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수 안무가는 데뷔한 지 25년이 넘는 베테랑 안무가다. 지난 시간 동안 스스로 인정할 만한 작품(봄의 제전)도 만들었고, ‘볼레로’라는 작품으로 무용계 아카데미상 격인 ‘브누아 드 라 당스’ 작품상 후보에 올라 실력도 인정받았다. 그런 그가 국립발레단 창단 50주년 기념작 ‘포이즈’의 안무가로 돌아왔다.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을 믿는다”

‘포이즈’ 공연을 2주 앞둔 시점에 만난 안성수의 얼굴은 부담감이 서려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편안해 보였다.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뿌듯하죠. 작품을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어요”라고 답한다. 묵직하면서 여유 있는 대답이 전장 한가운데에 선 ‘덕장’을 보는 듯 믿음직스럽다.

안성수가 처음 국립발레단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8년 최태지 단장이 안무한 창작발레 ‘바리’의 조안무를 맡으면서다. 이후 그는 ‘초현’이라는 작품으로 스타무용수인 김지영, 김주원의 듀엣 안무를 만들었고, 그의 대표작인 ‘볼레로’에서도 군무로 함께했다. 2011년에는 국립발레단의 모던발레 ‘컨버댄스’에서 ‘스윙타임’으로 함께 작업했다.

‘대형 작품을 맡게 됐지만 부담감은 없다’는 그의 자신감은 오래전부터 보아온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오래전부터 국립발레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의 무용수들을 잘 알아요. 그런 무용수들과 함께 국립발레단 50주년 기념작을 만드는 것은 정말 뿌듯한 일이죠. 원래 국립발레단은 클래식한 발레를 많이 올리는 단체잖아요. 그래서 저와 맞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어요. 지금은 소통도 원활하고, 무용수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어서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이번 공연에서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 역시 ‘무용수’다. 그는 “매 작품마다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늘 무용수였어요. 이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무용수들을 어떻게 하면 무대에서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포이즈’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김지영, 김주원 무용수도 나오고 새롭게 만난 친구들도 있어요. 그들을 모두 잘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작품을 만들 때 영감을 얻은 무용수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단번에 “김지영, 김주원 씨요”라고 답한다. “그 두 무용수만을 위해서 만든 섹션이 2막에 있어요. 김지영 씨는 음악적 타이밍과 라인이 정확해요. 예전에 파리 국제무용콩쿨 듀엣 부문에서 김용걸 씨와 ‘돈키호테’ 파드되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1위를 했었는데 외국 무용수보다 훨씬 날카롭고 정확하게 하더라고요. 이번 공연에서는 쇼스타코비치 재즈모음곡 1번 중에 두 번째 음악을 김지영 씨에게 영감을 받아서 만들었어요. 김주원 씨는 ‘지젤’을 하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았어요. 캐릭터에 빠져드는 모습이 거짓이 없었고, 그 캐릭터가 마치 본인인 것처럼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재즈모음곡 1번 첫 번째 곡을 김주원 씨가 연기하는 ‘지젤’을 생각하면서 만들게 됐죠”

“좋은 안무란 욕심을 부리지 않아서 관객을 괴롭히지 않는 것”

안성수는 이번 ‘포이즈’ 공연에서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와 함께 작업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약 16년 동안 이어져 왔다. 약 13편 정도의 작품을 함께했지만 “서로 할 줄 아는 것만 하기에” 마찰이나 트러블도 없었다. ‘영감’을 통해 작업하는 예술가적인 마인드도 비슷하다.

“이 작품의 제안이 있기 전에 정구호 선생님께서 저를 2011년 서울 콜렉션에 초청을 하셨어요. 오랜 시간 알고 지냈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러시아의 색, 훈장에 영감을 받아 표현한 것이었는데 오랫동안 머릿속에 잔영이 남았어요. 처음 제안을 받고 정구호 선생님께 전화했어요. 서울콜렉션에서 선보였던 정구호 선생님이 주신 영감이 굉장히 좋았는데, 그런 느낌으로 이번 작품을 같이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요”

작품의 제목도 정구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 탄생됐다. 그는 “제목은 연출가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한 거예요. 세상의 모든 것에는 균형이 있잖아요. 균형이 깨지면 혼돈이 오고요.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자는 의미였죠. 하지만 작품에서 동작이 균형을 이루거나 하는 장면은 거의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쇼스타코비치와 바흐의 음악을 사용한다. 안무는 “음악을 움직임으로 푸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온 그는 가장 먼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먼저 찾았다.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혁명’과 동시대를 살아간 러시아의 작곡가다. 세상의 균형이 깨져 발생하게 된 ‘혁명’과 정구호가 그에게 던진 러시아에 대한 영감에도 잘 맞아떨어지는 선택이다.

그는 “바흐의 음악은 쇼스타코비치가 살았던 러시아혁명 시기의 음악과 달리 안정된 상태에서 음악의 집성을 이뤘어요. 그래서 두 음악을 함께 사용하기로 했죠. 바흐의 음악은 세트의 전환이나 안정감을 주기 위해 등장하게 될 예정이에요”라고 말했다.

‘포이즈’는 회전 무대에서 이뤄진다. 주로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에서 활용되는 장치인 만큼 무용 작품에서 어떻게 활용이 될 것인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다. 그는 회전 무대에 대해 “‘포이즈’를 공연하게 될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의 회전 무대는 너무 빨라서 따로 제작하고 있어요. 실제로 어떻게 구현될지는 무대에서 한번 해봐야 될 것 같아요”

안성수에게 이번 작품에 기대하는 묻자 “전에 한 기자분이 명작을 만들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셨어요. 저는 제가 생각하기에 명작을 한 번 만들어 본 적이 있어요. ‘봄의 제전’이라는 작품이요. ‘포이즈’도 제가 생각하고 있는 두 개의 명작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다. 질문에 답하는 그의 말은 차분했지만 확신과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확신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무용수를 믿고 있기 때문이에요. 연습하고 있는데 정말 잘 따라오고 있고, 정말 잘해요”라고 답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좋은 안무’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안무란 욕심을 부리지 않아서 관객을 괴롭히지 않는 안무입니다.(웃음)”고 말했다. “안무자들이 욕심을 부리면 한풀이 밖에 될 게 없어요. 안무자는 관객의 입장에서 편집을 해야 하고, 확실히 결정해줘야 해요. 내가 보여줘야 할 것과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 것을요. 이 작품에서는 보여줘야 할 것만 보여 드릴 거예요. 군더더기 없이요”라고 말했다.

안무가 안성수가 참여하는 국립발레단 창단 50주년 기념작 ‘포이즈’는 6월 29일(금)부터 7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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