여행 장기자랑에서 떠밀리듯이 나갔는데 그때 그 노래를 불렀어요. 그때 알았죠. 제가 ‘노래를 좀 한다’는 걸요.(웃음) 근데 너무 좋았어요.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게.”

일찍 적성을 찾았지만,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전혀 몰랐다. 그저 춤추는 게 좋고, 노래하는 게 좋았다. 덕분에 유흥 문화(?)도 일찍 깨우친 편이었다. 당시 유행했던 콜라텍도 자주 오갔고, 큰 키를 무기로 대학교 학생증을 위조해 나이트를 다니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 그의 키가 185cm이었으니 무리는 아니었다.

그가 결정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데에는 친구의 영향이 컸다. 고등학생 때부터 학교 축제 MC를 도맡고, 밴드부 보컬로도 활동했던 그를 한 친구가 유심히 본 것이었다.

“연극반이던 친구가 ‘너 연극해 볼 생각 없니?’라고 물었어요. 마치 ‘자네, 연기해볼 생각 없나’하는 것 처럼요.(웃음) 사실 그때 마땅히 꿈이란 게 없었어요. 그냥 노는 게 좋았던 거죠.  서울예대에 있는 개그클럽이 굉장히 유명하잖아요. 유명한 개그맨 선배님들도 많고요. 그런 곳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죠. 그때부터 친구가 다니는 연기학원에 다니면서 연기를 배웠어요.”

그가 처음 뮤지컬을 접한 것은 2003년,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뮤지컬 무대는 춤, 노래, 연기를 사랑했던 한 소년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그는 당시에 대해 “눈이 뒤집혔다”고 설명했다. “2003년에 서울예대에서 했던 뮤지컬 ‘페임’이었어요. 그때 뮤지컬이란 걸 알게 됐어요. 노래를 하면서 춤도 추고 연기를 할 수 있는 게 있었구나 싶었죠.” 그리고 우찬은 그 다음해 서울예술대학에 입학했다.

우찬은 대학 시절부터 유명했다. 넉살이 좋아 타과 사이에서도 유명했지만, 무엇보다 서울예대 개그클럽 회장을 맡으면서 학교 내의 유명인사가 됐다. 서울예대 개그클럽은 신동엽, 표인봉, 김진수, 정성화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인사들을 수없이 배출한 곳이다. 대학 시절 유명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하자 그의 입에선 “사실이다”라는 단호한 말이 흘러나왔다. 웃음기도 없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개그클럽 20주년 기념 공연을 시작한 게 저였어요. 타 동아리들은 선배님들을 모셔놓고 공연도 하고 망년회도 하는데 개그클럽만 그게 없었어요. 업적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동문회’를 하겠다고 했죠.(웃음) 연예인 선배님들을 알음알음 알아 연락을 드렸는데 표인봉, 전창걸, 김진수, 신동엽, 이휘재, 송은이, 정성화 등 유명한 선배님들이 정말 감사하게도 많이 자리를 해주셨어요.”

개그클럽 20주년 기념공연을 마친 후 그에게 기회가 왔다. 가수, 연기자, 개그맨을 양성하는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기회가 좋은 기회일 수만은 없듯이, 그의 기회에도 갖은 굴곡이 동반됐다.

“매니지먼트와 계약하면서 다양한 일을 했어요. 연극 공연도 하고, 개그 공연도 했어요. MBC ‘개그야’가 생길 때 들어가서 6개월 정도 방송일도 했었고, 리포터나 실험카메라 같은 일도 했었고요. 그런데 회사에서 개그 쪽 일을 많이 주시더라고요.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매니지먼트사에 제가 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고 말하고 나왔어요. 그리고 1년 반 넘게 방치가 됐었죠.”

