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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정반대인 인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소리꾼 이승희․김소진 인터뷰‘추물’과 ‘살인’으로 관객 만난 이승희, 김소진의 판소리 이야기

판소리 단편선 ‘추물’과 ‘살인’이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11월 20일부터 11월 23일까지 공연됐다. 작품은 소설가 주요섭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하층민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호평받았다. 판소리 단편선 ‘추물’과 ‘살인’은 원작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풀어나간다. 첫 번째 이야기인 ‘살인’은 온갖 남자들을 손님으로 맞이하던 창부 ‘우뽀’가 사랑에 눈을 뜨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추물’은 못생기게 태어나 불행한 ‘언년이’의 한 많은 삶을 이야기한다. 이번 공연은 ‘판소리만들기 자’가 창작했다. ‘판소리만들기 자’는 소리꾼 이자람을 필두로 만들어진 판소리 창작 단체다. ‘판소리만들기 자’의 단원인 김소진, 이승희 소리꾼은 각각 ‘추물’과 ‘살인’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이번 무대에 올랐다.


이승희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제18회 목포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에서 대상을 받으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소리꾼으로서 다양한 무대에 오르며 ‘판소리만들기 자’의 단원이 됐다. 김소진 역시 실력을 인정받은 수재다. 그는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고 ‘제13회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 장원과 ‘제26회 동아국악콩쿠르’에서 판소리 일반부 금상을 받았다. ‘강산제 심청가’와 ‘강산제 수궁가’를 완창한 그녀는 현재 ‘판소리만들기 자’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승희와 김소진은 상기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연습을 마친 두 사람에게선 응어리진 마음을 토해내던 ‘언년이’와 ‘우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승희와 김소진은 말주변이 없다며 운을 뗐다. 한복 대신 편안한 옷을 입은 그들은 영락없는 20대였다. 무대 밖, 노련한 소리꾼의 옷을 잠시 벗어둔 김소진, 이승희와 함께 판소리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국악을 시작한 동기가 있나?

이승희 : 전라북도 고창이 고향이다. 당시 고향에 국악 관련 시설이 많았다. 어린 시절 고창에서는 국악을 배우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있었다. 어머니가 국악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친구들과 함께 국악당에 모여서 국악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국악에 발을 들여놓았다. 어머니가 악기를 배우던 나를 보고 ‘노래도 시켜봐야지’ 했던 것이 지금의 내가 됐다.

김소진 : 독특한 계기로 소리를 시작했다. 어릴 때 ‘예쁜 어린이 대회’에서 예쁜 어린이를 수상했었다. 당시 ‘예쁜 어린이’로 선발되면 퍼레이드에 참여해야 했다. 퍼레이드 도중 광주 MBC PD분이 나를 따라왔다. PD분이 ‘얼씨구 학당’이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계셨다. ‘얼씨구 학당’은 아이들이 국악을 배우는 형식이었다. PD님이 우연히 나를 보고 출연을 제의했다. 프로그램 출연이 국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소리꾼이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

이승희 : 처음에는 선생님이 혼내니까 열심히 소리를 연습했다. 어느 시기가 넘어가면서 목청이 뚫리고 실력이 늘어가더라. 그때부터 소리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모든 일에 실증을 느꼈다. 국악은 달랐다. 하면 할수록 소리가 재밌었다. 재미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소리꾼의 길을 걷게 됐다.

김소진 : 시작할 때부터 실력이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첫 대회를 나갔는데 1등을 차지했다. 다음 대회에도 1등을 받았다. 당연히 소리꾼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도 소리 때문이었다. 판소리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오로지 목표가 판소리였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소리꾼이라 평가하나?

이승희 : 얼마 전 지인에게 ‘네 소리는 검은 산 같다’라는 평을 들었다. 무대 위에 서 있는 내 모습이 크면서도 어딘가 어둡다는 의미였다. 아직 자세한 의미는 모르겠다. 많은 분이 이 말에 동의하더라. 무대 위 나를 보고 어떤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점에 감사하다. 더 많은 수식어를 떠올릴 수 있는 소리꾼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김소진 : 성격이 직설적이고 통통 튄다. 성격이 소리에도 묻어나는 것 같다. 승희 언니처럼 특별한 정의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성격처럼 직설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특별한 색깔이 있기보단 나다운 소리를 내고 있다.

 

-두 작품은 같은 듯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리꾼으로서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이승희 : ‘살인’ 속 주인공을 연습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작품은 최하위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뽀’는 창부이자 여성이다. ‘우뽀’를 연기하면서 많은 감정이 뒤섞였다. 그녀가 불쌍하게 느껴지다가도 독하게 느껴졌다. 본 공연에 오르면서 ‘우뽀’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우뽀’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인물이다. 좌절할만한 상황에도 그녀는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인생을 다짐한다. 그녀를 연기하면서 용기를 얻게 됐다. 내가 느낀 용기를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다.

김소진 : ‘추물’의 주인공은 못생긴 여성이다. 작품 안에서는 그저 못생긴 인물로 표상되지만, 현실 속 ‘언년이’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누군가다. ‘언년이’는 부족한 모두를 대표한다. 작품을 통해 ‘모두에게 시련은 다가오고 시련은 견뎌지기 마련이다’라는 위로를 건네고 싶다.

