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은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고고학자였던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여행답사식의 소설로 출발했다. 그동안 오페라,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매체로 거듭나며 전 세계 모든 창작자들에게 늘 새로운 도전으로 꿈꾸게 했다. ‘카르멘’은 원작의 정서에 새로운 상상과 창의로 거듭나게 하는 거침없는 정열과 자유의 의지로 충만한 마력의 인물이다.

‘카르멘’이라는 인물은 모든 매체의 작품에서도 한결같이 스페인 특유의 뜨거운 정열과 플라밍고의 화려한 유혹을 펼친다. 또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과 사랑과 애증이 넘치며 들끓는 자유로운 에너지는 여과 없이 모든 작품 속에서 드러난다.

이번 뮤지컬 ‘카르멘’에서는 기존의 ‘카르멘’ 하면 떠오르고 기대하는 상식적인 선입견에 사랑과 욕망이 꿈틀대는 서커스장이라는 새로운 시공간으로 이동했다. 한국에 소개된 기존 유럽풍의 여느 뮤지컬 작품과는 또 다른 체코의 서커스와 대형 마리오네트, 거기에 매직이 어우러지며 동유럽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무대로 서울 관객과 만나게 되었다.

뮤지컬 ‘카르멘’은 한국에서 너무도 익숙하고 유명해진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작사가 잭 머피, 작가 노먼 알렌 등의 오랜 콤비에 의해 체코에서 제작한 라이선스 뮤지컬이다. 사랑과 열정의 화신 ‘카르멘’과 사랑의 운명에 목숨을 건 경찰 ‘호세’, 사랑을 소유하고 독점하기 위해 목숨을 건 ‘가르시아’, 순정의 사랑을 지키려는 ‘카타리나’, 그리고 서커스 시장을 중심으로 한다. 한 도시의 여러 군상들이 서로 얽히는 이해관계를 통해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에서의 인생과 사랑의 비극적 판타지를 그려내고 있다.

‘카르멘’이 서커스 단원으로 설정되어 자연스럽게 유러피안 서커스장 특유의 아슴푸레하고 검붉은 환경과 정서가 물씬 묻어났다. 섹시한 플라밍고를 비롯한 크라운 광대의 서커스, 다양한 기구를 이용한 순간 매직, 아크로바틱, 공중 실크액트 등을 현란하게 선보였다.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몽환적인 색감과 형상으로 거칠고 격한 에너지의 무대를 채웠다.

하지만 너무 많은 환경을 나열식으로 보여주려 해서 서커스 단원으로서의 카르멘의 캐릭터는 오히려 부각되지 않았다. 더욱이 무대 연결이 매끄럽지 않고 더러 산만하고 와이드하게 펼쳐져만 있어서 상징과 압축미에서 느껴지는 무대와 연극적 세련미가 조금은 아쉬워 보였다. 다양한 세트의 변화에 적합한 조명의 연결과 흐름이 가끔 서로 합을 이루지 못해 전반전인 무대 미장센의 조합이 썩 잘 어우러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큰 기대를 했던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 또한 착 달라붙는 아리아가 없고 조성에서도 잦은 반음이나 불협화음이 있었다. 드라마의 정서와 어우러지거나 리드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기존의 몇 작품을 연상시키는 멜로디와 리듬의 변주만 각인되었다. 안무에서도 음악적 리듬이나 극적인 정서가 몸에 체화되기 전에 동작의 연결만 병렬식으로 배치되었다. 음악을 타거나 전체적으로 합을 이루어 내는 조절이 잘 이루어지질 않았다. 애를 쓰고 열심히는 하는 데 비해 그다지 효과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가끔 에너지가 분산되고 펼쳐져 있어 산만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작품은 주·조역 배우들의 열연으로 작품에서 보여주려 했던 ‘카르멘’을 비롯한 주변인들의 삶에 대한 강한 에너지가 돋보였다. 누군가를 소유하려는 사랑과 애증의 집착,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반응하듯 진정한 사랑에 눈뜬 캐릭터들의 몸을 사리지 않은 열연과 때로는 서커스걸들의 매혹적인 자태의 섹시한 유혹도 볼만했다.

관습적인 일상에서 벗어남으로써 비로소 깨우치게 되는 진정한 사랑의 감각, 거기에 모험과 도전으로 외줄타기 인생 같은 스릴 있고 위험한 경계를 넘나드는 통속적인 부류인 인간들의 태생적인 습성도 엿보였다. 또한 끊임없이 부딪히고 깨어지고, 끌어당기며 어느 순간 처참하게 내동댕이치거나 밀어붙이는 운명의 동아줄 같은 인생의 희로애락에 젖어들어 거부할 수 없는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애잔하고 허망한 사랑의 상흔이 고스란히 무대에 담겨 있었다.

특히 타이틀 롤을 맡은 바다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과 열정, 몸을 사리지 않고 종횡무진 뛰고 또 뛰는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에너지를 선보였다. 치밀하게 계산된 감정의 적합한 완급조절로 발현된 화려한 가창과 섬세한 연기와 표정까지, 그녀는 가요계의 요정과 디바에서 어느새 뮤지컬에서 귀하고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 그 자체로 이미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작품은 2013년 12월 6일부터 2014년 2월 23일까지 LG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유희성 he2sung@hanmail.net

사진_오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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