1년 반이란 시간은 가혹했다. 매일매일 술을 마셨고, 거의 알콜중독 수준까지 이르렀다. 살도 95kg 이상 쪄서 체격만 자꾸자꾸 늘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수많은 방황을 했던 그는 2007년 뮤지컬 ‘동키쇼’를 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뮤지컬 ‘동키쇼’가 브로드웨이에서 굉장히 잘된 작품인데, 한국에서는 잘 안됐어요. 공연을 하자는 얘기를 듣고, ‘뭐라도 좀 하자’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그때 운동을 하고 몸을 만들어 무대에 섰죠. 춤만 추는 역할이었는데, 무대를 하다 보니까 ‘연기전공인데 내가 왜 춤만 추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뮤지컬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제대로 하게 됐어요. 이후 오디션을 봐서 ‘그리스’를 했고요. 근데 군대를 안 갔네? 세상에.(웃음) 2008년 11월에 군대를 다녀와서 쭉 작품을 한 게 여기까지 왔어요.”
 
이경욱이란 본명 대신 우찬이란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그는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에 대해 “밋밋해 보이는 이름 같더라”며 운을 뗐다. “개그맨 중에 김경욱이란 분이 있어서 헷갈려 하시더라고요. 철학관 가서 바꿨어요. 원래는 ‘유찬’이었는데, 이름이 같은 분이 있어서 ‘우찬’으로 하게 됐죠. 의미는 ‘우리들의 찬란한’이예요. ‘선작명, 후의미’랄까요? 저로 인해서 모두가 찬란한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그냥 갖다 붙인 거죠.(웃음)”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와 ‘위플래쉬’의 상관관계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는 2010년 뇌출혈로 사망한 1인 프로젝트그룹 달빛요정역전만루홈전(이진원)의 생애와 노래로 엮인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작품은 지난 1월 초연한 후 3개월 만에 다시 재공연 무대에 올랐다. 배우 우찬은 이 작품에서 ‘DJ 캐준’ 역을 맡았다.

“초연 때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를 할 뻔 했었어요. 초연 때는 공연 기간이 짧기도 했고, 더블캐스트로 가기가 애매한 상황이어서 이번 공연부터 함께하게 된 거죠. 그 소식을 듣고 좀 쉬려고 했는데, 그 사이에 뮤지컬 ‘난쟁이들’이 들어와서 하게 됐고요.”

그는 이번 작업을 통해 민복기 연출과 처음으로 함께했다. 민복기 연출은 연극 ‘달빛요정과 소녀’, ‘바람난 삼대’, ‘슬픈 연극’ 등을 연출한 극단 차이무의 대표다. 배우들 사이에선 영화 ‘위플래쉬’의 ‘플렛처’ 같은 인물로 통한다.

“정말 ‘위플래쉬’예요. 저도 울컥해서 눈물이 난 적 있어요. 혼나서 우는 게 아니라 뭔가 억울해서 나오는 눈물 있잖아요. 자존심을 일부러 긁지는 않으시는데, 배우들이 왜 내가 이러지? 왜 안되지? 하는 생각을 하게끔 해주세요. 생각해, 연구해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고요. ‘안녕하세요. DJ 캐준입니다’ 이 대사 한 줄로 세 시간을 해요!(웃음) 평소에는 굉장히 자유로우신데, 연습할 때는 정말 디테일하세요. 처음 갔을 땐 정말…. ‘민복기는 처음이지?’였어요.(웃음)”

그가 처음 대본을 보고 있을 때, 절친한 친구이자 함께 작품에 출연 중인 강홍석이 말을 건넸다. “대본 보지 마~ 나중엔 대본 안 보게 될 걸?” 우찬은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민복기 연출도 거들었다. “왜 대본대로 하려고 해? 대본 보지 마.” 연습실에 가보고서야 그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안녕하세요’ 대사 한 마디를 두고 ‘안녕하세요?/아니야/안녕하세요!/아니야~/안녕하세요~/아니야’ 식의 연습 진행이 이어졌다. 이제 대본만 펼쳐도 민복기 연출의 얼굴이 둥실둥실 떠오를 정도였다.