-이번 공연에 있어 자신이 생각하는 명장면, 명대사가 있나?

이승희 : ‘우뽀’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장면은 뒤에 일어날 사건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동시에 ‘우뽀’라는 인물이 벌이는 사건에 대한 동기가 되는 장면이다. ‘우뽀’의 결심을 수긍하도록 만드는 대목이다. 이 대사가 가장 마음을 울린다.

김소진 : ‘언년이’가 자신과 닮은 딸을 죽이려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 자식을 죽이려는 ‘언년이’의 감정을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이 장면은 ‘언년이’의 지난 세월을 가장 잘 담고 있어 마음에 남는다. ‘추물’ 속 명대사는 ‘언년이’가 팔자를 고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에 있다. ‘언년이’ 대사 중 ‘떠들썩 북적거리는 그 사람들 속에 조용히 묻혀 살면 이 거칠어진 마음도 조금 나아지겠지요. 지긋지긋한 시집살이 죄진 듯 살던 고향살이 이제 그만하고 서울로 올라가서 팔자를 고티겠수다’라는 부분이 있다. 이 대사에는 ‘언년이’가 받아온 핍박과 고난이 묻어난다. 곱씹을수록 상념에 잠기게 만드는 대사다.

-작품의 시대 배경이 지금과 약간 동떨어져 있다. 지금의 사람들에게 작품이 건네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승희 : ‘우뽀’는 그동안 자신을 억압하고 착취했던 존재에 대해 깨닫는 인물이다. ‘우뽀’는 자신을 방해하는 누군가를 처단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우뽀’는 현실의 부조리에 부딪힌 누군가를 의미한다. 관객들이 ‘살인’을 통해서 ‘우뽀’와 자신의 공통점을 찾고 미래로 나아가길 바란다.

김소진 : 작품에 나타나는 ‘언년이’는 추물 중에서도 추물이다. 못생긴 얼굴로 인해 세상의 괄시를 받으며 살아간다. ‘언년이’는 단순히 못생긴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무시 받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대표한다. 우리네 이야기이기 때문에 ‘언년이’가 관객의 마음에 남는 것 같다.

-각자 맡은 인물과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닮은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

이승희 : ‘우뽀’를 연기하면서 나는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련을 무서워한다. 작품 속 ‘우뽀’는 나와 정반대의 인물이다. 삶의 소용돌이를 스스로 헤쳐나가려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나와는 다르게 대담한 ‘우뽀’를 연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우뽀’와 닮은 점이 하나도 없었기에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김소진 : 나와 ‘언년이’는 다른 점이 더 많다. 나는 시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시련에 맞서기보단 뒤로 물러나거나 피해버린다. ‘언년이’는 시련을 넘어서려는 용감한 인물이다. 갖은 상처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연습을 거듭하면서 예술감독님과 연출님께 ‘언년이는 나보다 낫네요. 참 용감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한마디가 실제로 작품에도 삽입됐다. 감독님과 연출님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함께 작업하고 있는 이자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승희 : 이자람 감독님은 나에게 연출이자 선배다. 두 가지 위치에 서 있다 보니 배우는 점이 많다. 감독님 밑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은 경험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경험은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이자람 감독님은 자신의 경험을 나눠주는 사람이다. 참 감사하다.

김소진 : 이자람 감독님은 많은 명성을 쌓은 분이다. 이자람 감독님은 원래 유명인이기 때문에 수월한 길을 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다양한 작업에 참여한다. 이자람 감독님의 작업으로 인해 소리꾼이 오를 수 있는 무대가 넓어지고 있다. ‘소리’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신념 같다.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자부심이 있기 마련이다. 이자람 감독님은 혼자만의 자부심이 없다. 계속해서 무대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정말 대단한 선배다.

-연출가도 작품에 참여했다 들었다. 박지혜 연출가는 어떤 사람인가?

이승희 : 소리꾼으로 활동하면서 연출가와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지금까지 만난 연출가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었다. 이번에 함께하는 박지혜 연출님도 마찬가지다. 연출님은 무대 위 인물에 대해 꼼꼼하게 분석한다. 인물을 살릴 수 있는 작은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 연출님의 꼼꼼함은 감독님의 능력과 맞물린다. 두 사람의 호흡 덕에 좋은 작품이 만들어진 것 같다.

김소진 : 이전에는 가사 마디마디에 집중하는 편이 아니었다. 가사 전달보다는 기교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이번에 박지혜 연출님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어떻게 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가사가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판소리 속에서 연극적 요소를 찾아내는 박지혜 연출님 덕분에 진정성 있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어떤 소리꾼으로 남고 싶나?

이승희 :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미래에 내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다. 또 앞으로 어떤 소리꾼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무대에 오르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수련과 경험과 연륜이 빛을 만들어낸다. 앞으로 더 많은 무대에서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다 보면 관객들에게 특별한 소리꾼이 되어있지 않을까 한다.

김소진 : 작지만 알찬 소리꾼으로 남고 싶다. 키가 작은 편이라 처음엔 그저 키 작은 소리꾼으로 보일 것이다. 나의 소리를 듣고 관객들이 나를 큰 소리꾼이라 느끼길 바란다. 또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소리꾼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 두 가지만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박은진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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