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랑해서 슬픈’ 남자가 있다. 주먹다짐도 남에게 뒤지지 않고, 잘생긴 얼굴로 수많은 여학생을 울렸지만 정작 사랑을 느끼는 여자는 자신의 친누나 ‘한경’이다. 이 슬픈 늑대는 어째서 자신의 누나를 사랑하게 됐을까.

뮤지컬 ‘늑대의 유혹’ 속 ‘정태성’은 2004년 제작된 영화 ‘늑대의 유혹’에서 강동원이 맡았던 역할이다. 강동원의 ‘태성’은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우수에 젖은 눈망울로 수많은 여성의 가슴을 두방망이질하게 만들었다.

말 못할 사연으로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태성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조직 생활을 한다. 누나를 찾게 되면 이 생활을 접고 새로 시작하겠다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말이다. 태성은 수려한 외모와 거친 주먹이 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

우연찮은 기회로 태성은 누나 한경을 만나게 된다. 그는 한경에게 자신이 친동생임을 숨긴 채 다가간다. 너무나 어렵게 만난 누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조직 생활로 타락해 버린 자신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두려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제 누나를 지켜줄 수 있겠다고 생각한 순간 한경의 곁에는 이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도 인생 최대의 라이벌이라 꼽는 ‘반해원’이다. 누나를 만나 지켜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태성에게 라이벌의 등장은 당혹스럽다. 특히, 그 라이벌이 어렸을 적 친한 사이였다가 배신감에 멀어진 사람이니 더욱 그렇다.

태성은 해원으로부터 누나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누나를 향한 그의 ‘진심’이 묘한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태성이 한경을 ‘여자’로 느끼게 된 것이다. 태성은 친누나를 사랑하게 됐다는 죄책감과 한경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태성이 한경을 여자로 느끼게 된 것은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자신의 보호 아래 있던 여자가 다른 남자의 보호를 받고 있을 때 느끼는 그 이상야릇한 ‘남자의 질투’ 말이다.

태성은 특별해 보인다. 우수에 찬 눈과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입매가 여성의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하지만 태성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소년이다. 뮤지컬 ‘늑대의 유혹’에서 정태성 역을 맡고 있는 배우 성두섭은 “정태성은 학생이다. 이를 소화하기 위해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학창시절의 ‘성두섭’도 ‘정태성’이란 인물이 가진 부분과 비슷한 면이 있다. ‘정태성’은 잘생기고 싸움도 잘하지만 슬픔이 있는 인물이다. 극 속에서 ‘정태성’이 어떻게 자랐고,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 성두섭이 말했듯 태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10대 소년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빼앗긴 소년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해 본다면 한경에게 더욱더 집착하게 되는 태성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태성은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을 때, 여자이자 누나였던 한경을 포기한다. 그리고 “누나, 이 다음에 태어나면, 내 누나 하지 마라. 나보다 나이 많은 아줌마라도 좋고, 얼굴이 아주 못생겨도 좋으니까 다음에 태어나면 내 누나만 하지 마라”고 말한다. 태성의 말에는 10대 소년의 허세와 풋풋함이 담겨 있다. 그래서 더 짠하고 사랑스럽다.

뮤지컬 ‘늑대의 유혹’은 영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 강동원의 태성과는 전혀 다른 매력의 뮤지컬 속 태성인 ‘성두섭, 려욱, 장현덕’의 활약도 기대를 모은다.

뮤지컬 ‘늑대의 유혹’은 10월 30일까지 코엑스아티움 현대아트홀에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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