“이런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받았어요. 연애할 때나 느끼는 감정인데.(웃음) 배우를 자꾸 건드려 주세요. 개인적으로는 민복기 연출님을 만나서 제가 배우 생활을 하는 데 얻어가는 부분이 많았으면 해요. 물론 지금도 많이 얻었고요.”

우찬이 맡은 ‘DJ 캐준’은 유독 관객과 소통하는 장면이 많다. 그는 객석에 말을 걸기도 하고, 그들의 사연을 읽어주며, 무대 아래로 내려가 함께 뛰놀기도 한다. 이미 전작인 뮤지컬 ‘프리실라’, ‘난쟁이들’에서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여럿 맡았었지만, 우찬은 여전히 “어렵다”고 말했다.

“관객 반응을 이끌어 내는 건 정말 어려워요. 진짜 ‘날것’이거든요. 최근에 관객들과 함께하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이것도 사실 저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관객 호응은 그 날 그 날 달라요. 무대에 올라가서 관객들의 목소리만 들으면 그 날 공연이 어떨지 금방 알 수 있어요. 반응이 안 좋을 것 같으면 관객의 마음이 풀리게끔 노력을 해야 해요. 물론 안 열릴 때도 있지만.(웃음)”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는 분명 웃으며 즐기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살, 고달팠던 한 뮤지션의 삶, 절망을 위로로 바꾸는 음악의 힘 등이 녹아있다. 우찬은 “객석과의 소통이 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이진원이라는 뮤지션의 생애와 음악적 메시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관객이 그런 마음을 느끼고 돌아가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우찬이 생각하는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어느 순간 하나가 돼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상세한 이유를 되묻자 그는 “말로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라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옥상에서 모든 게 다 풀리는 순간이 있어요. 그때 주위를 둘러보면 관객과 배우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보이지 않는 서로 끈끈한 줄을 잡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게 느껴지지 않으면 이 작품은 완성될 수 없거든요. 저는 그게 이 작품의 매력인 것 같아요. 다 어딘가를 향해 가려는 사람들이잖아요. 결국엔 우리 모두 가야 하고요.”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는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이다. 추천해 주고 싶은 세대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 보면 좋겠지만”이란 웃음기 섞인 대답을 던졌다.

“20~40대가 좋을 것 같아요. 살아가는 데 지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DJ 캐준’이 직접 관객에게 받은 사연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어요. 연애, 취업, 사업, 인간관계 등 주제도 다양해요. 개인적으로는 그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에요. 말을 잘 해줘야 하잖아요. 저만의 스타일로 얘기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매번 무대 올라가기 직전에 직접 사연을 골라요. 사연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그때그때 진실되게 전하고 싶어서 미리 읽지는 않고요.”

우찬과 강홍석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에서 ‘달빛요정’을 맡은 강홍석과 ‘DJ 캐준’을 맡은 우찬은 대학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다. 정식 공연은 아니지만 가요제에 함께 나가 1등을 거머쥐기도 했다. 대학 때는 넉살 좋기로 유명한 듀엣이었다.

“홍석이는 노래 잘 부르기로 대학 때부터 유명했어요. 당시에 ‘SG워너비’가 엄청 인기였는데, 저희는 ‘SG와사비’라면서 매일 노래하고 다녔어요. 여기저기 많이 불려 다녔죠. 둘 다 넉살좋고 사람을 좋아해서 13개 학과에서 저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홍석이가 잘 잊히지 않는 비주얼이기도 하고요.(웃음) 둘이 죽이 잘 맞았어요.”

두 사람의 첫 인연은 수시 합격생들끼리 미리 만난 자리에서였다. 우찬이 문득 일반인 노래 대결 프로그램에 강홍석이 나온 것을 기억해낸 것이었다. 이후 자취방을 구하던 우찬은 강홍석의 제안으로 같은 집에서 살기도 했다.

