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공연장에 스탠딩석을 마련한다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100분, 많으면 세 시간을 넘나드는 러닝타임에 지치지 않는 관객을 손에 꼽을 것이다. 물론 스탠딩석의 유무는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쇼 뮤지컬, 브로드웨이 박스오피스 1~2위를 다투는 대작들에는 그리 나쁘지 않은 마케팅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논의가 메이저급 공연 제작사들 사이에서 없었을 리는 없다. ‘공연’이라면 도가 튼 이들이라 ‘스탠딩 뮤지컬’의 대중화를 꾀하지 않는 배경에는 타당한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번 더 미련을 가져보는 이유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뮤지컬 ‘맘마미아!’ 오리지널 팀의 호기로움 때문이다.

참 정말 진짜 제대로 정통 ‘오리지널’이다

왕년에 잘 나가던 그룹 ‘다이나모스’의 리드싱어였던 ‘도나’는 지중해 근처에서 작은 모텔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도나’에겐 결혼을 앞둔 스무 살 딸아이 ‘소피’가 있다. 싱글맘 가족인 ‘도나’ 모녀는 남편이나 아버지 없이도 긴 세월을 밝고 꿋꿋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소피’는 가슴 한편에 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다. ‘소피’는 결혼식을 앞두고 자신의 결혼식에 아버지로 유력한 세 명의 남성을 초대하고, 이런저런 해프닝이 벌어지는 가운데 ‘진짜 아빠 찾기 대작전’도 점점 난관에 봉착한다.

뮤지컬 ‘맘마미아!’의 드라마와 음악은 마치 서로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완벽한 하모니를 선사한다. 작가가 쓰고 배우들이 완성한 꾸밈없는 캐릭터와 대사는 하나도 빠짐없이 작품에 녹아들어 빈틈없는 무대를 만든다. 세기의 팝스타 ABBA의 명곡에 담긴 진실한 가사와 멜로디는 한 음, 한 박자 흘릴 것 없이 감동의 전율을 이끌어낸다.

엄마도, 딸도 ‘진짜 아버지’를 모른다는 설정은 기실 한국 관객에게는 파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소재만 떠올리면 ‘막장’에 가까운 이 작품이 한국 공연 역사상 최단기간 1,200회 공연과 15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뮤지컬 ‘맘마미아!’는 대외적으로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직 희극에서 나올 수 있는 센스와 위트로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는다. 웃음이야말로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만인에게 ‘통’하는 극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맘마미아!’ 오리지널 팀은 의상, 액션, 음악 등 모든 면에서 번안 공연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역량을 발휘한다. 영미권의 복고풍 의상은 제 주인을 찾은 듯 배우들의 체형에 안성맞춤이다. 동서양의 배우가 무대 위에서 몸을 쓰는 방법이 다르다는 점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귀에 익숙한 뮤직넘버는 원어의 감동과 뉘앙스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 굳이 자막을 보지 않아도 생생한 속뜻이 전해져 온다.

‘전설의 레전드’ ABBA에 대한 예의는 OK,
관객에 대한 예의는 글쎄?

ABBA의 히트곡 22개는 뮤지컬 ‘맘마미아!’의 드라마에 맞게 새 옷을 입는다.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I Have a Dream’은 신시사이저의 패드 사운드를 활용해 극장을 감싼다. 뮤지컬 ‘맘마미아!’의 타이틀 넘버라고 할 수 있는 ‘Dancing Queen’은 톤이 밝고 청아한 그랜드 피아노의 볼륨을 한껏 높여 극의 분위기를 최고조로 이끌어낸다. 이 밖에도 적재적소에 신시사이저의 모듈레이션(연주 중 자유자재로 피치를 조정할 수 있는 기능)에 변화를 주며 결코 지루하지 않은 160분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마스터볼륨(전체 음량)을 과감히 올린 덕분에 각 악기의 공간감이 살아나 콘서트 못지않은 음장을 뽑아낸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하는 무대는 단 2개의 회전식 세트가 움직이며 시원하고 탁 트인 공간을 연출한다. 앙상블 신이 많고 배우들의 움직임이 큰 작품인 만큼 균형감을 고려한 무대디자인이다. 마린(Marine) 톤의 조명은 백색의 세트와 어우러져 마치 그리스 연안에서 휴양을 즐기며 공연을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드라마, 음악, 무대 등 흠 잡을 데 없는 뮤지컬 ‘맘마미아!’지만 오리지널 팀의 노고를 가리는 안타까운 순간이 있다. 인터미션 중 MD상품 판매자가 극장 안에 들어와 판촉행위를 한다는 점이다. 극장은 신성한 공간이다. 공연장 측에서 관객의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는 것도 원론적으로는 이러한 이유에서다. 인터미션을 단순히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 시간은 앞으로의 공연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프로그램 북을 살피거나 지나간 장면을 곱씹고 토론하는 ‘마음의 휴식 시간’이기도 하다. 누구의 주문이었든, 한국에서 손에 꼽는 공연장(제작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노오란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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