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시험을 자신 없게 보고 난 뒤 실기시험을 보았다. 실기시험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주어진 대사를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즉흥연기였는데, 세 가지 중에 하나를 골라서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벤치에 앉아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치과에서 치통을 호소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선물로 받은 상자를 열어보는데 계속 상자가 나오다가 마지막 상자 속에서 개구리가 나온다는 상황이었다.

나는 첫 번째를 선택했다. 즉흥연기를 통해서 과연 심사위원이 수험생들의 무엇을 볼 것인가를 생각했다. 내 나름대로는 수험생의 상상력과 창의성, 그리고 표현력을 볼 것이라는 생각으로 주제에 대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비둘기는 무엇을 연상시킬까? 아! 평화 그리고 시청 앞 광장, 그리고 이태리의 나보나 광장의 트레비 분수대. 그래 나는 현재 정년퇴임한 음대 성악과 교수인데 남산에 아침 운동을 와서 휴식을 취하려고 벤치에 앉아 있는데, 비둘기 한 마리가 내 앞에 앉아있다. 옛날 이탈리아 유학시절에 나보나 광장에서 햄버거를 먹으면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던 시절을 회상하며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자’ 라는 설정을 하기로 했다.

주어진 대사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교수님들의 반응이 좋다라고 느꼈다. 즉흥연기를 발표하는 순서에서는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가 설정했던 것을 다 대사 없는 마임으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설정들을 말없는 마임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할 수없이 교수님들에게 표현하기 전에 잠깐만이라도 설명을 드리면 되지 않겠냐고 말씀드렸지만 통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사정을 했지만 주어진 시간이 오버되었기 때문에 시험장에서 쫓겨나올 수밖에 없었다. 막 퇴장당하는 순간, 가운데 계신 여교수님께서 짤막하게 설명을 하고 표현을 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나름대로 설명을 드린 뒤에 실기시험을 치렀다.

며칠 후, 면접시험장에 들어갔다. 교수님이 두 분 계셨는데, 그 전 실기시험장에 계셨던 두 분이었다. 수험번호를 힘차게 외쳤다.

 “아! 이태리 비둘기구만.”

남자 교수님께서 웃으면서 나를 기억해 주셨다. 나는 용기가 생겼다. ‘그 많은 학생 중에 나를 기억하시는구나.’ 교수님은 나의 자료들을 보시더니,
 

 “필기시험 성적이 왜 이 모양이야?”

나는 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예, 재수하면서 등록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합격시켜주신다면 열심히 해서 장학금도 받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만약 합격한다면 어떤 자세로 학교생활에 임하겠나?”
 “무대에서 살고 무대에서 죽겠습니다.”
 “저 친구, 안되겠구만. 자네가 무대에서 죽으면 우리가 장례를 치러줘야 하잖아?”
 “네?” 
자신감과 희망이 내 가슴에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교수님께서 농담을 하신 것이다.

 “특기가 뭔가?” 
 “네, 성악입니다.” 
교수님께서 노래를 해보라고 하셔서 있는 힘을 다해 ‘선구자’를 불러 제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