“홍석이가 자취를 했고, 저는 집을 구하고 있었어요. 당시 안산에 있는 전셋집에 홍석이가 살았는데 자취 이야기를 꺼내니까 ‘우리 집에서 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럼 ‘공과금은 내가 다 낼게’하고 살았죠.(웃음) 제가 좀 깔끔한 편이어서 더러운 꼴을 못 봐요.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 널고 다 했죠. 홍석이가 술 먹고 들어와서 하나씩 벗으면 제가 뒤에서 하나씩 챙겨서 ‘씻고 자야지~ 씻고 자야지~’ 그러고.(웃음)”

이번 공연을 함께하게 된 소감을 묻자, 그의 입가에 스윽 미소가 번졌다. “신기할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첫 대답이었다. “둘이 같이 무대 위에 서 있는 게 신기할 것 같아요. 서로 공연하는 작품을 보러 간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같은 작품으로 같은 무대 위에 서 있는 건 처음이어서요. 좀 기대되고, 남다를 것 같아요.”

아직 젊은, 뭐든지 해야 하는 배우 우찬

우찬은 서른의 경계에 들어서면서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 나이가 하나 둘 늘고, 미래에 대한 생각도 점점 늘어나서다. 그는 한숨과 함께 “작년과 올해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고 생각해요”라며 싱긋 웃었다.

근래들어 그는 무대에 오르면 떨린다고 했다. 패기 넘치던 어린 시절엔 한 번도 안 떨어본 무대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조심스러워 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입버릇처럼 ‘아직 어리지만’을 붙이면서도, 자주 회한에 사로잡히는 듯 했다.

“편한 연기를 하고 싶어요. 보는 사람도 편하고, 하는 나 자신도 편했으면 해요. 객석에서 보는 사람이 불편하면 저도 불편하거든요. 제가 사실 되게 애매한 배우예요. 외려 아예 못생기면 매력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조각 같은 얼굴도 아니고, 키가 크고 훈훈한 듯한 매력이 있지만…. 뭔가 애매해요.(웃음) 그게 제 이미지인 것 같기도 해요. 뮤지컬 ‘난쟁이들’을 같이 했던 역산이 형이 그런 말을 했어요. ‘네가 무슨 이미지야. 사람들이 네 이미지를 어떻게 알아. 유명하지도 않은데. 이미지는 사람들이 만들어주는 거야. 걱정하지 마’ 하고요.(웃음) 맞는 말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누가 절 알겠어요. 일단은 열심히 해야죠. 연기관이라면 ‘열심히 잘하자’라고 하고 싶어요. 열심히 하는 사람도 많고, 잘하는 사람도 많은데 ‘열심히 잘하는 사람’은 많이 없는 것 같거든요.”

20대 시절 갖은 우여곡절을 겪은 탓인지, 그의 얼굴 어딘가는 초연해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성공에 대해서도 우찬은 가만한 말투로 “급하지 않다”고 말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예술계의 생리를 일찍 터득했기 때문인 듯 했다.

“어릴 때는 정말 조급했어요. 그 땐 제가 정말 잘될 줄 알았거든요. 살아보니 아니더라고요. 나아가는데도 순서가 있는데, 제 순서는 천천히 올 것 같아요.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잖아요. 정말 아닌 것 같은데 잘 되는 경우도 있고, 잘 될 것 같은데 안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전혀 조급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대신에 안주해선 안 되겠죠.”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 해보고 싶은 배역을 물었다. 우찬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뮤지컬 ‘헤드윅’을 정말 해보고 싶었어요”라고 운을 뗐다. 이어 돌아온 대답은 약간의 반전이 섞여 있었다.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그냥 다 해보고 싶어요. 계절이 바뀌면 옷을 바꿔 입듯이, 배역에 맞춰 옷을 갈아입을 줄 아는 배우이고 싶어요. 흔히들 ‘배우하는 맛’하면 그때그때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거라고들 하잖아요. 다 해보고 싶어요. 따질 여력이 없어요. 다 해야죠.(웃음)”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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