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도자기처럼 깨지기 쉽다. 한 번의 실망과 오해는 서로를 멀어지게 만들어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작품은 삶에 다쳐 ‘믿음’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치유기다. 이 공연은 제목 그대로 ‘한 남자가 예수와 함께 보낸 저녁식사’에 대해 보여준다. ‘남궁선’은 보낸 사람 이름조차 없는 초대장을 받고 호기심에 약속 장소에 나간다. 그는 약속 장소에서 스스로를 ‘예수’라 칭하는 이상한 남자를 만난다. 남궁선은 신을 믿지 않는 남자다. 일에 치여 살고, 그 때문에 불만이 가득한 부인은 늘 툴툴댄다. 대화는 단절됐고, 아내와의 사이에서 더 이상 사랑과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성향을 띤 영화나 공연을 보는 것은 꽤 난감한 일이다. 그것은 야구 경기장에서 상대편 펜스 쪽에 앉아 불편하게 경기를 관람하는 것과 비슷하다. 연극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는 기독교적이지만 한편으로 상당히 비기독교적인, 묘한 뉘앙스의 작품이다. 연극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는 단순히 종교에 대한 담론만을 설교하는 작품은 아니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가 느껴진다. 이 작품은 ‘왜 우리는 서로 믿지 못했을까’에 대해 환기시키며 ‘믿음’을 잃은 우리에게 주변을 한번 돌아보라고 권유한다. 

극중 남궁선은 비기독교인의 성향을 그대로 옮겨놓은 캐릭터다. 이 작품은 비기독교인들이 품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과 궁금증을 거침없이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남궁선은 예수의 말에 끊임없이 반박한다. 믿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그에게 예수는 궁금증에 대해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답변한다. 이 작품은 텍스트 내에 기독교와 비기독교의 경계를 두지 않는다. 기존 기독교의 문제점을 남궁선의 눈으로 신랄하게 비추면서 예수의 눈으로 하나님의 진심을 설득하고 있다. 마치 자신의 야구팀이 반칙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상대의 비난을 받아들여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설득하는 것처럼 말이다.

연극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는 그런 면에서 비기독교인에게 덜 거북한 작품이다. 비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조금 덜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결론은 ‘오, 하나님!’으로 끝을 맺는다. 남궁선의 질문에 논리적으로 관객을 설득해 가던 예수의 답변은 어느새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으로 통일된다. 이 대목은 제대로 씻어내지 못한 땀의 온도처럼 미적지근하다.  

‘예수’와 ‘신’을 거부하는 남자 사이의 묘한 경계는 무대 한 가운데 놓인 식탁으로 보여진다. 남궁선이 처음 예수를 만나 식사를 시작할 때 두 사람의 식탁은 완전히 갈라져 있다. 남궁선과 예수에게 제공되는 전채요리 - 메인요리 - 디저트 - 커피의 코스와 시간의 변화에 따라 두 사람의 식탁은 조금씩 아귀가 맞아간다. 남궁선이 예수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느끼는 변화도 그와 함께 드러난다. 그리고 배우들의 뒤편으로는 거울이 보인다. 무대 장식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거울을 통해 배우들의 뒷모습과 관객석이 모습도 비춰진다. 관객들은 예수와 남궁선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앞에 놓인 거울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비춰보게 된다.

이번 작품은 영화 ‘물고기자리’로 알려진 김형태 감독의 첫 연극 연출 데뷔작이다. 작품 전반에도 김형태 감독 특유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무대 전체를 감싸 안는 은은한 조명, 레스토랑 장식처럼 보이는 커다란 거울, 점점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식탁 등 소품들은 작품의 텍스트를 받쳐준다. 특히, 마지막 커튼콜 이후는 극이 펼쳐지는 장소가 레스토랑이라는 점을 살려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제작진을 소개한다. 이 작품을 함께 만든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감독의 기지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예수 역을 맡은 배우 남윤길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대표작을 가지게 됐다. 그는 ‘예수’라는 성인을 인간보다 더 인간답고 자애롭게 그려냈다. 특히, 종교를 이용해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자들 때문에 아파하는 예수의 모습을 절제된 감정연기로 표현해 냈다. 남궁선 역을 맡은 배우 강경덕은 관객을 집중시키는 흡인력 면에서는 아쉬웠다. 하지만 그의 날렵한 생김새 위로 삶에 지친 엘리트 중년의 모습이 오버랩 되며 현실 인물과 캐릭터가 잘 어우러졌다.

드넓은 야구 경기장, 건너편에 있는 우리 팀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상대가 그곳에 있다는 ‘믿음’과 내가 그 쪽을 향해 걷겠다는 ‘행동’이 함께한다면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외롭고, 지치고, 삶이 재미없다면 당신이 믿고 있는 누군가를 떠올려 보고, 지금 전화를 걸어 저녁식사 약속을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뉴스테이지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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